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은 1947년 영국 제국이 인도 대륙에서 철수하면서 대륙을 분할해 세워졌다. 이 신생 국가는 단일한 “무슬림 국가”라고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각기 다른 전통을 가진 6개 언어 사용 집단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래서 이 집단들은 저마다 독립 국가를 간절히 원했다. 서파키스탄에서 1천 마일 떨어진 동파키스탄의 벵골인들은 1971년 분리해 방글라데시를 세웠다.

파키스탄은 처음부터 군부─지주─산업자본가 들이 지배했다. 파키스탄 역사의 대부분 동안 군부가 통치했다.

줄피카르 알리 부토가 사회주의와 국유화를 주장하며 대통령에 당선된 1970년대에 잠시 부자들의 지배에 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났다.

그러나 부토는 자신을 지지했던 노동계급과 농민을 배신했다. 부토의 인기가 떨어지자 우익 장군 무함마드 지아 울 하크는 부토를 타도했고, 나중에 그를 처형했다.

각기 다른 전통

1980년대에 군부와 문민 지배자들은,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소련을 몰아내려는 미국의 노력을 지원했다. 파키스탄 지배자들은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 전사들을 후원했고, 미국에 기지를 제공했다.

그리고 소련이 패배하자 1990년대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친파키스탄 정부가 들어서길 바라며 탈레반을 후원했다.

1999년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은 나와즈 샤리프 총리,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 같은 정치인들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이용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을 소탕하려고 전쟁을 벌이자 무샤라프는 자신의 동맹 세력인 파슈툰족을 등질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그가 정성들여 건설한 정치 동맹이 불안정해졌다.

무샤라프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원하고 정치─사회 개혁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커지면서 그의 지배에 도전하는 운동이 성장했다.

나와즈 샤리프의 정당과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고(故) 베나지르 부토의 남편)가 이끄는 정당이 연합해 총선에서 승리하자 2008년 8월 무샤라프는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총선에서 승리한 두 정당은 무샤라프와 마찬가지로 전쟁을 지지하고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지속하면서 파키스탄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번역 이승민

📱 스마트폰 앱으로 〈노동자 연대〉를 만나 보세요!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아이폰 앱 다운로드

📮 매일 아침 이메일로 〈노동자 연대〉를 구독하세요! 아이폰 앱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