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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전쟁’을 지속하는 오바마

오바마는 ‘부시의 전쟁’을 반대하고 더 평등한 사회를 바라는 평범한 미국 노동자와 서민 들의 염원에 힘입어 당선한 사람이다. 그러나 집권 2백 일이 가까워진 2009년 11월 현재 오바마는 ‘부시의 전쟁’을 조금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에 여전히 12만 명이 주둔해 있고 이른바 ‘완전 철군’ 기한인 2011년 이후에도 5만 명 이상이 ‘이라크군 훈련’의 명목으로 남아 있을 것이며, 2007년 부시가 에티오피아를 부추겨 시작된 소말리아의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맞선 전쟁도 계속되고 있다.

물론, 변화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변화의 핵심 내용은 ‘부시의 전쟁’의 부정이 아니라 확대·발전이다. 오바마는 이미 아프가니스탄에 증파했고 추가 증파를 고려중이며, 이웃인 파키스탄으로까지 전쟁을 확대했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전쟁(‘아프팍’ 전쟁이라 불리기도 한다)은 명실공히 ‘부시의 전쟁’에서 ‘오바마의 전쟁’으로 확대·계승된 셈이다.

더 놀라운 점은 오바마가 이 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전임 정부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즉, “아프가니스탄이 알카에다의 성지가 되는 것을 방지하고 파키스탄과 인근 지역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고” 안정과 민주주의, 그리고 ‘신장된’ 여성권을 보호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증명하는 것은 너무 쉽다.

2009년 1월 7일 생존 전직 대통령과의 오찬 행사에서 부시와 오바마 두 사람의 대외 정책에는 공통점이 더 많다

테러리스트를 막고 안정을 가져 온다? 최근 한 미군 장교는 ‘탈레반’ 2명을 죽이기 위해 평균 95명의 민간인이 희생된다고 토로했다. 미군이 지금껏 2만 5천 명의 ‘탈레반’을 죽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대략 1백25만 명의 민간인이 죽은 셈이다(아프가니스탄 인구는 3천만 명에 불과하다). 오히려 오바마 정부 들어 ‘탈레반 사상자 대 민간인 사상자’ 비율은 더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또, 오바마가 파키스탄으로 확전하면서 현재 2백만 명이 난민촌에서 적절한 지원 없이 추운 겨울을 나야 한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상황이 안정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점령군의 테러 때문이다.

민주주의? 리차드 홀부르크와 존 케리 등 오바마 정부의 특사와 주변 인사 들이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해 압력을 넣은 결과 1백만 표 이상의 부정표로 1등을 한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자동 재선되고 2위 후보 압둘라 압둘라는 눈물을 흘리며 사퇴했다. 이승만도 카르자이에게 한 수 배워야 할 판에 민주주의를 말할 수는 없다.

여성권? 미군을 포함해 점령군이 아프가니스탄 지역 동맹으로 삼고 있는 군벌들은 여성권을 마구 유린하고 있다. 애당초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탈레반을 잠시 지지했던 것도 군벌들이 너무 잔인해서였다. 그들이 미군에 힘입어 돌아왔고, 지금 여성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편히 하지 못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올 초에 대통령 카르자이는 이들과 짜고 남편이 부인을 성폭행하는 것을 합법화시키는 법을 통과시키려 했다.

이런 사실은 주류 언론에 광범하게 보도된 것으로 오바마 정부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면 점령으로 공식 목표의 반대 결과가 발생하고 있는데, 오바마는 왜 이 전쟁에 매달리면서 거듭 증파하고 동맹들에게 군대를 보내 달라고 윽박지르는가?

‘부시의 전쟁’에서 ‘오바마의 전쟁’으로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 ‘부시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오바마의 전쟁’도 진정한 목표가 테러 척결·민주주의 확산·여성권 신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자주의적’ 오바마와 ‘일방주의적’ 부시 간 차이를 강조하는 분석이 흔한 상황에서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차이점뿐 아니라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네오콘의 ‘테러와의 전쟁’의 실제 내용은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을 사용해 중동 패권을 확립하고 잠재적 경쟁자들 ─ 중국, 유럽연합, 일본 등 ─ 을 견제할 수 있는 지렛대를 확보한다는 것이었다. 중동 석유에 대한 통제는 그런 지렛대 중의 하나다. 네오콘의 생각은 미국 자본주의가 경쟁력을 잃으면서 패권 유지를 위해 갈수록 군사력에 의존하게 된 지난 30년간의 흐름의 논리적 결과였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그 전략의 일부였다. 그래서 미국 지배자들 중 상당수가 네오콘의 오만함을 싫어하면서도 그에 동조했던 것이다.

오바마도 마찬가지다. 그는 일찍이 2007년 초에 미국의 목표로 네오콘과 동일한 것 ─ “미국의 우월한 힘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 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그가 내세운 수단도 네오콘과 동일 ─ 군사력 ─ 했다. “미국은 [아프리카의] 지부티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칸다하르까지 공세를 유지해야 한다. …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최신의 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유지해야 하며 … 미국 대통령이라면 군사력의 사용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필요하다면 일방적으로라도 말이다. … [군사력은] 우리가 공격당했을 때뿐 아니라, 우리의 이익이 위협 받고 있을 때도 사용돼야 한다.”

따라서 ‘반전 후보’ 오바마가 전쟁광의 압력으로 타락했다는 평가는 사실이 아니다. 다만, 부시와 달리 오바마가 아프팍에 좀더 집중하는 것은 이라크의 상황이 잠시 안정된 상황에서 이 전략의 성패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향방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만약 오바마 정부가 완전 철군을 포함해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적 패배를 시인하는 정책을 취했을 때 뒤따를 파장은 대단히 크다. 미국 제국이 전 세계 국방비의 50퍼센트를 사용하고도 소총으로 무장한 게릴라들을 이길 수 없다면, 앞으로 누가 미국 말을 들으려 하겠는가.

따라서 오바마를 지지했던 미국 자유주의 언론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얼마나 ‘영양가’없고 국고의 낭비인지 백날 웅변을 토해도 오바마는 당분간 이 전쟁을 밀어붙일 것이다. 미국의 좌파 언론인 톰 엥겔하트의 표현처럼, “대마불사는 파산한 미국 대형 은행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파산한 미국의 전쟁에도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미친 전쟁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바마에게 읍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고 자국 정부가 ‘오바마의 전쟁’을 지원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더 읽을 책

조너선 닐 외 지음 | 차승일 옮김

《오바마의 아프팍 전쟁》

책갈피 | 5천 원, 143쪽

이 책에서 조너선 닐은 아프가니스탄인의 처지에서 본 전쟁의 현실을, 미국인 사회주의자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는 고통으로 점철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미국의 관계를 살펴본다. 영국 사회주의자 제프 브라운과 파키스탄 활동가 아심 잔은 파키스탄이 “미국 제국주의의 취약한 고리”라고 지적한다. 네 명의 지은이는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이 알아야 할 오바마의 아프팍 전쟁의 진실을 들려준다.

크리스 하먼 지음 | 이수현 옮김

《크리스 하먼의 새로운 제국주의론》

책갈피 | 5천9백 원, 192쪽

이 책에서 크리스 하먼은 레닌과 부하린으로 대표되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을 옹호하면서 오늘날 제국주의 현실을 분석하고 있다. 네오콘의 ‘군사 우위’ 전략이 미국 지배자들 내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된 과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2003년 쓰여졌지만 오늘날 오바마 정부의 외교 정책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필수적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