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서평 -《진보의 미래》:
시장과 제국주의에 투항하는 것은 진보가 아니다

《진보의 미래》(노무현, 동녘출판사)

노무현의 메모와 녹음 파일을 풀어 만든 이 부실한 책은 유럽과 미국을 각각 진보의 나라, 보수의 나라로 이름 붙여 중학생 정도면 누구나 한 눈에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애초에 이런 의도를 만족시킬 수 없다.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제3의 길을 ‘진보주의’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자신과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신자유주의가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으로 적합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데 책의 절반가량을 할애한다. 시장과 경쟁을 완전히 거부할 수 없다면 분배·복지를 추구하면서도 규제 완화, 개방, 민영화 등은 그때그때 실용적으로 판단하면 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규제 완화 등이 일자리나 분배, 복지 문제와 분리돼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난센스다. 한국통신 민영화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민영화는 기업주와 부자 들의 배를 불리면서도 일자리 파괴와 공공요금 인상과 서비스 악화로 분배와 복지에 악영향을 끼친다.

노무현은 신자유주의를 잣대로 진보와 보수를 나누면 복지와 분배가 잘 발달돼 있는 유럽의 제3의 길 정부들도 “신자유주의 보수 정권”이라고 불러야 하냐며 항변한다. 그러나 이런 항변은 부질없다.

유럽 몇몇 나라들의 복지와 분배 정책은 ‘제3의 길’ 정부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3의 길’을 내세운 유럽 정부들은 말로는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찾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여 복지와 분배 정책을 공격하고 후퇴시켜 왔다.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이야말로 복지국가가 만들어진 원동력이자 신자유주의 정부의 공격을 막아낸 방패였다.

노무현은 개혁주의의 약점을 파고들며 자신의 논리를 합리화한다.

“진보주의에 어디 시장과 경쟁을 딱 반대하는 사람이, 딱 반대하는 논리가 있습니까? 특히 동유럽의 몰락 이후에 말이죠. 이건 정리된 거거든요. 시장을 반대하는 진보주의가 어디 있습디까?”

그러나 여전히 시장과 경쟁의 논리를 거부하는 급진좌파들이 존재하며, 진보진영은 대체로 시장에 대한 규제·통제를 주장하고 경쟁의 폐해를 비판한다. 시장과 경쟁 논리에 단순히 굴복하는 것은 결코 ‘진보주의’일 수 없다.

진보의 나라, 보수의 나라

노무현은 자신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일부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끝내 그 책임은 다른 사람들에게만 떠넘긴다. ‘보수의 시대’에 태어난 진보주의자로서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관료들이 감세안을 가지고 와서 밀어붙였는데 청와대에서도 국회에서도 아무도 방어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마음은 어쨌는지 모르지만 나한테 와서 강력하게 브레이크 걸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나 이헌재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을 장관에 기용해 그런 관료들에게 힘을 실어 준 것이 자신이라는 점은 말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권한보다 ‘국회와 정당이 중요’하다지만 자신이 주도해 만든 열우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했을 때도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심지어 자신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사람들과 무엇보다 탄핵에서 자신을 구출해 준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경제에만 관심을 보였다. 내가 대통령이 되고 나자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자신을 비판하던 진보진영에 대한 비난도 잊지 않았다. “진보 정치 세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노무현 너 잘못했다’고 하는데 ‘당신들은 뭐 했노?’ 그걸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에요.”

마지막으로 그는 노동자들의 처지가 악화한 것도 노동자들 탓이라고 비난한다.

“대책 없는 요구를 하고 대책 없이 싸우니까 결국은 아무것도 들어줄 수 없고 안 들어주니까 이제 적대화되고, 결국은 김대중·노무현마저 노동조합하고는 적이 되고 말았으니 노조를 밀어주겠다는 사람들이 무슨 힘을 쓸 수가 있겠어요?”

자본가에 굴복해 개혁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친제국주의 정책으로 진보진영과 노동자·민중을 실망시킨 장본인이 그 책임을 진보적 반대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

결국 친노신당인 국민참여당이 들고 나온 노무현 식 ‘진보주의’는 시장과 제국주의(와 전쟁)에 굴복하는, 진보와 하등 관계없는 ‘사이비 개혁’일 뿐이다. 여기에는 “진보의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