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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대통합 논의:
분열해서는 대중의 정치 대안 부재감을 해소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그리고 민주노총 사이에 통합 의제가 ‘돌출적’으로 부상하면서 국민적 관심사로까지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레디앙〉 2009년 12월 21일치)

확실히 진보정치대통합이 현실적 의제로 떠올랐다. 10월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민주노동당의 반MB연대연합 제안이 ‘민주당 좋은 일 시키기’로 끝난 것이 한 계기가 됐다.

2009년 12월 19일 이명박 2년 규탄 민중대회 이명박 2년, 진보정치의 대통합은 “민중의 염원”이다.

그러나 진보정치대통합이 “돌출적” 의제는 아니다. 지금 노동자들은 단결을 절실히 원한다. 정부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공무원 노동자들이 통합노조를 건설해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서울메트로 노동자들이 지도부의 민주노총 탈퇴 시도를 좌절시켰다. 분열해서는 격해지는 지배계급의 공세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이런 단결 염원 때문에 진보정치대통합이 현실 의제가 됐던 것이다. 민주노총이 9월에 실시한 ‘진보정당 세력의 단결과 통합에 대한 민주노총 단위노조 간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89.1퍼센트가 진보정당세력이 통합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진보정당의 분열”이 “조직력 약화 등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2008년 초 민주노동당의 분열은 당 지도자들에 의해 위로부터 추동됐다. 그러나 최근 진보정치대통합 논의는 민주노총 노동자들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 〈레프트21〉은 노동자들의 진보정치대통합 염원을 무조건, 전적으로 지지한다. 또, 그런 염원에 부응하려는 세력과 개인 들과 함께할 것이다.

물론 진보정치대통합에 부정적인 기류도 만만치 않다. 부분적으로는 분열 경험에서 비롯한 구원(仇怨) 탓이다.

“당을 모욕하고 파괴한 분열주의자들에게 아무런 절차과정의 매개 없이 당선 가능성과도 무관한 ‘진보대연합’ 명분 때문에 면죄부를 주고 심지어 지지까지 해야 하는가?”(이용대 민주노동당 전 정책위의장)

“분당의 원인이 해소되지 않은 조건에서 덮어놓고 통합하자는 것은 분당을 명분 없는 분열로 치부하는 것에 다름아니다.”(진보신당 울산시당)

분열의 책임을 어느 한쪽에만 지우는 것은 불공정할 것이다. 과거 민주노동당을 이끌었던 양대 분파(자주파와 평등파) 모두 분열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분열의 책임 소재 파악이 먼저일 수는 없다. 그것은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지지자들의 통합 열망을 거부하려는 알리바이일 뿐이다. 이정희 의원이 잘 지적했듯이, 진보정치통합을 위해 “상대방에게 고해성사와 탈바꿈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정희 의원은 너무 나아갔다. “민주당과 선거연합까지도 폭넓게 다 열어 놓”아야 한다.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도 민주대연합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오늘 스스로 민주를 표방하는 세력이라면 적어도 ‘연합’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

요컨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내부에는 “독자성”(또는 “진보의 재구성”)을 앞세워 고립을 자초하는 경향과 무원칙한 단결을 추구하는 경향이 동시에 존재한다.

물론 전자와 후자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만리장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이용대 전 의장은 진보정치대통합이 “반이명박·반한나라당 연합”의 장애물이라고 보고 반대한다. 사실, 민주대연합은 민주노동당 내에서 하나의 공리(公理)처럼 돼 있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민주당의 집권 10년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민주대연합을 주장하는 진보 인사들은 진보진영(특히, 민주노동당)이 왜 노무현 정부의 몰락을 진보적 대안을 발전시킬 기회로 삼지 못하고 쇠퇴와 분열을 하게 됐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역사는 배우려 하지 않는 자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법이다.

따라서 민주당의 과거를 ‘묻지 말라’는 사람들은 스스로 기억상실증에 걸리겠다는 것이다. 대중에게 민주당에 대한 기억을 지우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의 배신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국회에서 민주당의 추미애는 한나라당과 손잡고 노동법을 날치기 처리했고,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사이좋게 유엔 평화유지군 신속파병법을 통과시켰다 등등. 그래서 대중은 민주당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는 것이다.

한편, 진보정치대통합에 진지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민주대연합을 위한 구름판으로 삼겠다는 발상도 위험하다. 진보정치대통합의 정치적 목적 ─ 민주당 왼쪽에서 진보진영이 단결해 노동계급의 정치적 전진에 이바지하기 ─ 을 망각하는 것이고, 진보적 대중을 기만하는 얄팍한 책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극적

한편,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선거연합 전 통합 가시화’에 대해 “의미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노 대표는 애초 부분적 선거연합의 필요성을 주장하다 최근에는 “서울을 포함해 전면적으로 진보의 선거연합”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것은 ‘독자후보 출마를 원칙으로 선거연합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는 지난 10월 진보신당 전국위원회의 결정보다는 반걸음 나아간 것이지만, 선거연합만으로는 부족하다(“독자성”을 이유로, 또는 “통합을 전제로 한 선거연합”을 내세워 이마저도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말이다).

민주노총이 12월 18일에 발표한 성명서에서 밝혔듯이, “이미 울산지역 보궐선거를 통해 선거연합(후보 단일화) 방식으로는 노동자 민중을 단결시킬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진보신당 지도부의 (통합이 아닌) 선거연합 제안은 곶감만 빼 먹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다.

실로 지금 필요한 것은 선거연합(선거구 조정을 통한 후보 단일화) 정도가 아니다. 대중은 통합을 요구한다. 통합은 어찌 됐든 간에 조직을 합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의 “연합전선” 제안은 흥미를 끈다. “지금 진보진영에게 필요한 것은 진보정당 무조건 통합론이 아니라 바로 이 연합전선 논의를 활성화하고 이것을 실현시키는 일이다.”

장 실장은 1930년대 프랑스에서 사회당과 공산당의 연합전선, 1990년대 이탈리아의 ‘올리브 동맹’, 우루과이의 확대전선 등을 연합전선의 사례로 든다. 그는 민주대연합을 강력하게 반대한다지만, 1930년대 프랑스의 경우는 급진당(전혀 급진적이지 않은 자본가 정당)이 포함된 민주대연합(역사적 용어로 ‘인민전선’)이었고, 집권한 ‘올리브 동맹’은 사회적 자유주의를 추진하다 베를루니코스에게 권좌를 내 줬다.

그럼에도 (진보신당의 존재 이유를 확립하기 위한) “진보의 재구성” 주창자였던 장 실장이 “연합전선”을 제안한 것은 다소 긍정적 변화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통합을 적극 지지하면서, 그 방식은 당 모델(정당법상 “신설 합당”)보다는 (진보정치대통합 구성 부문의 정치적·조직적 독자성을 보장하는) 공동전선적 모델이 통합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다만, 이중 당적을 금지하는 정당법(“누구든지 2이상의 정당의 당원이 되지 못한다”)의 제약 문제를 해결할 묘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진보정치대통합 성사 여부의 키를 쥐고 있는 주요 행위 주체들의 현명한 정치적 선택이다. 두 진보정당의 지도자들은 대중의 강한 통합 압력 때문에 등 떠밀리듯이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능동적이거나 진취적이지 못하다. 통합이 진보진영의 최대 화두로 급부상했지만, 정작 속도가 붙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진보정당의 분열 상황이 지속되는 한 대중의 정치 대안 부재감은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선거적 주판알 튀기기만 하는 것은 중대한 정치적 과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