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스라엘이 전 세계의 ‘공공의 적’이 되다

12월 17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시작된 침략 전쟁은 1월 3일 이스라엘 육군이 가자 지구로 진입하면서 대학살극이 됐고 1천3백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죽었다. 아무리 미국 정부가 나서서 이스라엘의 행동을 두둔해도 더는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학살극은 전 세계 반전 운동 세력을 결집시키면서 1980년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 이래 최대 규모의 국제 평화 캠페인을 탄생시켰다.

2. “믿습니까? 오바마가 변화를 가져 올 거라고?”

1월 20일 오바마 정부가 출범했을 때 사람들의 기대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라크에서는 철군하는 듯 싶었고, 테러와의 전쟁을 중단하고 이란을 포함해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평화의 손을 내미는 듯 싶었고, 국민의료보험을 도입해 미국을 더 정의로운 사회로 만드는 듯 싶었다. 그러나 이 ‘싶었던’ 것들은 말 그대로 제스처에서 멈췄다. 국민의료보험은 원래의 부실한 안이 우파의 공격으로 완전히 누더기가 됐고, 이란에는 회담을 제의해 놓고 뒤로는 경제 제재를 더 강화했다. 그리고 이라크 철군을 차일피일 미루었을 뿐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확대했다.

3. ‘오바마의 무덤’이 될 ‘아프팍’ 전쟁

오바마는 당선하자마자 아프가니스탄에 학살군을 증파했고, 파키스탄 정부에 압력을 넣어 파키스탄 정부가 국경 지역에서 군사 작전을 벌이면서 2백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됐다. 나아가 오마바는 역겹게도, 노벨 평화상을 받는 시점에서 추가 증파를 단행했다. 오바마가 추가 증파를 발표한 12월 3일 〈워싱턴포스트〉는 “이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명실공히 ‘부시의 전쟁’에서 ‘오바마의 전쟁’이 됐다” 하고 평했다. 그리고 ‘오바마의 전쟁’은 제2의 베트남 전쟁이 되고 있다는 전망이 주류 언론에서도 나오고 있다. 나토 회원국과 다른 파병국들은 수렁에 빠져든 전쟁 앞에서 우왕좌왕하지만 쉽게 학살 전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처럼 새롭게 전장에 뛰어드는 철부지 ‘불나방’들도 있다.

4. 유럽 급진좌파의 약진

2월 4일 프랑스에서 반자본주의신당(NPA)이 창당 대회를 열었을 때 〈파이낸셜타임스〉는 NPA 지도자 올리비에 브장스노를 ‘자본주의의 미래를 좌우할 1백 인’ 중 한 명으로 꼽았다. 바로 그 전 주인 1월 29일 프랑스에서 제2차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모든 대형 노총들이 연합해 하루 총파업을 벌인 상황에서 주류 언론들이 벌벌 떠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6월 유럽연합 선거에서 NPA의 득표율(4.8퍼센트)은 기대에 다소 못 미쳤다. 그러나 8월과 9월 독일 지방 선거와 총선에서 디링케가 다시 한 번 약진하면서 급진좌파의 탄생을 낳은 조건 - 자본가들의 공격이 낳은 분노와 중도좌파의 우경화가 낳은 정치적 공백 - 이 여전히 존재함을 증명했다. 변수는 유럽 급진좌파 조직들이 그 조건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다.

5. ‘저들만의 잔치’가 된 G20 정상회담

2008년 11월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가 터지면서 세계대공황 발생의 공포가 엄습할 때 G20 정상회담이 개최되자 사람들은 이것이 G8과 달리 세계의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조처를 취하지 않을까 잠시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11월 제1차 회담도, 더 기대가 컸던 2009년 4월 런던의 제2차 회담도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물론,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G20은 전 세계 빈민들의 공분을 사는 신자유주의 악당 IMF를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G20 국가 정상들이 서로 목소리를 높인 것은 전 세계 보통 사람들의 일자리나 생활수준 문제가 아니라 이 악당 기구에서 누가 더 발언권을 높이느냐를 둘러싼 것이었다.

6. ‘돼지 독감’이 ‘신종플루’가 되기까지

올해 초 돼지 독감이 발생했을 때 모두의 머리에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돼지가 독감 걸린 거랑 우리랑 무슨 관계지?’ ‘돼지 독감’이란 이름은 의도치 않게 이 병의 기원에 대한 대중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전 세계의 산업화된 목축업의 정당성과 그것을 지탱하는 자본주의 이윤 논리에 대한 의문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마이크 데이비스의 말처럼 “돼지 독감 같은 전염병의 확산은 우리 체제가 어느 정도까지 썩어 문들어져 있는가를 잘 보여 주는 사례”였다. 그래서일까? 돼지 독감은 곧 신종플루로 이름이 바뀌었다. 각국 정부들은 이 질병의 확산에 철저하게 무능하게 대처하면서도 이 질병의 발생 원인에 대한 질문을 틀어막는 데는 상당히 유능했다.

7. ‘누구 편에 설 것인가?’ 논란을 불러온 이란 민중 항쟁

6월 12일 이란 대선 투표가 끝나고 불과 한 시간 만에 아흐마디네자드의 압승을 알리는 선거 결과가 발표됐을 때, 이란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수많은 이란인들이 선거 결과를 의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아흐마디네자드 정부가 이란 노동자 운동과 민주화 활동가들을 탄압해 온 것을 감안하면 우파 정부의 선거 부정 의혹에 대한 반발은 당연했다. 권위주의적인 아흐마디네자드 정부가 친정부 민병대인 바시지에게 몽둥이와 기관총을 지급해서 시위대를 진압케 한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소간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은 일부 국제 좌파 인사들이 아흐마디자네드를 두둔하고 나선 것이었다. 반대편의 사람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며 거리에 나선 이란인들의 열망을 지지해야 한다고 옳게 주장했다. 이런 논란은 ‘적(미국 제국주의)의 적(아흐마디네자드)은 내 친구’라는 공식이 얼마나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 내는지 보여 주는 계기가 됐다.

8. 라틴아메리카 급진화의 미래와 온두라스 쿠데타 반대 투쟁

6월 말 들려온 인구 70만 명의 이 작은 라틴아메리카 나라의 쿠데타 소식이 그토록 큰 국제적 파장을 낳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르헨티나의 유력 일간지 〈라 파히나〉는 이렇게 말했다. “온두라스의 군인들은 파자마 차림의 대통령을 내쫓았다 … 불과 2년 전만 해도 라틴아메리카에서 쿠데타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 쿠데타가 다시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등장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볼리비아의 분리주의자, 베네수엘라의 기업인 연합, 아르헨티나의 대지주 연합 등이 온두라스의 사태 전개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우익들에게는 실망스럽게도 온두라스 민중은 쿠데타 당일부터 지금까지 반쿠데타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9. 중국 국가의 본질을 보여 준 신장자치구 사태

중국 정부의 보도 통제 때문에 7월 13일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2008년 3월 티베트 민중 항쟁에 이어 중국 국가가 말로만 사회주의를 내세울 뿐 실제로는 소수민족들을 점령하고 탄압하는 잔인한 국가임을 여지없이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지금 중국 정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위구르족 ‘반란자’들을 처형하고 있고, 중국 군인들은 위구르족 거주지를 순시하면서 불심검문하고 겁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끝없는 수모는 더 큰 저항으로 폭발할 것이다.

10. 아이슬란드와 두바이의 국가 부도 사태

아이슬란드와 두바이는 2000년대 중반만 해도 부자 감세, 금융 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모범생이자, 부동산 거품으로 부자들의 놀이터를 잔뜩 건설한 관광잡지의 명소였다. 특히, 두바이는 이명박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그러나 결국 사상누각으로 드러났다.

아이슬란드 총리는 국가부도 사태 후 전 국민의 10분의 1이 동시에 거리에 나선 항쟁에 직면해 사임했다. 이명박의 어두운 앞날을 예고하는 사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