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유명 아이돌 가수의 곡을 둘러싸고 표절 논란이 일었다. 음악계에서는 표절에 대한 논란들이 계속해서 불거지자 나름대로의 정형적인 기준을 만들고자 하고 있는데, 애초에는 동기(2마디)가 기준이었다가, 8마디가 기준이었다가, 한 소절이 기준이었다가, 두 소절이 기준이 되었다가 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언어의 의미를 파악하거나 표준어를 규정하는 데에 있어서 언중(언어를 사용하는 대중)의 태도가 중요하듯이 표절 문제에 있어서도 청중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준을 따르면, 표절의 척도는 청중이 표절 논란 곡과 원곡을 같다고 여기느냐의 여부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표절 규정은 여전히 모호하지만 나는 몇 마디, 몇 소절의 규정된 단위로 표절을 규정하는 것은 표절에 대한 대중의 의식과 단절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현실에서 표절 관련 담론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는 음악 전문가들의 태도 또한 중요한 한 요소가 될 것이다.

나는 고전음악 애호가이지, 대중음악 애호가는 아니지만, 이 글을 쓰려고 마음 먹고 나서 논란이 된 곡과 원곡을 들어보았다. 솔직히 랩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사용된 음향(비트를 주는 파트를 제외하고도)이 상당히 비슷했고, 충분히 같거나 비슷하다는 느낌을 줄 만 했다. 다만, 템포 설정의 차이가 비교적 눈에 띄는 수준이었다.

표절 개념의 역사적 변화

표절에 대한 개념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매우 변화해 왔다. 물론, 나는 스탈린주의의 역사발전 ‘공식’에 표절개념을 억지로 끼워 넣으려는 것은 아니고, 표절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럴 필요도 없다. 예술은 상대적으로 토대에 대해 자율성을 많이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예술도 토대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서양 고전 음악에 바탕을 두고, “표절, 예술, 사회”에 대한 내 단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바로크 시대 이전의 ‘공식’ 음악은 일부 르네상스 작곡가들의 음악을 제외하고는 거기서 거기였다. 교회(가톨릭 교회) 음악이나 왕실 춤곡이 전부였던 시대에 다양한 음악을 상상하기는 힘들었다. 교회음악은 늘 일정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야 했으므로 ‘표절’ 논란이 일어날 부분이 애초에 아니었고, 이후에도 거의 그랬다. 왕실의 음악들도 대부분 춤곡(대부분의 서양 악곡들은 춤곡에 바탕을 두고 있다) 중심이었고, 비슷한 곡들이 춤의 종류에 따라 작곡되고 하나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만한 것들이 나타났다. 그러니까 바로크 시대 이전에 ‘표절’ 개념은 그다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속음악에서도 음유시인들이 기껏해야 몇 개의 한정된 멜로디만을 가지고 류트(기타의 전신 악기)를 들고 다니며 읊조리던 시대에는 마치 한국의 민요가 지역에 따라 ‘거기서 거기’에 가깝듯이 서양 음유시인들의 음악도 비슷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바로크 시대에는 상대적으로 요즘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 고전 음악의 형식들(소나타, 협주곡, 모음곡 등)이 잡혀가기는 했지만, ‘표절’ 개념이 그다지 일반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비발디는 수많은 세속음악의 멜로디들을 자신의 곡에 아무런 언급 없이 가져다 썼고,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흐는 끊임없는 자기표절을 했다. 바흐의 곡을 듣다 보면 종종 어디선가 들었던 선율이 그대로 쓰인다는 걸 알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은 여러 편곡으로 연주되고 요즘에도 인기를 얻고 있는 ‘아리오소’이다. 이 아름다운 곡은 칸타타, 클라비어(건반 악기 일반) 협주곡 등에 사용됐고, 각각 다른 작품번호를 가지고 있다. 사실, 비발디와 바흐는 음악 선생이라는 일도 하면서 수많은 행사용 음악들을 작곡해야 했기 때문에 ‘표절’의 유혹을 받기 쉬웠을 것이다.

고전 시대에 들어서는 ‘표절’ 관념이 명확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세속의 멜로디를 그대로 가져오거나 자신의 곡을 언급없이 새로운 작품으로 내는 일은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 같다. 이 시대에는 선율 자체보다 형식적 아름다움을 중요시했으므로, 당시에 비교적 인기가 있었던 장조 풍의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살리고 형식적인 완성도를 유지하면서 적절한 파격을 가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이 시대에는 전문 음악가들 사이의 ‘표절’보다는 돈이 좀 있는 귀족이나 신흥자본가들이 유명 작곡가의 곡을 사서 자신의 곡이라고 주장하는 ‘표절’이 더 많았다고 전해지는데, 모차르트의 마지막 작품인 ‘레퀴엠’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시대의 중요한 변화는 이전 시대에 비해서 악보 출판이 좀 더 체계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점인데 이러한 변화는 신흥자본가들의 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작곡가이자 악보 출판업자인 호프마이스터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협주 교향곡) 1번(두 대의 클라리넷이 독주 악기로 나선다)이 요즘으로 따지면 표절 의혹에 연루될 만하다는 점은 흥미롭다. 1악장의 카덴차 부분과 카덴차에 이르는 과정이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K.364(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독주 악기로 나선다)의 그것과 음 하나하나까지 같다.

표절 개념이 생겨난 것은 대체로 낭만시대부터인 것 같은데, 아마도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음악에 대한 신흥자본가들이나 소부르주아지의 수요가 증가하고 악보 출판업이 번창함에 따라, 표절 개념이 자리잡히기 시작한 것 같다. 특히, 낭만 시대의 대표적인 신고전파 작곡가인 브람스의 경우에는 [그 자신이 워낙 조심스런 인물이었던 탓도 있지만] 그 유명한 헝가리 무곡 전곡(21번까지 있고, 애초에 피아노 연탄으로 출판되었다)에 대해, 표절 논란을 우려해서 자신이 작곡한 것이 아니라 헝가리 민요를 ‘편곡’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사실 이 경우에 ‘편곡’이라 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곡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알겠지만, 브람스에 의해 충분히 재창조돼 ‘브람스화’가 충분히 됐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시대 이후로 악보 출판업이 자리잡고 동시에 직업적인 음악평론가들이 출현하면서 ‘표절’ 시비가 종종 불거지곤 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자본가 세력이 사회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으면서 생겼는데, 자본가들과 그 가족들은 작곡을 의뢰하는 것은 물론 악보를 구입하는 중요한 고객이었고, 대규모 음악당을 지을만한 자금력도 가지고 있었으며, 전문적인 음악 잡지 등이 발행되는 데 금전적으로 큰 기여를 했다. 이 시대에야 음악평론가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음악 잡지를 채우는 일을 할 음악평론가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때까지는 저작권에 민감한 시기는 아니었고, 고전 음악은 대체로 중간계급 이상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표절’이 사회적 문제나 이슈가 될 정도는 아니었고, 음악계와 애호가들 사이의 논쟁에 머물렀다.

1800년대 말에 이르면 녹음도 시작되는데, 특정 자본에 의한 음반산업은 저작권이라는 개념을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한편으로 일반 출판 영역에서 대규모 인쇄가 시작되면서 그 파급력이 음악에도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 시대에 이르면 클래식 음악에서도 많은 표절 논란이 이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후기 낭만시대의 유명한 작곡가들 대부분이 표절 논란으로 한 번쯤 구설수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표절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나 기준은 없었고, 단지 소수의 음악평론가들만이 이러한 표절 담론을 주도했다.

20세기

한편,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생산양식으로 자리잡은 20세기에는 ‘표절’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저작권을 가진 자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20세기 초반이나 현재나 저작권으로 상대적으로 더 큰 이익을 얻는 것은 창작자보다는 그것을 출판해 주거나 출반해 준 자본가들이다). 특히, 대중음악이 음악시장의 주류로 자리잡기 시작하고, 음반이라는 매체를 통해 음악이 급속도로 확산됨에 따라서 악보 출판업은 상대적으로 몰락하고 음반 업체들이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19세기 말부터 존재했던 음반업체들의 성장은 클래식 업계에서도 눈부셨는데, 현재에도 유명한 클래식 음반 레이블로 남아있는 도이체 그라모폰, RCA 빅터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들은 각각 더 큰 규모의 대자본들인 유니버설과 소니에 잡아 먹혔다.)

이제야말로 본격적인 ‘문화산업’의 시대가 도래하는데, 비관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엘리트 철학자인 아도르노는 예술마저 상품이 된다며 한탄했고, 벤야민은 자본주의에서 문화가 상품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어쩌면 문화를 일시적으로는 더 다양하게 할 수 있지 않겠는냐고 했다. 이들의 주장을 단순하게 보자면, 단기적으로는 벤야민의 말이 맞았고, 장기적으로는 아도르노가 맞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음반 ‘산업’이 번창하면서 수많은 작곡가들과 음악가들의 연주가 녹음되고 시장에 ‘상품’으로 나왔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타도를 추구했음에도 봉건제에 비해서 자본주의의 생산력 발전이 경이적임을 말한 것처럼, 음반산업의 눈부신 발전은 다양하고 많은 음악이 발전하는 데에 기여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생산력 발전이 일정 수준에 달하면 생산양식과 모순을 일으키고 체제 자체가 스스로의 족쇄가 됨을 지적한 것처럼, 음악 ‘상품’이 시장성이 없으면 팔리지 않고 결국 초기의 다양성은 한계에 봉착하고 상대적으로 이윤이 보장되는, 별다르지 않은 음악 상품만이 범람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예술이 상품으로 되고, 그것이 일시적으로 다양화되었다가, 다시금 ‘상품화’로 말미암아 스스로 제자리를 맴돌게 되는 과정은 더 복잡한 과정이다. 이에 대해서는 〈레프트21〉에 실린 이기웅 교수의 글 ‘자본주의와 예술’을 참고하시오).

자본주의에서 예술 창작의 한계와 새로운 체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국면은 바로 이러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주변에 맴도는 일이 생기고(거칠게 얘기한 것이다. 즉, 수많은 재능있는 음악가들이 흥행성을 위해 공연에서든 음반에서든 익히 알려진 녹음과 전형적인 해석을 하려고 한다는 얘기다), 상품성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대중음악에서는 표절을 포함해서 한 세대의 음악이 특정 장르나 스타일로 규정되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체계적인 ‘상품’으로 양성된 아이돌은 이러한 대중음악의 현재 국면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대중음악에서의 표절논란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그 실체를 알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대중음악은 그 자체로 상품성이 핵심적이므로 많이 팔리는 것이 핵심적이다. 최근 그것은 음원 수익 등의 형태로 실현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는 ‘익숙한’ 음악일수록 많이 팔릴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새로운 음악보다 익숙한 멜로디와 비트를 추구하게 되고, 작곡자는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유행하는 다른 창작물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그것이 때때로 표절로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어떠한 예술도 이전의 예술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심지어 가장 전위적인 예술도 그 이전 예술에 대한 안티테제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테제가 없었다면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이전 음악가들의 작품과 이론의 축적으로부터 창작되곤 한다. 모차르트를 천재라고 하지만, 모차르트의 작품을 몇 개의 시기로 나눈다면, 적어도 한 두 시기는 하이든의 영향력이 크게 나타난다. 나는 대중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비틀즈의 음악이라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며, 서태지의 음악이 한국 대중문화에 큰 충격을 주긴 했지만, 그의 음악도 그 모태가 된 또 다른 음악이 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저작권’과 이전에 축적된 예술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예술의 특성이 이윤 중심 체제 때문에 충돌을 빚는다는 것이다. 많은 표절 논란이 대중으로부터 시작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원저작자로부터 표절 의혹이 제기된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된 한 아이돌 가수의 곡은 회사가 표절 의혹을 제기한 경우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중들로부터 표절 논란이 제기될 경우에는 첫머리에서 내가 말한 ‘전체적으로 비슷한 느낌’을 주로 말하는 데에 비해서, 원저작자나 음원사가 표절 논란을 제기하는 경우에는 상당 부분이 몇 마디의 멜로디의 유사성이나 코드 진행을 문제 삼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확실히 원저작권자나 음원사가 사실상 예술과 창작의 독창성보다는 저작권이라는 이윤의 문제에 더욱 중점을 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특히, 코드 진행의 유사성을 가지고 표절을 운운하는 것은 자기기만적인 일이다. 그렇게 표절을 규정한다면, 한 장르의 음악은 모두가 서로 표절한 셈이 된다).

그러나 음악을 포함한 예술이 하나의 ‘작품’이 되려면, 창작될 때 순전히 이전 예술의 축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그것이 그저그런 멜로디가 되었든, 형식이 되었든, 아니면 12음 기법이나 무조음악이라는 혁명적 변화였든)이 작용해야만 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거의, 혹은 명확한 표절에 대해 ‘모든 것이 저작권 때문이다’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이미 자본주의와 문화산업 자체가 스스로 질곡에 빠져서 더는 예술의 다양성이나 보급에 기여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양한 예술, 새로운 예술이 꽃피기 위해서는 이 체제를 넘어서야만 한다. 그것은 단지 소수의 예술가들이 소수의 마니아들만 모아놓은 그들만의 세상을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무리한 결론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예술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다.” (예술이 그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술은 지금과는 다른 체제에서만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