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점거 투쟁에 나선 오스트리아ㆍ세르비아 학생들의 목소리

유럽 전역에서 학생들의 점거 투쟁과 항의 시위가 분출하고 있다. 오스트리아ㆍ세르비아ㆍ영국의 학생 활동가들이 투쟁을 어떻게 조직하고 있고, 왜 싸움에 나섰으며, 자신들의 투쟁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말한다.

빈 대학교 ― “우리는 국회의사당을 에워쌌다”

카타리나 리츠샤우어

오스트리아의 학생들은 정부가 교육재정을 악화시키고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하려 하자 석 달 넘게 점거 투쟁을 벌이고 있다.

빈 대학교는 맨 처음 점거 투쟁이 벌어진 곳이고, 이 운동의 중심부다.

지난주 우리는 “진정한 교육을 위한 대담(Real Education Dialogue)”이라고 이름 붙인 전국 점거 투쟁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우리는 투쟁에 새로 동참한 사람들과 점거 투쟁을 전진시키려는 전술 문제로 토론을 벌였다.

그 후 우리는 거리로 나가 국회의사당을 에워쌌다. 우리는 대학의 열악한 상황이 누구의 책임인지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그리고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려면 어떻게 정부를 압박하고 싸워야 하는지도 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정부는 3천4백만 유로(약 5백80억 원)를 교육에 투자하겠다고 말했지만, 이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정부는 고등교육부 장관과의 대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이런 대화는 대다수의 학생들을 배제하려는 시도다. 우리는 이 제안을 거부했고, 고등교육부 장관이 운동 전체와 대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저들의 양보가 기만적이고, 그런 양보로는 우리의 요구들을 전혀 실현시킬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하다. 그러나 저들의 양보는 항의 운동의 정당성을 보여 주며, 우리가 바라는 변화와 그런 변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토론해야 한다는 점도 보여 준다.

최근 몇 주 동안 수많은 학생들이 논쟁을 벌이고, 거리에 나서고, 글을 쓰고, 기자회견에 참가했다. 이들은 어떻게 해야 변화가 이뤄지는지를 이해할 정도로 의식이 성장했다. 정부나 학생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집단적으로 조직화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정치인들과 [주류] 신문들은 이런 소식이 듣기 싫겠지만, 학생과 강사 들은 이런 소식을 더욱 더 많이 듣길 원한다.

지리학부 내의 특별위원회(working group)는 신문을 발행하는 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이 학부 학생인 안냐 마르셔는 이렇게 설명했다. “강사 두 명이 점거 투쟁에 대한 글을 썼고, 그리하여 우리의 투쟁을 결합시키는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신문 배포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과 토론할 수 있고, 새로운 사건이 터졌을 때 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 학부 안에서 새로운 학생과 강사 들을 설득하려고 더욱 노력해 왔고, 그들의 에너지를 대규모 시위와 토론회에 결합시키려 애써 왔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광범한 운동을 건설해 투쟁을 지속시키는 길이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내년 3월 빈에서 열릴 볼로냐 정상회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볼로냐 프로세스는 유럽의 신자유주의적 고등교육을 보여 주는 청사진이다. 이 프로세스를 통해 교육재정이 대폭 삭감되고, 수업료가 오르고, 교육이 시장에 내맡겨질 것이다.

유럽의 각국 정부는 자신들의 “업적”을 기념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업적”은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공격을 더는 참지 않을 것임을 보여 줄 것이다.

우리는 점거 투쟁을 벌이는 동안 교육 부문의 노동자들뿐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과도 관계를 맺었다. 노동조합과 연계가 이뤄져, 노동조합 상근 간부와 평조합원 둘 다와 관계를 맺게 됐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것은 고등교육 재정 삭감만이 아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학생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는 항의 시위에 나가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내걸었다. “은행과 기업이 아니라 교육에 돈을 써라!”

결국, 체제 전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교육에 투자하는 돈이 충분치 않고 대학이 비민주적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상식”이다. 우리는 우리의 요구들을 쟁취하기 위해 단단하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정부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공격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스스로 준비해야만 반격에 나설 수 있다.

빈 대학교 ― “수많은 학생들이 가담한 특별위원회들”

디에트마 마이스터

최근 몇 주 동안 학생들은 스스로 조직화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이런 일은 다른 나라에서도 벌어졌다). 빈에 위치한 핵심 대학교에서 점거 투쟁이 벌어지자 1백 개가 넘는 특별위원회가 출현했다.

빈 대학교 한 곳만 놓고 봐도 정말 많은 학생들이 특별위원회에 포함돼 있다.

한 위원회는 신문을 발행한다. 이 위원회는 공개적으로 편집 회의를 하고, 신문 재정 마련을 위해 모금을 하며, 그 후에 대학·지하철·도시에서 신문을 배포한다.

또 다른 위원회는 점거한 강의실을 청소하는 활동을 조직한다. 매일 아침에 이 위원회에 속한 학생들은 대학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청소를 한다.

[점거가 시작된] 첫째 날부터 먹을 것을 마련하는 일은 급선무였다. 대형 강의실과 가까운 방 안에 주방이 있어 그곳을 점거했다. 사람들은 매일 이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 빵집들, 상점들이 지원 물품을 보내 준다.

우파 학생 패거리나 경찰이 이곳을 침탈하거나 공격하는 것에 대비하는 사수대를 책임 맡은 위원회도 있다.

경찰은 대학교 총장이 승인해야만 건물에 들어올 수 있다. 지난주에 우파 정당인 오스트리아인민당은 대형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쫓아내라고 총장에게 주문했다.

총장은 그 제안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그는 전체 학생총회와 한 협상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전체 학생총회는 학생들 다수의 토론과 결정이 이뤄지는 자리다.

지금은 강의실 점거자들이 처음보다 줄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운동에 대한 지지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경찰이 우리를 쫓아내려 한다면 우리는 정기적으로 갱신되는 문서와 이메일 목록에 담긴 수많은 학생들을 찾아갈 것이다.

학부총회와 항의 시위가 열릴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투쟁 동력을 제공해 줄 체계를 이곳에서 구축하는 것이다.

앞을 내다본다면, 우리는 점거 투쟁이 운동의 전부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점거 투쟁만큼 중요한 것은 투쟁 전술을 논의하고 사람들을 조직할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런 체계들이 지금까지 발전해 왔고 여전히 발전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벌어질 공격에 반격할 수 있다.

이 투쟁은 국제적인 운동이다. 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항의 행동은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며, 그래서 경험한 것을 서로 배우고, 세계 각국 정부들을 압박하고, 우리의 힘을 거리에서 보여 줄 수 있다.

베오그라드 대학교 ― “위기의 대가를 치르도록 강요받는 사람들이 모두 단결하다”

마티야 메데니차

지난 2주 동안 학생들의 새로운 항의 시위 물결이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의 거리를 휩쓸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참가한 네 차례 행진은 교육과 그 밖의 부문들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반대하는 행동에 새 장을 열었다.

교육부 장관과 한 협상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두 달 뒤에 거리에서 운동이 분출했다. 수많은 학생들이 무상교육의 권리를 빼앗고 고등교육을 시장에 내맡기는 정부의 ‘개혁’이 추진되자 투쟁을 벌인 것이다.

지난 십년 동안 이렇게 대규모이면서 정치적인 항의 운동은 없었다. 둘로 나뉜 도시를 잇는 두 개의 주요 다리를 봉쇄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우리는 수요일과 금요일에 브랑코 다리를 봉쇄했고, 금요일에는 가젤라 다리를 봉쇄했다. 이 행동은 볼로냐 교육개혁(EU의 지원 아래 교등교육을 시장에 내맡기는 프로세스) 관련 국제회의 장소 앞에서 항위 시위가 있은 뒤에 일어났다.

베오그라드 대학교 학생의회(student parliament) 의장이 이끈 [우리의] 첫 번째 항의 시위가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분노가 더 광범하게 확산됐다.

우리는 세르비아 안에서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다. 최근 실시한 여론 조사가 보여 줬듯이 이 투쟁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국민의 12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교사, 택시 운전기사, 화학 부문 노동자, 파업위원회(inter-strike committee) 위원 들한테서 지지·연대 서한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정부가 우리의 요구들을 들어주지 않으면 우리의 투쟁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운동 안의 정서는 처음으로 노동계급의 진정한 정치적 대안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급진화 때문에 집권당의 일원인 학생의장은 뒷걸음쳐 운동을 배신했다. 정부가 우리의 요구들 중 일부를 들어주겠다고 모호하게 ‘약속’하자 그는 항의 시위를 취소해 버렸다.

학생 활동가들과 투쟁 지도자들은 속았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대책회의를 열고 항의 운동을 지속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무상교육 요구를 추가했으며, 우리를 저버린 지도자들은 사퇴해야 한다는 결정도 내렸다.

지난주 목요일에는 소규모 항의 시위를 벌였는데, 이 시위에서 우리는 불도저 운전기사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들 중에] “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운전기사 류비사브 도키츠는 증오의 대상이던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무너뜨린 시위의 선두에서 불도저를 몰았고, 그래서 투쟁의 상징이 됐다.

조는 우리의 지난번 행진에 두 번 참여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에 있는 녀석들은 모두 공짜로 공부했습니다. 나는 세금을 내 저들의 공부 비용을 대신 지불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들은 여러분이 공부를 하고 싶다면 돈을 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위기를 일으키지 않았는데도 위기의 대가를 대신 치르도록 강요받는 모든 부문의 사람들과 힘을 모으려 애쓰고 있다.

이번 투쟁과 과거 투쟁의 핵심 차이는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고 역대 정부들의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비롯한 쓰라림이 팽배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런 분노는 불꽃이 돼 9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을 휘감는 불길 같은 투쟁을 촉발할 수 있다.

2000년 10월 5일 세르비아 혁명은 노동계급 대다수의 가슴에 희망을 불어넣은 바 있다. 이 혁명으로 전쟁, 경제 제재, 정치적 탄압, 엄청난 절망의 시대가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오래가지 못했다.

밀로셰비치의 세르비아사회당에 반대해 세르비아민주당이 이끈 옛 세력은 이내 대규모 실업과 민영화를 불러올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데 헌신했다.

배신

노동계급은 새로운 통치자들에게 배신당했음을 깨달았다. 지배계급은 외국자본의 수혈 덕분에 사회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3년 이후 실업률은 여전히 높았다. 개인이 진 빚은 2005~2007년에 갑절 이상 증가했다.

2009년 초 이후 파업이 급격히 늘고 있다.

이 투쟁은 급진화됐고 확산됐다. 어떤 노동조합 지도자는 임금 체불에 항의해 자신의 손가락을 절단하는 필사적인 몸부림을 보여 줬으며, 공장 점거 파업과 고속도로·철도 봉쇄 투쟁이 크게 늘었다. 또, 첫 파업위원회가 구성됐다.

한 달 전에 정부는 고민에 빠져 있는 듯했다.

IMF는 국영 부문의 규모를 대폭 줄일 것을 요구했다. 그리 되면 몇 달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러시아는 협상이 끝나기 겨우 며칠 전에 1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겠다며 이 협상에 끼어들었다. 이런 일은 결과적으로 사회 불안을 지속시켰다.

그때 학생들이 들고 있어났던 것이다.

서식스 대학교 ― “일 년 전에는 이런 일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사이먼 엥글럿

전 세계와 유럽 학생들의 최근 점거 투쟁과 시위 물결을 보면서도 어떤 이들은 이런 일이 영국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해 영국 학생운동이 급진적 변화를 겪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운동은 1월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에 항의해 대학들에서 점거 투쟁이 벌어지면서 시작됐다. 최근에는 교육 부문에 대한 신자유주의 공격에 저항하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육 지원액 감축에 항의해 런던메트로폴리탄 대학교, 리버풀 대학교, 런던 대학교 킹스칼리지에서 운동이 전개됐다. 또, 리즈 대학교에서는 6백 명을 해고한 것에 항의하는 투쟁이 일어났고, 버밍엄 대학교에서는 사회학부 폐지에 맞선 저항이 있었다. 이런 일들이 모두 최근 학생운동의 동향을 보여 준다.

최근 서식스 대학교의 경영진은 노동자 1백15명을 강제 해고했고, 72시간 단기 계약직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시위와 대중 집회가 잇따랐다. 대학 이사회 회의 장소 바깥에서는 학생 5백 명이 항의 시위를 벌였고, 그중 3백 명이 회의가 열리는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일 년 전에는 이런 일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브라이턴에서 우체국 노동자들과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 승리는 노동자들의 전투성뿐 아니라 이 투쟁에 동참한 학생들의 전투성도 보여 줬다. 학생들은 피켓 라인[대체 인력 투입과 파업 대오 이탈을 막는 대열]을 지지 방문했고, 파업 참가노동자들도 학생회에 지지 방문해 연설했다.

이런 단결 행동을 건설해야 한다. 1월에 열리는 노동권총회(The Right to Work Conference)는 명백히 이런 일을 하려는 회의다.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려고 유럽 바깥을 살펴보거나 옛 일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분명히 지금 이곳이 변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변화의 중심에 서야 한다. 사태를 바꾸고, 패배의 세월을 날려 버리도록 투쟁해야 한다.

출처: 영국의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 번역: 이종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