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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을 자극하는 경기 후퇴

투쟁을 자극하는 경기 후퇴

노무현이 경제 살리기에 나섰지만 경제 지표들은 여전히 불황의 조짐들을 보여 준다. 기업의 투자는 얼어붙고, 재고는 급증하고, 무역수지는 올해 들어 5개월 연속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더욱이 향후 경기를 예고하는 경기 선행지수도 9개월째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경기가 급격히 하강하자 정부는 올해 성장률을 5퍼센트대에서 3퍼센트대로 하향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가 고성장, 저실업 상태에서 저성장, 고실업 상태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한국 경제가 1997년의 금융 공황을 다시 겪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표출되기도 한다.

정부와 사장들은 성장률이 둔화하고 무역수지가 적자를 면하지 못하며 설비 투자가 위축되는 사태를 이제는 외부적 요인 탓으로 돌릴 수 없게 됐다. 이라크 전쟁도 끝났으며, 사스 충격도 완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1998∼2002년의 경제 성장률이 4.6퍼센트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경제는 1997년의 위기를 겪은 뒤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을 구가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해외 자본의 유입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해외 투자 자본이 2000년에는 157억 달러에서 2002년에는 91억 달러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경제 성적을 나타낸 둘째 이유는 국내 민간소비의 급격한 증가 때문이었다. 이런 소비는 주로 대규모 주택 거품과 무분별한 신용카드 대출의 결과였다. 한국 경제가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는다면 가계 부채가 주요 금융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카드채 위기가 한 고비를 넘겼는데도 ‘7월 대란설’ 등 위기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가계 부채는 국내총생산의 70퍼센트에 이르렀다. 전국 가정의 대략 40퍼센트가 자기 자산보다 더 많은 부채를 지고 있으며 개인 파산의 위험에 처해 있다.

대란

기업 수익률이 저하하면서 시중의 부동 자금이 부동산 거품을 일으키고 있다. 부동산 투기 열풍은 생산 부문에서의 수익성 하락에서 비롯한 것이다.

올해 1사분기 상장기업 순이익은 작년의 같은 기간에 비해 35.4퍼센트가 줄어들었고, 많은 코스닥 등록 기업들이 적자로 바뀌었다.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증권 시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결산 상장기업 529개사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지난해에 비해 5.4퍼센트와 15.4퍼센트 하락했다. 한국산업연구원의 한 보고서도 기업의 수익성이 2000년 이래로 계속 하락해 2001년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IMF 위기가 시작된 1998년보다 더 낮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외국인 투자와 개인 소비 수준이 하락하면서 성장의 수출 의존도가 크게 증가했다. 사실, 한국 경제는 1997년 “IMF 위기” 이전보다 더욱 수출 의존적인 경제로 바뀌었다. 제조업 부문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7년의 35.9퍼센트에서 2001년에 45.9퍼센트로 증가했다. 중화학공업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7.7퍼센트에서 48.7퍼센트로 증가했다.

그런데 미국 경제의 성장 둔화와 미국 달러화의 가치 하락, 유럽 경제의 침체와 디플레 조짐으로 한국의 수출업자들은 다시 한번 이윤 압박을 받고 있다.

최근의 이런 성장에도 불구하고 노동대중의 기본적인 생활수준 및 노동조건은 여전히 열악한 상태다. 한국의 빈곤율이 1999년의 최고점에서 하락하고 있긴 하지만 1997년의 ‘IMF 위기’ 전보다는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도시 지역의 불평등은 계속 커지고 있다.

더욱이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율은 줄어들지 않았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상위 20퍼센트와 하위 20퍼센트의 소득 격차가 악화되어 1997년 위기 직후의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미사여구

불황은 자본주의의 동학 자체에서 기인한다. 기업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고 경쟁 기업들에 비해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신기술을 도입하고 설비 투자를 늘린다.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투자를 확대할 때는 경기가 호황을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호황을 이끌었던 바로 그 요인이 불황을 재촉한다. 기업들은 외형을 확대하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지라도 투자 대비 수익, 즉 이윤율의 부담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호황에서 불황으로 바뀌면 기업들이 경쟁 상대보다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벌인 갖가지 추악한 면들이 폭로된다. 온갖 비리와 투기 그리고 사기 행각이 수면 위로 부상한다. SK 그룹의 회계 부정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경기 침체가 가속화할 것을 우려해 추경예산을 늘리고 수도권 공장 설립에 관한 규제를 완화하고 법인세 인하를 검토하는 등의 친기업 정책을 들고 나왔다. 또,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조사를 올 하반기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경제자유구역법의 통과에서 알 수 있듯이, 노무현 정부는 민중주의적 미사여구와는 달리 실제로는 분명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성장이나 분배 면에서 상황이 호전된 사례보다는 더 열악해진 경우가 더 많다. 사장들은 수익성 하락을 벌충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공격하고자 한다.

경제 위기는 노동 대중에 대한 공격뿐 아니라 지배자들 내부의 갈등도 증폭시킨다.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지배자들이 벌이는 이전투구는 노동자들이 반격할 수 있는 유리한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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