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관한 두 권의 훌륭한 책 ─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이하 《호메이니》, 《이란의 여성, 노동자, 이슬람주의》(이하 《여성 노동자》)) ─ 이 나왔다. 아마도 2009년 이란 민중의 위대한 항쟁이 이란에 대한 관심을 높였기 때문이리라. 

올 6월 이란에서 부정 선거 의혹에 항의하는 대규모 가두시위가 터져 나왔을 때 국내외 좌파들은 우익 정부에 맞선 이 항쟁을 쌍수를 들고 환영한 집단과 시위대의 뒤에 미국의 비밀공작이 있다고 믿은 집단으로 분열했다. 나는 전자의 관점에서 거리에서 용맹하게 투쟁한 평범한 이란인들을 옹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2009년 6월 이란 항쟁 당시 시위대 선두에 선 색안경을 낀 여성

이 두 입장 뒤에는 사회를 바라보는 두 가지 상이한 관점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 논쟁은 누구의 주장이 이란의 사회·정치·역사적 현실과 더 잘 들어맞느냐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이 두 책은 내 입장을 뒷받침하는 귀중한 증거들로 가득하다(나는 이 책들을 읽으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더구나, 이 책들은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자 도저히 친미·우익적 관점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쓴 것이다. 

유달승은 한국 최초의 이란 유학생이자 〈한겨레〉에 ‘유달승의 중동이야기’라는 칼럼을 연재하면서 진보적 관점에서 복잡한 중동 문제를 평이하게 해설해 주는 발군의 역량을 보여 왔고, 최근에는 오바마의 아프가니스탄 증파를 강하게 비판했다.

포야는 이란의 전투적 활동가 출신으로, 과거 파리 망명 중이던 호메이니를 면담했고(이 장면은 책에 묘사돼 있다), 1978~79년 이란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가했으며, 최근에는 영국에서 이란 사회를 연구하면서 반전 단체인 전쟁저지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두 책은 성격과 초점이 다르며, 정치적 변화와 사회경제적 변화를 상호 보충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호메이니》는 호메이니의 일생을 통해 본 20세기 이란 정치사다. 반면에 《여성 노동자》는 20세기, 특히 이란 혁명 이후 이란의 사회적 변화, 특히 이란 여성의 삶의 변화를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추적했다.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유달승 지음, 한겨레, 304쪽, 1만 3천 원

《호메이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복잡한 이란 정치사를 쉽고 평이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주류 언론의 편견에 찬 보도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오해하기 쉬운 점들 ─ 예컨대 “이란은 아랍이 아니다”라는 아주 기초적 사실부터 ─ 을 그 때그때 정리해 주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최근 이란 항쟁이 서방의 지원을 받은 친서방 부유층이 주도했다는 주장이 알고 보면 얼마나 얄팍한 지식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인지 보여 주는 것이다. 예컨대, 이란 항쟁에 반대한 일부 좌파들은 참가자들이 주로 상층계급이라는 근거로 색안경을 포함한 그들의 치장을 지적했다. 즉, 차도르를 쓴 ‘하층’ 여성들이 아니란 것이다. 그러나 유달승은 그런 주장을 자신의 경험을 들어 쉽게 반박한다. 이란에서는 자외선이 강해 누구나 색안경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도 이란에 처음 갔을 때 빨리 색안경을 구입하라는 조언을 들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 책에는 석유가 이란-미국 관계에 미친 영향, 미국의 대중동 정책, 이란 혁명에서 호메이니가 좌파들을 척결하는 과정 등 이란 정치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묵직한’ 얘기들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란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이란 혁명의 배경이 된 계급적 동력 ─ 예컨대, 호메이니와 경쟁 혹은 협력한 좌파 세력들의 정치와 혁명기 ‘쇼라’라는 기층 노동자 조직으로 활짝 핀 전투적 이란 노동자 운동 ─ 에 대한 분석이 간단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책이 〈한겨레〉에 연재됐던 짧은 글들을 모은 입문서의 성격을 가진 점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는 약점이다. 동시에 아마도 저자가 호메니이에 대한 그동안의 왜곡된 논의들을 의식한 탓인지 호메이니의 모순과 약점에 대한 지적이 때때로 날카롭지 않거나 별다른 논평 없이 나열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호메이니의 모순

《이란의 여성, 노동자, 이슬람주의》마르얌 포야 지음, 정종수·차승일 옮김, 책갈피, 272쪽, 1만 2천 원

반면에, 《여성 노동자》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여성 문제를 중심으로 사회경제적 변화를 깊이 있게 분석하면서 호메이니와 그가 탄생시킨 새로운 이란 국가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다.  

포야는 주류 언론들과 달리 혁명 이후 이란 사회와 여성의 처지 변화를 이데올로기(이른바 ‘이슬람 근본주의’)로 환원하지 않는다. 그는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지만 이란 사회와 여성 처지의 변화가 다양한 요소들 ─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 승리한 운동에 참가한 대중의 자신감과 기대, 상인을 포함한 호메이니의 보수적 지지층의 압력, 국제 제국주의와 시장의 압력 ─ 이 상호 작용한 결과임을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혁명 후 새로운 이란 국가가 온갖 모순된 방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이것의 대표적 사례로, 새 정부는 샤 시대 시작된 불완전한 여성권 개혁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 종종 이것은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의 얼굴에 황산을 끼얹는 대단히 야만적인 형태를 띠었다 ─, 다른 한편으로 광범한 농촌 여성들에게 생애 최초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었다. 

더 중요한 것은 포야가 이란 사회를 변화시킨 다양한 요소들 중에서도 국내외의 자본주의적 경쟁 압력이 새 정부의 행동에 족쇄를 채우는 구실을 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여성들이 일자리를 찾을 기회를 만들었지만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로 정당화한 저임금 체제를 강요했다. 

포야는 자본주의의 압력 때문에 발생한 이슬람주의 국가의 온갖 미사여구와 현실 정책 간 격차가 여성 운동을 포함해 다양한 투쟁을 낳은 가장 중요한 동력 중 하나였음을 지적한다. 그 결과 왜 흔히 정부의 이데올로기적 틀 내에서 시작된 운동이 성장하면서 결국 정부와 충돌하는 길로 가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단지 여성 운동에만 해당하는 특성이 아니다. 이것은 올해 이란 항쟁 당시 일부 국제 좌파가 아흐마디네자드의 이데올로기와 모순적 ‘서민 정책’을 근거로 이란 민중이 정부에 도전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 얼마나 단편적인가를 잘 보여 준다.   

물론, 포야의 분석에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주요한 분석 틀의 하나로 ‘가부장제’를 사용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적 틀과 긴장을 빚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란에 관한 대단히 중요한 이 두 책의 출간으로 한국 진보진영에서 2009년 이란 항쟁이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