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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 ─ 전 세계적 기후정의 운동의 탄생

조너선 닐 ‘기후변화반대운동’ 활동가, 한글로 번역된 저서로는 《미국의 베트남 전쟁》(책갈피), 《두 개의 미국》(책갈피), 《오바마의 아프팍 전쟁》(공저, 책갈피) 등이 있다.

누구도 이렇게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지 상상하지 못했다.

코펜하겐에서 새로운 지구적 운동이 탄생했다. 첫째 증거는 토요일[2009년 12월 12일] 시위 참가자의 규모다. 경찰 추산으로도 10만 명이 토요일 시위에 참가했다.

엄청나게 추웠지만 시위 행렬은 엄청나게 길고 시끄럽고 활력이 넘쳤다. 덴마크인이 절반, 외국인이 절반이었다. 나는 대열 앞뒤를 이동하며 관찰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기후 변화 관련 구호를 열심히 외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아무도 10만 명이나 모일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온 활동가들은 지금껏 가장 큰 기후 변화 시위를 보았다. 우리는 새로운 전 세계적 운동이 탄생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기후정의네트워크’와 ‘기후정의행동’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많은 이가 NGO 기금의 지원을 받거나 NGO 캠페인의 일부로서 코펜하겐에 왔다. 그중에 2만 5천 명이 정상들이 회담하는 벨라 센터 통행증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정부의 NGO 길들이기 정책의 일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구의벗, 비아캄파시나, 주빌리사우스(제3세계 부채 탕감을 요구하는 기독교 네트워크), 남반구초점, 아딱 프랑스 등 급진 NGO들이 기후정의네트워크라는 느슨한 연합체로 결집했다.

회담 둘째 날부터 이들의 급진주의는 다른 NGO 집단에까지 확산됐다. 예컨대, 아프리카 NGO 참가단은 회담장 홀에서 ‘우리는 가만히 죽지 않을 것이다’ 하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그 외에도 작은 행동들이 곳곳에서 벌어지자 경비들은 방문자들을 검문하고 일부 사람들의 회담장 입장을 불허했다.

회담장 밖의 기후정의행동은 [회담장 안의] 기후정의네트워크와 보조를 맞춰 움직였다. 기후정의행동은 영국의 기후캠프가 참가하는 직접 행동 조직 연합이다.

그들은 지난주 수요일[2009년 12월 16일] 집중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했다. 기후정의행동은 벨라 센터의 경찰 저지선까지 행진해 돌파를 시도할 것이고, 기후정의네트워크는 벨라 센터에서 집단 퇴장을 시도할 것이었다.

아마도 미국 정부가 통제하는 것이 틀림없는 회담장 운영 당국은 저항에 점점 화가 났고 그것의 파장을 우려했다. 토요일 시위는 매우 컸고 회담장 내부 시위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미국 정부는 오바마 도착에 맞춰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탄압의 끈을 옥죄기 시작했다.

덴마크 경찰은 토요일부터 2천 명가량을 체포했고, 그들을 기소사유도 없이 12시간 동안 구금했다. 경찰은 또한 기후정의행동의 주요 지도자들을 체포, 기소하고 보석신청을 금지했다.

연합 시위 날이 다가오자, 유엔은 회담의 마지막 4일 동안 NGO들에게 통행증의 80퍼센트를 반납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거의 모든 미국 노조 대표단이 회담장에 입장할 수 없었다.

연합 시위 전날 기후정의네트워크는 회담장 안에서 기후정의행동은 회담장 밖에서 행동을 벌였다. 지구의벗 인터내셔널은 모임에서 시위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아침 지구의벗 인터내셔널 대표단은 그들의 입장이 전면 금지됐다는 결정을 통보받았다. Tkk, Tkk, Tkk(그린피스, 옥스팜,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이 포함된 연합)도 동일한 통보를 받았다.

수요일에 2백 명이 회담장 안에서 시위를 벌였다. 유엔이 NGO 대표단의 입장을 제한하지 않았더라면 2천 명이 시위를 벌였을 것이다.

회담장 밖에서는 2천 명이 경찰 저지선을 향해 행진했다. 대열 수가 적었던 것은 평일 아침 아홉 시였고 많은 이가 경찰 폭력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시위대가 회담장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으려고 열 겹으로 방어진을 형성했고 사람들의 얼굴을 향해 최루가스를 뿌리고 마구 두들겨 팼다.

‘우리는 가만히 죽지 않을 것이다!’

시위는 잘 조직되지 못했고 혼란스러웠고 고통스런 경험이었다. 그러나 대단한 성공이기도 했다. 전 세계가 경찰 폭력을 보았고 다른 NGO 대표단 참가자들도 분노했다. 이날 시위는 진지하고 용감한 항의 행동이었다.

이날 시위 뒤에 기후정의네트워크와 기후정의행동의 대다수 활동가들이 각자 자기 나라에서 통일된 지구적 운동을 건설하자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토요일[2009년 12월 19일]이 돼 정상들의 배신이 명백해지자, 우리는 만나서 앞으로 무엇을 할지 논의했다.

두 세력 사이의 단결은 더 많은 사람을 운동에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됐다. 이 점에 대해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 토요일 시위의 규모는 직접 행동보다 50배나 컸다. 사람들은 정상들을 움직이도록 강제하려면 거대하고 진지하고 전투적인 운동이 필요함을 잘 알고 있다.

코펜하겐 정상회담의 실패로 일부 사람은 더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일부 NGO 지도자들은 정부에 굴복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는 분노할 것이고 행동에 나설 것이다.

최초로 단일한 지구적 운동을 건설하고 그것을 당신이 사는 곳에서 건설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생태계의 파괴자 자본주의》 서평, 《자본주의와 기후 변화》 책소개

그 운동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지난한 투쟁이 기다리고 있다. 전 세계 지배자들은 기후 변화 문제가 더는 북극곰 생존에 관한 문제가 아님을 안다. 그러나 그들은 기후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문제제기에 더 이상 ‘좋게 좋게’ 답하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 보여 줬다. 모든 활동가는 자신의 고정되고 아늑한 활동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기후 변화 투쟁은 이제 활동가와 세계 지배자들 사이의 투쟁이 됐다. 우리는 그것을 대중 대 지배자들의 투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이 투쟁은 빈민과 남반구를 위한 투쟁이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자. 이 투쟁은 또한 그리스, 오스트레일리아, 뉴올리언스, 미시시피, 런던, 리버풀, 암스테르담, 코펜하겐과 다른 곳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우리는 북반구와 남반구 모두에서 지배자들이 코펜하겐 거리의 함성을 듣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가만히 죽지 않을 것이다!’

번역 김용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