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합계출산율이 1.22명까지 떨어지자, 정부는 “국가적 준 비상사태”라며 호들갑을 떨고 이명박이 직접 나서서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반응은 냉담하다. 정부가 내놓은 것들은 아이 하나 낳아 키우기도 힘든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줬을 뿐이다. 

한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 나라 24~39세 남녀 중 71퍼센트가 아이를 2명 이상 낳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 특히 결혼 이후 경제적 부담의 체감도가 더 높았다. 

 

하나 키우기도 팍팍한데 둘셋 낳아야 지원한다며 염장 지르는 정부

 

정부는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하지만, 말만 요란하다. ‘4대강 삽질’과 부자 감세를 위해 희생된 예산 목록에는 여성 일자리·보육 예산도 포함돼 있다. 전체의 5.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국공립 보육시설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관련 예산을 깎아 버렸고, 소득하위 60퍼센트까지 보육료를 전액 지원하겠다더니 이것도 사라졌다. 

‘강부자’ 이명박이야 자식 4명 키우는 게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여성 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70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미래가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임신하면 일자리를 잃을까 불안감에 떨어야 하고, 아이를 열악한 보육시설에 맡기고 뒤돌아 서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나쁜 엄마’로 남아야 할지 직장을 포기해야 할지 고민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아이를 더 낳겠는가. 

유아기 보육만 문제가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지옥의 입시 레이스,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과 대학 등록금 … 한 명 더 낳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한 살 앞당기자는 제안이 황당한 까닭이다. 

낙태 방지 정책을 ‘저출산’ 대책으로 내놓은 것도 문제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임신한 여성을 추적해 10개월 후 출산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 처벌하는 ‘임신 이력추적제’ 안이 나왔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린다. 이는 “여성을 자신의 몸에 대한 재생산권의 주체로 존중하지 않고 국가 발전을 위한 출산의 도구로 전락시켜 여성의 자율권을 통제하려는 반인권적인 관점”이며, “[육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여성들에게 전가하려는 시도일 뿐이다”(11월 26일 진보·여성단체들이  발표한 공동 성명서). 

‘한국인의 일자리를 뺏는다’며 이주노동자 인간사냥을 서슴지 않고 , 제3세계 출신 결혼 이주 여성의 국적 취득을 더 어렵게 하고 있는 정부가 ‘노동력 부족’을 걱정하는 것도 모순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조건에서는 낳는 아이의 수가 줄어드는 추세가 크게 역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프랑스나 북유럽 복지국가들에서 출산율이 어느정도 증가한 것은 육아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무상교육, 사회안전망 덕분일 것이다. 이 나라들에서는 30대 초반 여성들의 경력단절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선진화” 운운하는 이명박은 “선진국이 어떻게 했다고는 하지만 … [한국에서] 그대로 될 수만은 없다”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지원에 이토록 인색한 정부가 내세우는 ‘저출산’ 대책은 사람들의 가슴에 염장만 지를 뿐이다. 

저출산이 ‘문제’인가?

이명박은 저출산을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보지만, 과연 그런가. 이명박의 ‘저출산 대책’을 비판하는 사람들 중 일부도 이런 대전제는 공유하는 듯하다. 물론 조건도 마련해 주지 않고 낳으라고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지만, 국가의 인구정책에 여성의 출산을 끼워 맞추려는 발상 자체도 문제다.  

한국 정부는 언제는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며 낙태와 정관수술을 강권하더니 이제는 더 낳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고 낙태하는 여성을 비난하고 있다. 이것은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 존중과는 거리가 멀다.  

1960년대 이후로 피임기구가 보편적으로 공급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면서 출산율도 떨어져 왔다. 이처럼 여성들이 어느 정도 스스로 임신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은 ‘문제’적 현상이 아니라, 여성들에게 진전된 조건이다. 또,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상관없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인구수는 사회적 조건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문제는 인구수 자체가 아니라, 사회의 조직 방식이다. 멜서스가 인구의 기하급수적 증가로 인류가 망할 것이라는 과대망상적 예측을 했을 때나 지금이나, 세계 곳곳에는 일하고 싶지만 실업자 신세인 사람들이 넘쳐난다.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남아 돌지만 빈곤 인구는 증가하는 모순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인구는 당분간 줄어들지 몰라도 세계 평균 출산율은 2.67명으로 세계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국경을 세계 노동자들에게 개방해 진정한 ‘다문화주의’를 실현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애 많이 낳으라고 윽박지르는 것보다 훨씬 더 합리적인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