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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인권문제연구소 소장 이야드 바르구티 초청 강연:
‘오바마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습니다’

[편집자] 10월 10일 건국대 중동연구소는 팔레스타인의 저명한 학자이자 인권 운동가인 이야드 바르구티(아래 사진) 초청 강연회를 열었다. 아래는 그날 강연 내용과 질의응답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인권문제연구소 소장 이야드 바르구티

팔레스타인 문제의 기원 - 이스라엘의 건국

오늘날 팔레스타인 문제는 20세기 초에 시작됐습니다. 유럽의 민족주의 운동인 시온주의 운동이 팔레스타인 영토에 시온주의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목표를 실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죠. 그 당시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은 임자 없는 땅”이라는 유명한 거짓말을 했습니다.

사실 당시 팔레스타인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대다수는 아랍계 무슬림들이었지만, 유대인도 있었고(10퍼센트 이하), 약 12퍼센트는 페르시아인이었습니다. 또, 팔레스타인에는 기독교인들도 많았습니다.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저명한 지도자 중 한 명인 조지 하바쉬도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시온주의자들이 진출하기 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잘 살았습니다.

유대인과 기타 팔레스타인 거주자 사이의 갈등은 시온주의 운동이 영국의 도움을 받아 유대인만으로 구성된 배타적 유대인 국가를 팔레스타인에 세우려 하자 시작됐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은 1920년대부터 시작돼 1936년 혁명으로 폭발했고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때까지 지속됐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은 ‘역사적 팔레스타인’ 영토의 78퍼센트에 국가를 건립했습니다.

1947년 유엔에서 통과된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안에서는 이스라엘이 52퍼센트, 팔레스타인들이 나머지 48퍼센트를 차지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이 자체도 인구 비례에 비교해 보면 대단히 불공평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술 더 떠서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48퍼센트에 살고 있던 사람들도 내쫓았습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인 삶의 현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지 다음의 예를 통해 한번 상상해 봅시다.

오늘날 이스라엘 감옥에서 팔레스타인인 1만 2천 명이 장기 복역중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팔레스타인을 방문해 25살 이상의 사람 아무에게나 물어보면 90퍼센트가 이스라엘의 감옥에 갔다 온 경험이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제 사촌 두 명도 32년 동안 복역하고 얼마 전에 풀려났습니다.

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파괴하고 이스라엘인들을 위해 새 정착촌 3백 곳을 건설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에도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집 수백 채가 파괴됐습니다. 이스라엘은 보통 이런 수법을 씁니다. 그들은 먼저 팔레스타인 소유주에게 서류를 보냅니다. 서류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40일 안에 너의 집을 알아서 파괴하지 않으면 우리가 가서 그 집을 파괴할 것이고 너는 파괴비용 2만5천 달러를 내야 한다.’ 그래서 가난한 팔레스타인인들은 눈물을 머금고 스스로 집을 부숴야 했습니다.

올해 초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가자지구는 지난 3년 동안 가혹한 경제제재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지금 가자 인구의 70퍼센트가 빈곤선 이하의 돈을 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재제 때문에 그 어떤 생산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가자 주민들이 식량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집트로 통하는 지하 터널을 통해 식량을 밀반입하는 것뿐입니다. 이스라엘은 때때로 이 통로를 폭격기를 동원해 공격했는데, 그럴 때마다 많은 어린아이들이 죽었습니다. 좁은 터널을 지날 수 있는 사람은 어린아이와 청년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올해 초 공격도 터널을 파괴한다는 명목으로 시작됐는데, 그 결과 가자 지역 주민 1천1백 명이 죽었고, 그 중 4백 명 이상이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

본격적인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은 1965년 파타가 설립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은 일관된 이데올로기를 갖추지는 않았고, 팔레스타인 영토를 회복한다는 목표만을 공유하는 집단들로 구성됐습니다. 좌파 조직, 아랍민족주의 조직 등 다양한 정치 조직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뛰어들었습니다.

나중에 파타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로 이주해 정권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탄생한 이른바 ‘팔레스타인 정권’은 사실 이스라엘의 포로였습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이른바 ‘대통령’은 이스라엘군의 허가없이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서안 지역 중심가로 이동하지도 못합니다. 2002년 아라파트가 그것에 항의하자 이스라엘군은 대통령 집무실을 박살냈습니다.

파타는 최근들어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일을 그만두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때 종교에 기반을 둔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 즉 하마스가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사상적으로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애초에는 이스라엘에 맞선 무장 투쟁에 반대했습니다. 먼저 진정한 무슬림이 되고 신을 알아야 그 다음에 이스라엘에 맞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폭력 만행이 지속되자, 그들은 좋은 무슬림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고 당장 싸우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1987년에 하마스를 건설했습니다. 파타가 저항을 그만두고 투항할 때 저항을 시작했기 때문에 하마스는 순식간에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마스를 지지하는 것은 종교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마스가 종교적 성격을 강조할 때는 인기가 하락했습니다.

오바마 정부와 팔레스타인 문제

분명, 오바마 정부는 전 미국 정부보다 실용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러시아와, 심지어 이란과도 관계 변화를 꾀합니다.

2008년 워싱턴에서 열린 이스라엘 건국 60주년 기념식에 참가한 오바마

그러나 불행히도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는 아랍 정부가 오바마 정부에게 변화를 요구할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이미 아랍 정부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미국의 중동 정책과 팔레스타인 정책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너도나도 미국 군사기지를 자국에 유치했습니다.

그리고 오바마가 알아서 고르바초프 구실을 할 거라고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오바마 정부는 전 정부들처럼 이스라엘에 매일 4천만 달러씩 지원합니다. 이스라엘은 그 돈을 가지고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정착촌을 건설합니다. 올해 오바마가 이스라엘에 정착촌 중단을 요구했을 때 화제가 됐는데, 이스라엘이 그것을 거부하자 오바마는 1년간만 중단하라는 것으로 후퇴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마저 받아들이지 않자 지금 오바마는 아무런 약속없이 팔레스타인 정부더러 이스라엘과 하는 협상 테이블에 나서라고 윽박지릅니다. 역대 미국 정부는 중동지역에서 동일한 이익을 추구했고 방법만 조금씩 달랐습니다. 오바마도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오바마의 중동 자문들이 죄다 부시 정부와 연관을 맺었거나 시온주의 지지자들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