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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ㆍ28 재보선 결과와 진보진영의 과제:
이명박의 기만적인 ‘친서민’ 정책이 심판 받다

한나라당은 4월 국회의원 재보선에 이어 또 다시 패배했다. 지난해 가을 일부 지방 재보궐선거, 올해 4·8 경기도 교육감 선거, 4·29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까지 포함해 네 번째 패배다.

여당 핵심부는 “2승이면 본전”이라고 자위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에서 애초 한나라당 의석 세 곳 중 두 곳을 잃었다. 여권 강세 지역인 수원 장안에서 패배했고, 박희태는 경남 양산에서 진땀을 뺐다.

〈조선일보〉조차 사설에서 “지난 4월 재·보선에 이어 이번에도 수도권에서 전패(全敗)를 면치 못했다. 비록 전체 결과는 2대3이라고 하지만 실제 내용은 한나라당에 그 이상의 패배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평했다.

이명박의 지지율이 40퍼센트를 넘는 상황 때문에 “한나라당이 10미터 앞서 시작한 선거”라고까지 얘기되던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패배했다.

본지가 일찍부터 지적해 왔듯이, 이명박이 ‘친서민’ 정책을 펴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회복에 성공했다고 해도 대다수 국민은 이런 정책적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음이 이번 선거를 통해 확인된 것이다.

특히, 수도권은 이명박의 ‘친서민 중도 실용’이 겨냥한 과녁이기도 했는데, 이 곳에서 한나라당이 전패했다는 것은 사실상 이명박 식 ‘친서민’ 정책의 약발이 거의 먹히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이미 지난 10월 6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82.3퍼센트가 친서민 정책이 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답변한 바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경제 회복에 대한 열망 때문에 ‘정부가 잘해 주길’ 기대할 따름이지 그것과 정치적 지지는 별개”라는 것이다(〈한겨레〉). 그래서 한나라당의 수도권(특히, 수원 장안) 패배를 ‘손학규 효과’로 보는 것은 단견이다.

‘구관이 명관’? 민주당의 지지율은 봄날의 얼음장처럼 불안

한나라당의 패배는 새삼스럽지 않다. 그리고 민주당이 선거에서 어느 정도 성공할 거라는 예측도 어렵지 않았다.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 논란, 효성 비자금 의혹, 청와대 직원들의 비위,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추진 등 이명박 정부의 ‘민심 불감증’이 커지는 상황 때문에 민주당이 반MB 정서의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오죽하면 수원 장안의 이찬열, 안산 상록을의 김영환 등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오가는 ‘사쿠라’들조차 그 수혜자가 됐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이 이명박 정부의 반노동·반서민 정책의 브레이크 구실을 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민주당 자체가 그렇다. 이 당은 변죽만 울릴 뿐, 이명박의 아킬레스 건을 건들지 않는다. 정세균의 ‘뉴민주당 플랜’이란 것 자체가 한나라당 따라하기 플랜이다.

이명박 정부의 기만적인‘친서민’ 행보에도 심하게 흔들릴 정도로 이 당은 허약하고 불철저하고 소심하다. 무엇보다, 계급 쟁점(해고, 비정규직, 공기업 민영화 등)에서 민주당은 언제나 바리케이드 저편에 서 있다. 그래서 민주당의 의석 몇 석 느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순전히 선거에서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정서 덕분에 반MB 정서의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앞으로도 민주당 지지로 오롯이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충북 4개 군 선거구를 제외하고 민주당이 승리한 수원 장안(35.8퍼센트)과 안산 상록을(29.3퍼센트)의 투표율은 전체 평균(39퍼센트)보다 낮았다. 유권자들이 믿을 수 없는 후보들을 위해 애써 시간을 쪼개 투표장에 갈 동기 부여가 안 된 것이다(충북 4개 군은 세종시 논란이 부채질한 ‘충청 홀대론’과 민주당 정범구 후보의 쌀값 폭락 반대 주장이 겹쳐, 박빙의 승부가 펼쳐진 경남 양산 다음으로 투표율이 높았다).

요컨대, 민주당은 세 석을 확보했지만 그 지지는 봄날의 얼음장처럼 불안하다.

진보진영의 선거 결과

이것이 뜻하는 바는, 객관적으로는 진보진영에게도 선거적 마진(margin)이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한나라당은 싫고 민주당은 못 믿겠다고 생각한다. 진보진영이 민주당 왼쪽에서 이런 사람들을 위한 정치적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들은 수원 장안에서 7.2퍼센트, 충북 4개 군에서 3.2퍼센트, 경남 양산에서 3.5퍼센트를 득표했다. 민주당의 후보 단일화 압박과 사표론이 강했던 곳들에서 마지막까지 선전한 결과다. 흡족하다 할 수는 없지만, 객관적 조건상 고투가 헛된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선거 후반부에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위해 자당 후보들 사퇴 카드를 던진 것은 어리석은 ‘책략’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민주당의 후보 단일화 압박에 대한 역공 작전이었다고 궁색한 변명을 한다. 흥미롭게도 〈레디앙〉도 자기 발등을 찍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작전”에 이런 논리를 제공했다.

그러나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유권자들에게 민주당의 사표론에 맞서기 위해 하지도 않을 후보 단일화를 하겠다고 말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지지자들만 속이는 ‘작전’일 뿐이다. 게다가 양강 구도 때문에 가뜩이나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샌드위치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 사표론에 힘을 실어 준 나쁜 “작전”이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사표론 부채질 “작전”에도 불구하고 중도 사퇴하지 않은 덕분에 민주노동당 후보들은 그럭저럭 표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수원 장안에서 7.2퍼센트를 득표한 것은 인상적이다(2004년에는 12퍼센트를 득표했지만, 당시 선거는 노무현 탄핵 후폭풍 와중에 치러졌기 때문에 이런 객관적 조건을 무시하고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안동섭 후보는 성균관대학교 투표소에서는 20퍼센트 가까이 득표했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잘못된 교훈을 이끌어내고 있는 듯하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MB 심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야권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문제는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야권 전체의 심각한 과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민중의 소리〉도 “이번 선거 단일화 실패를 교훈으로 연합을 위한 전략을 좀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운영위원장도 “막상 선거에 임박해서 단일화를 논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지금부터 ‘후보 단일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성공 가능성이 있다 싶으면 후보를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 줬다. 지난 4월 재보선 당시 울산처럼 아예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중도 사퇴할 뿐이다. 결국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약체인 곳에서만 진보정당으로 ‘후보 단일화’가 이뤄질 것이다. 아무 정치적 의미가 없는 일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이 “야권 단일화”에 매달린다는 것은 민주당에 부질없는 정치적 구걸을 하는 것이거나 진보 후보의 불출마를 택하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야권 단일화”에 매달리기는 민주노동당으로 하여금 진보대연합 건설에 최선을 다하지 않게 만들 위험이 있다.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의 진보대연합 실현 다짐은 문서상으로 존재할 뿐, 실천에서는 민주대연합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야권 단일화”는 이번 선거에서도 봤듯이 헛물켜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런 전략의 진정한 문제점은 진보진영이 민주당 왼쪽에서 독자적 정치 공간을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민주당의 입만 쳐다 보게 될 우려가 있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 비판을 삼가게 되고 결국 대중에게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정치적 차이점을 보여 줄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안산 상록을은 이 전략의 문제점을 보여 줬다.

진보 단일 후보였던 임종인 후보는 15.6퍼센트를 득표했다. 지난해 총선 당시 임 후보의 득표율과 대동소이하다. 민주당 후보 김영환은 41.2퍼센트를 득표해 당선했다.

임종인 후보의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 전술이 이런 결과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임 후보 선본은 투표 며칠 전까지도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꾀했다. 투표 직전에 단일화가 최종 결렬되면서 민주당 후보를 비판하기 시작했지만, 때는 늦었다. 선거 기간의 대부분을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하는 데 쏟아부었다. 그 기간에 임 후보와 민주당 후보의 차이점, 다시 말해 민주당 비판을 통해 왜 민주당 후보가 아닌 임종인 후보를 찍어야 하는지를 설명할 기회를 상당 부분 놓쳐 버렸다.

당선까지 가능했을지는 논란이 있겠지만, 임 후보가 민주당 후보와 이렇게까지 표 차이가 난 것은 이런 전술의 실패에서 연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유권자들은 버터 맛 나는 마가린보다는 버터를 선택했던 것이다. 버터를 선택할 수 있다면 굳이 버터의 대용품인 마가린을 선택할 까닭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진보대연합

우리는 이런 이유로 ‘민주대연합’ 노선을 비판해 왔다. 그리고 ‘진보대연합’의 필요성을 역설해 왔다. 이번 선거 결과는 적어도‘민주대연합’ 노선이 정치적 패착이었음을 확실히 보여 줬다. 안산 상록을에서는 ‘진보대연합’이 이뤄졌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것을 ‘진보대연합’ 자체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민주대연합’과의 경계가 모호한 탓에 ‘진보대연합’의 효과를 충분히 내지 못한 측면이 크다 할 수 있다.

“반MB민주대연합은 민주당 중심으로 이기자는 것이고, 반신자유주의진보연합은 민주당 빼자는 걸로 인식”되기 때문에 “넓은 판을 만들고, 진보정당이든 민주당이든 그 안에서 자기 주장을 내세우고 대중들로부터 평가 받아야 한다”는 ‘희망과 대안’ 하승창 상임운영위원의 주장은 안산 상록을의 경험을 재탕하자는 얘기처럼 들린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명박 정부의 반노동·반서민·반민주 정책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광범하게 단결해야 한다. 그러나 단결의 원칙과 기준을 흐려서는 안 된다. ‘MB 아니면 누구나 다’ 식의 ‘묻지마’ 동맹은 진보진영이 민주당의 옷자락에 매달리느라 자기 정체성과 대안을 상실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