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장관 이귀남이 직접 나서 이건희 특별사면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TV 생중계로 보면서 나는 리모컨을 집어던질 뻔 했다. 

그때 머리속에서 이제 1년 반이 됐고 며칠 지나면 2년차로 접어드는 내 수배생활과, 영화 스타워즈의 요다를 닮은(그것보다는 훨씬 더 음흉한) 두꺼비 얼굴 이건희가 배시시 웃는 모습이 교차했다.  

2008년 조계사에서 농성중이던 김광일 씨

배임과 조세 포탈 때문에 유죄 선고를 받고도, 감옥은커녕 귀족 생활을 그대로 유지했던 삼성 왕국 황제 이건희가 이제 그 알량한 족쇄에서도 자유롭게 됐다는 것을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퍼뜩 부모님이 떠올랐다. 아직도 자식 걱정에 잠 못 이루실 부모님들은 이건희 특별사면 소식을 보면서 얼마나 큰 박탈감을 느끼셨을까. 천하의 범죄자는 사면하고, 정당한 운동의 조직자로 활동했던 당신의 아들은 여전히 수배 상태인 이 상황을 말이다. 

그리고 곳곳에서 수도와 보일러가 얼어 터지는 이 한파에 감옥에서 추위와 억압에 맞서 싸우고 있을 양심수 동지들도 떠올랐다. 쌍용차 점거파업 영웅들, 그리고 용산 구속자들, 적군(敵軍)처럼 끌려가 지금은 계급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는 그들이. 

이건희 황제의 삼성 왕국에서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받았는가.  

삼성 왕국은 “무노조 경영”의 신화를 만들려고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노동자들을 감금·협박·추적하고 감옥에 보냈다. 그리고 삼성 반도체에서 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죽어가도 제 책임이 아니라며 발뺌하고 있다. 삼성 왕국에서 고통 받고 죽어간 그들에게 이건희 특별 사면은 모욕 중에 모욕일 것이다.  

범죄 집단 

이명박 정부는 동계올림픽 유치와 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겠다며 이건희에게 연말 선물을 선사했다. 동계올림픽 유치는 이명박 정부가 부르짖는 한국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끌어 올린다는 “글로벌 코리아”의 일환일 것이다.  

최근 G20 정상회의 유치, 아프가니스탄 파병 등을 “글로벌 코리아”의 자랑으로 떠벌리고 있다. 그러나 G20 정상회의가 IMF와 세계은행을 강화하고 경제 위기의 책임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정책을 합리화하는 것처럼, 아프가니스탄 파병이 아프가니스탄인 학살을 돕고 한국 청년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처럼, 동계올림픽 유치는 노동자들과 평범한 사람들의 이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명박 정부는 오로지 민족주의와 다국적 기업들의 제전인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범죄자를 사면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건희를 특별사면한 바로 그날 삼성 반도체에서 백혈병으로 죽어간 노동자들의 진실을 위해 투쟁하던 활동가를 체포했다. 이것이 보여 주는 바는 무엇인가.  

이명박이 말하는 경제 살리기란, 이건희가 기여할 경제 발전이란,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이익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말하는 경제 살리기와 발전은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올해 대기업 순이익이 크게 증가해 재벌들은 돈잔치를 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여전히 경제 위기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 등록금이 없어 자살하는 대학생들, 취업난에 절망하는 청년들, 거리로 밀려나는 노동자들, 비정규직 고용에 고통 받는 이들, 그 누구도 대기업 순이익 증가의 열매를 나누지 못했다. 

이명박의 뻔뻔스러운 특별사면은 말하기도 거북살스럽고 가증스러운 “친서민·중도·실용”이 사기극임을,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오로지 “재벌 천국, 서민 지옥”을 위한 것임을 다시 한 번 보여 준 것이다.  

격노를 추스르며 생각해 본다. 이건희 같은 천하의 사기꾼 범죄자가 특별사면된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이명박 정부와 법무부가 천하의 사기꾼 범죄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주먹을 불끈 쥔다. 저들에 맞선 투쟁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또 하나 추가됐을 뿐이라고, 내가 수배 투쟁을 계속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추가됐을 뿐이라고 말이다.  

이것이 저 범죄 집단에게 보내는 나와 우리의 새해 메시지가 돼야 할 것이다.  

2009년 12월 30일, 마지막 촛불수배자 김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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