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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연합 논의에 부쳐:
진보진영은 대안적 정치연합체를 진지하게 건설해야 한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정치 현실에 들어맞는 말이다. 보수파들이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까운 지면을 낭비할 필요는 없으리라.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세간의 냉소와 질책을 진보진영이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문제다.

자기만의 세계에 고립돼 사는 소종파를 제외하곤 연대연합의 필요성을 감히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공동의 적에 맞서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단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 위기의 고통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기고(대량 해고, 임금 동결과 삭감, 복지 축소 등) 있고, 이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억압을 강화하고 있다(반민주적 탄압). 노동자 계급과 억압 받는 사람들의 즉각적 이익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단결해야 한다.

지난 4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당선은 진보진영 단결이 낳은 승리였다. 이 경험을 진보적 정치연합체 건설의 발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효과적인 단결 방법은 공동전선을 건설하는 것이다. 공동전선은 상황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여러 형태들을 취할 수 있다. 지금도 이미 다양한 전선들(산업, 민주주의, 전쟁과 파병 등)에서 다양한 종류의 공동전선들이 존재한다. 이런 공동전선들은 이명박과 권력자들의 공세에 맞서 함께 저항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전투성을 증대시켜 마침내 노동자 계급이 수세에서 공세로 나아가도록 도울 수 있다.

한편, 진보진영은 이런 공동 투쟁 속에서 경제 위기의 효과 등에 맞선 저항을 지지·강화하기 위한 단호한 노력과 선거 대응을 함께 수행하는 정치연합체(진보대연합)를 창출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도 아울러 받고 있다. 진보 세력들이 각개약진을 해서는 진보적 정치 대안을 효과적으로 건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의 분당이 정치적 실패라는 대중적 자각이 존재한다. 그래서 조직 노동자 계급의 연합체인 민주노총이 가장 적극적으로 진보정당 재통합을 요구하고 있다. 지극히 온당한 요구다.

진보 세력들이 각각 자체의 힘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것은 커다란 정치적 착각(내지는 아집)이다. 그것으로는 결코 대중의 정치적 대안 부재감을 해소해 줄 수 없다.

사실, 2008년 초 분당 전까지 민주노동당이 이런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2004년 총선에서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자 민주노동당은 그 뒤 다른 진보 세력들과 광범하게 단결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했다. 2007년 대선에서도 민주노동당은 진보대연합을 결정했지만 진지하게 추진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바깥에 연합할 세력이 누가 있느냐는 정서가 강했다. 그 결과 노무현 정부의 개혁 실패로 인해 정치적 환멸감을 느끼고 있지만 여전히 민주노동당에 유보적인 광범한 진보 대중과 접촉할 기회를 놓쳤다.

이제 와서 그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진보적 정치연합체의 재건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분열 경험으로 인한 갈등과 중요한 정치적 불일치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진보대연합을 구성해야 한다.

지난 4월 울산북구 국회의원 선거와 경기도 교육감 선거는 진보가 단결하면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 단결의 경험을 일회적 선거연합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대안적 정치연합체 건설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민주노동당 일각에서 나오는 민주노동당 독자성 강화론이 우려스럽다. 물론 진보 정치 세력들이 자체의 조직과 정치를 발전시키려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자체가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자체의 조직과 정치를 발전시키려는 시도가 단결의 요구를 회피하는 것을 뜻한다면 그것은 종파주의다.

민주노동당 독자성 강화론은 종종 진보연대 강화론과 한묶음으로 제기되곤 한다. 진보연대는 애초 표방한 광범한 상설연대체가 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민주노총이 참가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진보연대는 실패작이라는 평가가 자주파 내부에서도 나오는 판이다. 진보연대의 실패는 자주파가 정치적·조직적으로 느슨한 연대체가 아니라 자신들의 사상을 다른 동맹들에게 강요(‘패권주의’)하려 했던 데서 비롯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독자성과 진보연대 강화론보다는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민주노동당 정성희 중앙연수원장,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이 제기하는 진보대연합이, 구체적 상은 상이할지라도, 시대적 요청에 더 부응하는 접근법이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연합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먼저, 분명하게 밝혀 둘 것은 민주당이 자본가 야당이라는 점이다. 노동자 계급의 적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 운동은 민주당 10년 집권 시절에 그 정부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했다.

자본가 야당과 맺는 연합의 진정한 문제점은 그 연합을 위해 진보진영이 불필요하게 진보적 요구를 삭감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는 점이다. 벌써부터 민주당과 연합하기 위해 민주당이 반대할 만한 쟁점들, 예컨대 반신자유주의나 파병 반대를 내걸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하승창 ‘희망과 대안’ 상임운영위원).

민주당과의 타협은 전적으로 그 불가피성이 인정될 때(가령 언론악법이나 용산참사 항의 투쟁의 경우), 그것도 비판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그러나 대다수 진보진영은 이 투쟁에서 민주당에 무비판적으로 끌려다녔다), 진보의 강령적 요구를 삭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은 불필요한 타협이자 무엇보다 투쟁에 해악적이다.

민주당의 “반성과 성찰”을 전제로 연합할 수 있다는 변형 버전의 민주연합론도 있다(민주노동당 이수호 최고위원). 그러나 민주당이 집권당 시절에 한미FTA, 이라크·아프가니스탄 파병, 비정규직 확대를 추진한 것은 그 당이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민주당이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근본으로 거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잡겠다는 것만큼이나 무망하다. 민주당 대표 정세균도 “자유선진당이나 친박연대까지[포함하는], 모든 세력과 정책연대”를 하겠다고 했다.

국민참여당도 진보대연합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국민참여당은 “노무현의 적자”임을 자임한다. 노무현은 《진보의 미래》에서 “신자유주의 패키지 안에 있는 절반, 상당히 많은 패키지를 김대중과 노무현이 채택을 해 버렸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신자유주의 말고는 “다른 방법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노무현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비교해 보자. 둘을 비교하는 것이 차베스와 그 지지자들에게는 모욕적으로 느껴질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노무현과 차베스 둘 다 자본주의 정부의 수장이(었)다. 둘 다 거대한 대중 운동 덕분에(노무현은 탄핵 반대 운동 덕분에, 차베스는 쿠데타 반대 운동 덕분에) 정치적으로 구사일생할 수 있었다.

정치적 회생 뒤 둘은 상이한 길을 걸었다. 노무현은 자본가 계급의 신자유주의적 압력에 저항하기보다 굴복했다. 대중에게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라고 호소하기는커녕 반신자유주의 운동을 탄압했다.

반면, 차베스는 때로 모호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지만 우파의 압력에 맞서 대체로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며 대중 투쟁을 호소하고 있다. 그 덕분에 베네수엘라 운동은 급진화할 수 있었다.

국민참여당은 노무현의 ‘좌파 신자유주의’(제3의 길 또는 사회적 자유주의) 사상을 “진보주의”라고 본다. 노무현이 《진보의 미래》에서 신자유주의가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분단선이 될 수 없다고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따라서 국민참여당을 진보대연합의 대상에 포함시키려는 시도(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의장, 민주노동당 이수호 최고위원,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2010연대 등)는 진보대연합의 정치적 시계(視界)를 뿌옇게 만들 것이다. 그리 되면 노무현에게 얼마간 정서적 미안함을 갖고 있지만 그 정책들(특히, 신자유주의와 파병)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광범한 진보개혁 대중을 진보적 정치 대안으로 불러모으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국민참여당 부위원장 천호선은 “‘민주대연합’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란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며, 승리의 가능성이 없는 연합이라면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진보대연합에 부정적 태도를 취했다.

한편, 일부 자주파들은 전략적으로는 진보대연합을 추진해야 하지만, 전술적으로는 민주대연합을 추진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발전시키는 듯하다. 민주당과의 연대연합 반대를 못박아서는 안 된다는, 다시 말해 민주대연합의 불씨를 꺼뜨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인 듯하다. 물론 선거의 경우, 진보진영이 후보를 내놓지 못한 선거구에서는 진보진영이 민주당 후보의 전력과 공약을 살펴보고 그가 진보의 기준에 그런대로 근접한다면 그에게 비판적 투표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대안적 정치연합체 건설을 논의하는 상황에서 민주당과의 연합 문제를 전술의 이름으로 모호하게 열어 놓아서는 안 된다.

당 모델이냐 공동전선 모델이냐

진보대연합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협소하다. 물론 양대 개혁주의 정당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빠진 연합을 두고 진보대연합이라고 부르기는 멋쩍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다시 건설해야 할 진보대연합은 ‘도로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진보적인 NGO에서부터 급진 좌파까지, 단체만이 아니라 개인들도 참여하는 되도록 광범한 연합체가 돼야 한다.

광범하다는 것은 동시에 정치적 이질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 이질적인 세력과 개인 들을 과거 민주노동당처럼 당 모델로 통합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데다 효과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조직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느슨한 연합체, 즉 공동전선적 모델이 단결에 더 효과적일 것이다.

확실히 우파 정부의 공세 때문에 진보진영이 광범하게 단결해야 한다는 조건이 창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수렴은 단지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이한 경향이 숨쉬고 공존할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조직 구조가 필요하다.

분당 이전 민주노동당은 그 내의 정치적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당 모델을 따랐다. 수백 개의 당 강령이 존재했고, 상이한 정치 경향들이 상대 경향들에게 자신의 강령을 따를 것을 끊임없이 강요했다. 자주파는 흔히 당을 패권적으로 운영했고, 당 모델을 적극 주창했던 평등파 리더들은 다른 경향의 정치적·조직적 독자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토론과 실천보다는 많은 문제들에서 끊임없이 긴장이 생겨났다.

따라서 당 모델보다 진보대연합 각 구성 성분의 정치적 독립성, 즉 독자적 행동권을 완전히 보장하고 서로 비판이 자유로운 공동전선 모델이 진보진영의 정치적 재통합을 이루는 데서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옛 민주노동당처럼 수백 개의 강령에 근거하기보다는 현 시기 중요한 과제들 ― 경제 위기 책임 전가에 맞선 저항,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과 억압 강화, 전쟁과 파병 반대 등 ― 에 비춰 뽑아낸 수십 개의 개방적 강령들에 근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요리책에 적혀 있는 조리법 같은 게 진보대연합에는 없다. 상황의 필요를 회피하지 않는 능동적 태도와 정치의 기예를 실행하려는 진지한 자세, 즉 원칙 있는 태도와 전술적 유연성, 불가피하고 필요한 타협을 거부하지 않는 자세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이 그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