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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견해가 왜 중요한가?

정치적 견해가 왜 중요한가?

케빈 오벤던(영국의 좌파 언론인)

“이 운동은 무척 새로운 운동이다. 그런데 왜 낡은 생각으로 돌아가는가? 신문을 만들고 파는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최근 한 토론회에서 나온 질문이다. 답변은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 속에서 사람들이 겪은 경험으로부터 나왔다.

지난 3년 동안 세계적인 운동이 엄청나게 성장했다. 그것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올해 2월 15일이었다. 2백만 명이 런던에서 행진을 했다.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 시위였다.

이것이 겨우 넉 달 전의 일이라는 사실을 잊어먹기 쉽다. 그러나 정부와 권력자 집단은 결코 잊지 않는다. 당시 그들은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 사건은 오래된 사회주의적 견해, 즉 노동계급 대중이 들고일어나 체제와 충돌할 수 있고 그것도 갑자기 그렇게 한다는 견해를 확인시켜 주었다.

물론 수많은 대중이 상시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보통 억눌리고 소외돼 있다고 느낀다. 자본주의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도록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체제의 적어도 한 가지 측면에 대해 공통의 적대감을 공유하는 수많은 개인들이 얼마나 급속하게 단결할 수 있고 자신들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우리가 본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이 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우리 지배자들이 얼마나 멀리까지 갈 것인가 하는 점도 알게 됐다.

주류 정당들과 언론은 이를 위해 한데 뭉쳤다. 그들은 전쟁에 찬성하는 선전 공세에 그치지 않았다.

전쟁을 둘러싼 진정한 논쟁은 의회 정치 안에서, 토니 블레어(보수당 당수 이안 던컨 스미스의 지원을 받는)[자유당 지도자] 찰스 케네디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교묘한 주장도 마찬가지 구실을 했다.

그러나 전에 어떤 단서를 달았건 간에 전쟁이 시작되자 케네디(와 노동당 의원 대다수)는 전쟁 찬성으로 돌아섰다. 〈데일리 미러〉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우리에게는 주류 언론이 아닌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운동 자체의 성장과 관계 있는 다른 이유들도 있다.

역사적 경험을 보면, 대규모 운동이 일어남에 따라 전에는 결코 스스로 정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람들이 운동에 참가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반전 운동과 반자본주의 운동은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2년 전 제노바 시위 같은 반자본주의·반전 시위를 소수 전투적인 활동가들의 행동일 뿐인 것으로 깎아내리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이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의 더 큰 정치적 견해가 무엇이든 간에 그 모든 사람들 사이에는 심원한 일체감이 형성됐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여타 쟁점들을 서로 연결시켰다.

운동은 정치적 문제들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첨예한 논쟁

반자본주의 운동을 제노바 거리에서 분쇄하려 했던 이탈리아 국가의 시도는 첨예한 논쟁을 일으켰다.

시위 참가자 카를로 줄리아니의 죽음은 대규모 시위를 다시 조직하는 것이 이제 가능하지도, 올바르지도 않다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탄압에 맞서 싸우는 길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대규모 시위에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다수파였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기존 권력을 품위있게 압박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서 소수 활동가들이 국가와 대결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 이들 모두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쳐야 했다.[전자는 주요 NGO들과 개량주의 조직들의 지도자들을 가리키고, 후자는 자율주의자들과 기타 과도 좌익적 엘리트주의자들을 가리킨다.―옮긴이]

반전 운동은 처음부터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다수의 견해가 된 것은 운동이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두 포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목표는 수많은 지역적 발의들을 고무하고, 결정적으로는, 대중 동원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우리의 힘을 대 정부 투쟁에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전쟁에 반대하는 자생적인 대중 정서가 존재했다. 그것이 대규모 항의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되도록 사람들이 함께 조직했기 때문이었다.

운동 안에서 조직이 꼭 필요한 이유는 운동을 진전시킬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전술 문제들 때문만은 아니다.

한 가지 쟁점, 예컨대 이라크 전쟁 문제를 둘러싸고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다른 쟁점들과 관련해서는 [우파의] 거짓말을 받아들일 수 있다. 가령,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난민 문제에 대한 우파의 거짓말을 꿰뚫어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운동에 참가하면 시각이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은 좀더 커진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되려면 그런 미묘한 문제들을 둘러싼 논쟁에서 이겨야 한다.

그래서 사회주의 신문은 주류 언론이 외면하는 이라크 전쟁과 점령 관련 사실 보도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주의 신문은 모든 문제를 서로 연결시키려 한다. 활동가들의 최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운동 전체를 진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려 한다. 과거 투쟁의 역사를 이용하기도 한다.

1840년대 차티스트 운동 이래로 노동계급 운동 안에서는 설복 대 강력한 대중 동원, 개혁 대 혁명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늘 논쟁이 있었다.

오늘날 중요한 문제들로 떠오르는 것들은 과거의 모든 사회 운동에서 제기됐던 문제들이 새로운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그런 [역사상의] 문제들을 되돌아보면서 오늘을 위한 영감과 지표를 찾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오만한 태도가 될 것이다.

사회주의 신문은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판매된다. 사회주의 신문은 그런 네트워크들을 결합시켜 조직된 세력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그런 세력은 이 체제에서 비롯한 전투 모두에 더 광범하게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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