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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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초에 볼 만한 DVD

〈랑주 씨의 범죄〉 (1936), 감독: 장 르누아르, 출시: 피디엔터테인먼트

193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악덕 사장이 도망간 후 노동자들이 작업장을 접수하고 직접 운영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린 희극 영화. 올해 국내에서 회고전이 열린 프랑스의 대표적 인상파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아들인 좌파 감독 장 르누아르는 인민전선이 어떻게, 왜 붕괴할지[사유재산에 대한 부르주아의 탐욕]를 미리 예견하고 있다. 한글 자막의 엄청난 오타가 신경에 거슬리겠지만 충분히 참고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쥐잡이꾼〉 (1999), 감독: 린 램지, 출시: 키노필름

1973년 스코틀랜드 쓰레기 수거 노동자 파업을 배경으로, 10대 소년의 눈으로 본 당시 사회의 소외, 빈곤, 그리고 성장통을 묘사한 영화. ‘끔찍한 아름다움’이란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켄 로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강추.

〈레볼루셔너리 로드〉 (2008), 감독: 샘 멘데스, 출시: 파라마운트

리차드 예이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1950년대 미국의 한 젊은 부부를 주인공으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연인이 자본주의의 압력 아래 어떻게 파괴되는지 냉혹하게 묘사하고 있다. 연말 외롭고 위안을 얻고 싶은 솔로들에게 강추.

프랑스 혁명을 다룬 두 편의 고전 영화

〈당통〉 (1983), 감독: 안제이 바이다, 출시: 키노필름

〈라 마르세예즈〉 (1938), 감독: 장 르누아르, 출시: 피터팬픽쳐스

프랑스 혁명이라는 위대한 혁명을 제대로 묘사한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는 극히 드물다. 보통 단두대 처형을 내세워 ‘무의미한 폭력극’에 불과했다고 폄하하기 일쑤다. 〈당통〉은 혁명 당시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논쟁을 중심으로 프랑스 혁명을 진지하게 다룬, 극히 드문 예외 중 하나다(로베스피에르를 다소 폄하했다는 느낌은 들지만). 1789년 혁명에서 1792년 혁명의 절정기까지를 다룬 〈라 마르세예즈〉는 어떤 면에서는 〈당통〉보다 나은 영화이지만 다소 열악한 DVD 화질과 특히 자막 때문에 아쉽게도 적극 추천하기는 힘들다.

당대 사회 현실에서 영감을 받은 화끈한 공포 영화들

〈28주 후〉 (2007), 감독: 후안 카를로스, 프레스나딜로, 출시: 20세기 폭스

〈미스트〉 (2007),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 출시: 플래니스

〈드레그 미 투 헬〉 (2009), 감독: 샘 레이미, 출시: 소니

나는 훌륭한 정치 영화를 원하면 공포 영화 섹션을 뒤적여야 한다는 ‘비뚤어진’ 소신을 갖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28주 후〉〈미스트〉는 21세기 국제 정치의 핵심적 사건인 ‘테러와의 전쟁’을 가장 잘 비꼰 영화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28주 후〉의 기본 아이디어는 H. G. 웰즈의 고전 SF 소설 《우주 전쟁》과 동일하다. 즉,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이 경우에는 이라크)에서 저지르는 일을 제국주의 본국에서 반복한다면? 〈미스트〉는 군산복합체의 과학 실험이 실패하면서 쏟아져 나온 사악한 생명체들이 인간들을 공격하면서 발생하는 일을 다룬 (다분히 1950년대 공포 영화에서 착안한) 영화인데, 네오콘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분명한 데마고그들이 사람들을 현혹한다. 마지막으로, 〈드레그 미 투 헬〉은 아마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소재로 다룬 최초의 할리우드 영화일 것이다. 선량한 은행원이 자본가인 은행장의 압력으로 모기지를 체납한 가난한 서민의 주택을 강제 압류하는 결정을 내린 후 (주먹만한 구더기가 입안으로 침입하는 것을 포함해) 온갖 끔찍한 일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알제리 민족해방 투쟁을 다룬 영화

〈영광의 날들〉 (2006), 감독: 라시드 부샤렙, 출시: 와이드미디어

〈친밀한 적〉 (2007), 감독: 플로렌트 에밀리오 시리, 출시: 엔터미디어(KBS 프리미어 영화 시리즈)

제2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정부는 알제리인들에게 프랑스를 위해 싸우면 독립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영광의 날들〉은 그 약속을 믿고 참전한 알제리인들이 환멸에 빠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친밀한 적〉은 이상주의적인 프랑스 청년 장교가 알제리 전쟁에 참가하면서 잔인한 살인 괴물로 변해 가는 과정을 추적한, 다소 상투적이지만 볼 만한 영화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룬 영화

〈로나의 침묵〉 (2008),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뤼크 다르덴, 출시: UEK

〈대지의 소금〉 (1954), 감독: 허버트 바이버만, 출시: 인권영화제 영상네트워크

〈로나의 침묵〉은 체제의 압력이 어떻게 평범한 이주노동자로 하여금 끔찍한 짓을 저지르게 만드는지 보여 주는 우울한 영화라면, 〈대지의 소금〉은 1950년대 미국 광산 파업을 소재로 현지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들이 어떻게 서로 단결해 싸울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영화다. 〈대지의 소금〉의 제작진은 1950년대 미국의 반공주의적 매카시 선풍 당시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오른 희생자들이기도 하다.

〈와이어〉 시즌1(2002), 감독: 데이비드 사이먼 외, 출시: 워너브라더스

가난한 마약 중독자, 마약상, 마약상의 돈을 받는 정치인, 마약상을 뒤쫓지만 부패한 정치인에게는 꼼짝 못하는 무능한 경찰 들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엮이면서, ‘결국 정의는 승리한다’라는 형사물의 상투적 틀을 산산이 부술 뿐 아니라 문제가 자본주의 체제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 주는 진정한 ‘대하’ 드라마. 일부 평론가들이 “21세기 미국판 디킨스 소설”로 (정당하게) 찬양하는 이 역사상 가장 훌륭한 드라마는 아쉽게도 국내에는 시즌1(시즌5로 완결)만 출시돼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시즌1과 시즌5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거라도 꼭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