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아시아 순방은 미국 패권이 얼마나 약해졌는지 여실히 드러냈다. 오바마는 순방 과정에서 아시아를 중시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는 아시아의 경제적 위상 증대와 동맹 관계의 불안정 심화 등으로 인해 아시아에서 패권이 약해질 것을 염려해서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미국에게 중요한 존재다. 2000년대 거품 경제를 키우는 과정에서 중국의 저가 공산품 수출과 국채 매입에 의존해야만 했던 미국은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 이후 중국에 대한 의존이 더 심화했다(물론 중국도 미국의 수출 시장에 의존해야만 한다). 일본도 정권 교체 이후, 미국과의 동맹뿐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려 하면서, 미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고 있었다.

오바마와 이명박의 만남 그래도 만만한 것은 ‘알아서 파병’하겠다는 이명박뿐일 것

이 때문에 오바마는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국가’이며 자신은 ‘태평양 대통령’이라고 자처했다. 물론 누구도 겉으로는 미국의 개입을 반대할 수는 없었지만, 물밑 분위기는 미국의 개입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벌써부터 미국의 개입과 견제는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오바마는 중국에게 시장 논리에 따라 환율을 정하라며 위안화 절상 압력을 넣었지만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리고 ‘너나 잘해’ 하는 식으로 미국의 보호주의를 비판하는 카드로 맞섰다. 그동안 미국이 다른 나라에 강요하던 자유무역 교리가 이제는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보호주의를 비판하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과는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러시아와 추진할 전략무기감축협정 개정 문제도 진전이 없었다.

반발

그렇다면 오바마가 잃어버린 ‘도덕적 리더십’을 되찾겠다고 밝힌 야심찬 계획은 어떻게 됐는가? 오바마는 중국 대학생들 앞에서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정보를 얻는 자유, 정치 활동 참여의 자유는 세계 만인의 권리”라고 연설했지만, 그 권리가 티벳 문제 앞에선 멈췄다. 오바마는 티벳이 중국 영토라며 중국 제국의 손을 들어줬다.

기후변화 문제에 가장 큰 책임이 있음에도 오바마는 아펙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어떠한 실질적인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이 때문에 코펜하겐 기후정상회의가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겠다고 천명한 오바마는 일본과 남한 등 동맹국들에 핵우산 등 확장억제를 제공하겠다고 재확인함으로써, ‘남이 하면 불륜, 자신이 하면 로맨스’ 식으로 과거 미국 지배자들의 핵 위선을 반복하고 있다.

경제력도, 외교력도, ‘도덕적 리더십’도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미국이 궁극적으로 믿을 것이라곤 군사력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 최강의 군대가 지금 최빈국 중 하나인 아프가니스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지배자들 내에서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둘러싼 분열이 심각해지고 있고, 동맹들의 이탈 조짐도 크다. 심지어 미국의 충견 역할을 하던 영국조차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검토할 정도로 위기가 심각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한국이 아프가니스탄 점령에서 제 역할을 해 주길 바란다. 이명박 정부도 오바마의 방한에 맞춰 3백 명 규모에서 2천 명 규모로 파병 부대를 늘릴 수 있다고 서둘러 계획을 변경하고 있다.

물론 중동 전선에서 커다란 위기에 처한 오바마가 북한에 대해서는 일시적으로 양보 제스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동아시아의 평화는 요원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다극화 경향이 강해질수록 ‘힘의 균형’ 덕분에 강대국들 간 협력이 강화된다고 보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로 강대국들 간 경쟁이 격화되기 때문이다.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도 미국은 겉으로는 협력 제스처를 취했지만,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해 더 개입을 강화하려 했다(물론 허세에 그치긴 했지만). 다른 한편 미국 패권을 넘보는 다른 나라들도 기회를 엿보고 있다. 강대국들이 밀집해 있는 동아시아는 언제든 이와 같은 패권 경쟁 때문에 첨예한 긴장이 조성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봉합된 이른바 ‘북한 위기’는 또다시 고조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