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급진 사상가 시리즈 두 번째 칼럼에서 영국의 사회주의자 조너선 몬더가 알랭 바디우(사진)의 철학을 살펴본다.


지난 호에서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사상을 살펴봤다. 네그리는 ‘다중’이 자본의 권력을 끊임없이 압박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급진적 변화를 예외적인 것으로 본다. 즉, 기존의 지배적인 질서를 교란하는 “사건”을 통해 급진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알랭 바디우

△알랭 바디우

바디우는 마르크스주의에서 멀어졌지만, 그의 사상은 여전히 혁명적 변화의 문제에 주목한다.

그는 또한 프랑스에서 무슬림의 학내 스카프 착용 금지에 반대하는 등 인종 차별주의를 일관되게 반대하는 몇 안 되는 지식인 중 하나였다.

바디우 저작들의 핵심 주제는 지배적인 사상·가치·해석 등의 요소들이 각각의 상황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이다.

여기에는 어떤 것은 부각하고 다른 것은 숨기거나 모호하게 만드는 서열화가 포함된다. 그래서 미국 자본주의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서 사유재산, 소비자의 선택, 행복한 핵가족 같은 것은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지만, 노동자 착취, 국가 탄압, 제도화한 인종 차별과 여성 차별은 그렇지 않다.

바디우는 특정 상황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에서 기존 서열과 모순되는 요소들이 어떻게 지배적인 질서를 전복하는 새로운 “진리”를 만들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상황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모순이 매우 분명하게 드러날 때 “사건”이 발생한다. 바디우에게 이런 “사건”은 단지 정치 혁명과 격변에 국한되지 않고 예술 작품의 창조나 과학적 발견과도 관계있다.

이른바 ‘주체’로 불리는 사람이나 집단은 “모순적 진리”가 유지되도록 지속적 탐구와 헌신으로 그 진리에 신뢰를 보내야 한다.

이러한 사상은 바디우가 1970년대에 몰두했던 마오주의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당시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적 요소, 즉 노동계급을 대리해서 행동하는 혁명적 전위의 헌신을 통해 혁명적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80년대 노동계급과 좌파가 패배를 겪으면서 바디우의 혁명적 신념은 점차 희미해졌다. 그는 그다지 마오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의 이론을 표명했는데, 특히 《존재와 사건》이라는 책에서 가장 분명히 드러난다.

이 책에서 바디우는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를 갖고 존재의 본질을 사유하려 했다. 그는 존재의 본질이 복수적일지라도 존재는 통일되고 응축된 “하나”로 표현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로] 표현되는 경향은 존재의 다중적 성격을 구현하는 요소들에 의해 약화할 수 있다.

매우 추상적인 이 이론의 주된 문제는 혁명적 주체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 주는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바디우는 주체가 사건에 헌신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실제 내용은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주체를 지속적 탐구, 헌신, “내재적 힘”이라는 개념들로 간단히 정리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양한 주체가 가진 객관적 힘과 능력을 비교 평가할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종 차별주의와 실업에 분노한 프랑스 청년들의 소요를 살펴보자.

거리에서 엄청난 분노가 폭발했다. 그러나 투쟁을 어떻게 전진시킬 것인가, 국가 폭력에 직면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급진좌파 정당들과 노동조합·청년 들은 어떤 동맹을 형성할 수 있는가 등등 중요한 문제들은 자동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바디우의 이론은 우리가 이런 물음에 답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그는 때때로 초좌파 사상으로 후퇴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태생적으로 보수적이라고 봤고, 좌파 정당들이 선거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비난했다.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국가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불가피하다고 보는 견해가 깔려 있다. 지금 바디우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추상적 사상 자체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바디우의 접근법은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보여 준 접근법과 대조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의 “운동 법칙”에 대한 추상적 이해에서 단계적으로 좀더 구체적인 이해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타도를 좀더 용이하게 할 이해를 제공할 것이다.

그가 화폐 같은 대상을 연구할 때 보여 주었듯이, 추상은 모든 과학적 탐구의 본질적 일부다.

마르크스는 화폐를 먼저 추상적 형태로 분석해서 화폐 뒤에 감춰진 착취적 사회 관계를 드러냈다.

반대로 바디우는 특별한 통찰을 많이 보여 주지만 순전히 추상적인 사고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급진적 변화에 대한 바디우의 설명은 불충분하다.

번역 김세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