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자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이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행하기로 한 《친일인명사전》에 박정희의 이름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게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자, 민족문제연구소가 박정희가 만주군에 지원하며 일본제국에 충성을 맹세한 내용의 혈서를 썼음을 뒷받침하는 1939년 3월 31일자
박정희가 친일파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지만, 역겹게도 우파들은 그를 계속 옹호해 왔고 박지만 같은 자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날뛰었다. 그런 측면에서 민족문제연구소의 이번 사료 공개는 무척이나 속 시원한 일이었다. 진상규명위가 박정희를 친일파로 분류하지 않은 것은 민족문제연구소와 대조되는 행태였다.
인혁당 사건이 조작이 아니라는 제성호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멋대로 바꾸기에 앞장서 온 이명호 같은 뉴라이트들이 위원으로 있는 진상규명위가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지만,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나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을 쓴 임경석 교수, 《이재유, 나의 시대 나의 혁명》을 쓴 김경일 교수가 진상규명위원으로 있으면서 박정희를 친일파로 분류하지 않은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 혈서를 쓰고 삼수까지 해 입학해서 평범한 한국 민중을 쥐어짜던 제국주의의 편에 섰다. 이런 자가 친일파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진상규명위가 박정희를 친일파로 분류하지 않은 것은 위원회 자체가 대통령 직속이고 차기 대선주자로 ‘유신 공주’ 박근혜가 유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노자 교수가 말했듯 친일파 청산 문제는 단순한 민족 문제가 아니라 한국 민중의 문제다. 박정희와 같이 파렴치한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는 1948년 반민특위 설립 때처럼 아래로부터의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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