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 지도부가 12월 3일 파업 중단을 선언했다. 이명박의 강경 대응에 강력하게 맞서지 않고 아쉽게도 빈손으로 업무 복귀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한상률 게이트, 세종시 반발 등 정치 위기로 코너에 몰리고 있던 이명박은 이번 철도 파업에 히스테리를 부리며 전방위적 탄압을 가했다. 이명박은 전 경찰청장 출신의 철도공사 사장 허준영도 못 미더워 자신이 손수 나설 정도로 탄압에 열을 올렸다.

이런 열기를 받아 안고 싸우기는 커녕 투쟁을 접어버린 철도노조 지도부

불법 파업 규정, 체포영장 발부, 무더기 직위해제와 고소고발, 파면 협박 등 그야말로 막가파식 탄압이 이어졌다. 경제 5단체들도 합동 담화문까지 발표하며 “파업 장기화로 생산 활동이 마비되고 국가 신인도가 하락”한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런 십자포화 탄압 속에서도 노동자들의 파업 참가율은 꽤 높았다. 유례없는 단협해지까지 자행하는 “먹통” 정부와 사장에 대한 현장조합원들의 불만은 일주일이 넘어서도 1만 2천여 명이 파업에 참가할 정도로 강했다. “보름이고 한 달이고 싸울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고, 한 지부에서는 장기화를 대비해 1인당 50만 원씩의 투쟁 기금을 모았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무엇보다 이번 파업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명박에 맞선 투쟁의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 준 이번 파업은 “국민파업 2호”라는 별칭을 얻기 시작하며, 광범한 지지를 끌어냈다.

“철도의 승리가 국민의 승리”라는 촛불 네티즌들의 지지, 민주당까지 거든 야 4당의 ‘공공기관 선진화’ 비판, 참여연대와 〈한겨레〉 등 시민단체와 자유주의 언론 들까지 나선 “노조탄압 공안몰이” 규탄 등 여론은 파업 노동자들의 편이었다.

교수들과 각계 원로들도 지지 선언을 준비하고 있었고, ‘파업이 청년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저들의 비난을 조롱하듯, “반드시 승리해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네티즌들의 응원이 줄을 이었다.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한 정당한 파업’을 옹호하기 위한 대학생들의 기자회견과 지지 행동도 예고돼 있었다.

이런 지지 속에서 철도 파업은 이명박에 맞선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단호한 투쟁을 이어가며 연대를 확산시키면 판세는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철도노조 지도부는 이런 기회를 저버리고 파업을 중단했다.

‘복귀했다가 곧 다시 싸우겠다’는 변명도 하고 있는데, 일찍이 독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했듯이 노동자들의 자주적 행동은 지도부가 “아무 때나 꺼내 쓸 수 있는 주머니칼”이 아니다. ‘가장 조직력이 높을 때 끝내야 한다’는 황당한 논리도 있다. ‘박수 칠 때 떠난다’는 식인데 권투선수가 가장 힘과 컨디션이 좋을 때 싸워야지 링을 내려가는 게 말이 되는가?

주머니 칼

철도노조 지도부는 사실 이번 파업을 이끄는 과정에서 철도 노동자들의 힘을 최대한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산개가 아니라 거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거점 형성이 정치적 초점을 제공하며 노동자들의 사기와 투쟁 의지를 끌어올리며 무엇보다 조합원들이 노조 지도부를 통제하는 데도 효과적이라는 점을 부담스러워 했던 듯하다. 결국 곳곳에 흩어져 있던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지도 못한 채 전화 연락이나 TV 속보를 통해 파업 중단 소식을 들어야 했다.

철도노조 지도부는 처음부터 필수유지업무를 철저히 준수하는 합법 파업에 너무 연연하며 파업의 위력을 최대화해 속전속결로 승리할 수 있는 길을 한사코 피했다. 파업 파괴자 구실을 하는 대체인력 투입을 저지하는 ‘피켓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불법화돼 있긴 하나 그만큼 피켓팅은 파업의 위력을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전술인데 말이다.

투쟁의 전진을 가로막고 국가와 전면 충돌을 회피하며 노조 조직 기구의 보존만을 중시하는 노조 상층 지도부의 보수적 속성이 이번 철도노조 지도부의 모습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철도노조 지도부는 “국가 경제를 뒤흔들면 안 된다”는 저들의 협박에도 취약했다. 부자감세와 4대강 삽질에 돈을 퍼붓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정면으로 도전해 “국가를 흔들어야” 성과를 낼 수 있는 상황에서도, 투쟁을 확대·강화하는 데 주저했다.

철도노조가 혼자 고립돼 싸우도록 놔둔 공공운수연맹과 민주노총 지도부의 연대 건설 지연도 문제였다. 공공부문 노조 지도자들은 하반기 공공부문 투쟁의 첫 포문을 연 10월 10일 집회에서부터 그토록 “공동 투쟁”을 강조했으면서, 실질적인 공동 투쟁을 실행하지 못했다.

공공운수연맹 지도부는 2차 파업 날짜를 일주일이나 연기하며 멀찌감치 투쟁 일정을 잡았고, 민주노총은 5일 계획했던 연대 집회 주최조차 취소하며 늦장을 부렸다. 이명박의 위기 탈출에 힘을 보태며 투쟁에서 이탈한 한국노총 지도부의 배신도 투쟁 전선에 찬물을 끼얹었다.

우파 노조 지도자들의 배신에 이어 상대적 좌파 노조 지도자들도 한계를 보인 셈이다. 철도 파업의 승리가 전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한 것일 뿐 아니라, 계급간 세력 저울에도 큰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고리였는데도 말이다. 이명박에 맞선 투쟁의 상징이 되고 있던 철도 파업이 정치투쟁으로 발전할 조짐도 있었다.

아쉽게 파업이 종료됐지만, 이번 투쟁은 이명박의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 자체의 정당성을 땅에 떨어뜨렸다. 이명박이 몰상식한 ‘반노동·노조 파괴’의 선봉장임을 다시 한 번 명백하게 드러내 보였다. 역사상 최장기인 8일간 파업으로 철도노조의 새로운 역사를 쓴 철도 노동자들의 의식과 조직도 성장했을 것이다.

더구나 철도 파업이 중단됐지만 이명박의 위기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이명박은 지금 자신의 정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도곡동 땅’ 진실을 감추려고 언론까지 통제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명박은 4대강·세종시 반발이라는 첩첩산중의 난관에 부딪혀 있고 아프가니스탄 파병도 큰 반발을 낳고 있다.

기아차 좌파 집행부의 당선에 이어, 올해 초 민주노총을 탈퇴한 인천지하철노조 선거에서도 민주파 후보가 당선한 것에서 보듯 노동자들의 자신감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따라서 전체 노동자 운동과 진보진영은 실망하지 말고 부패한 이명박 정부의 친부자 본질을 폭로하며 투쟁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공공기관 선진화’에 맞선 투쟁을 재개하며 반이명박 정치투쟁과 결합을 시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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