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 사이에 실망과 분노가 깊어지고 있다. 미국의 사회주의자 앨런 마스가 대선 후보 오바마와 대통령 오바마 사이의 차이를 주목하고 진정한 변화를 위한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말한다.


 

버락 오바마의 임기 첫해가 끝나 가는 이때, 두 개의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미국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상황은 대선 후보 시절 오바마가 했던 약속과 오늘날 실망스런 현실 사이의 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오바마가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것, 특히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꺾은 것은 그가 반전 후보라는 사람들의 인식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러나 오바마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평화상을 받기 일주일 전, 벌써 8년째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두 번째 증파를 선언했다. 이것으로 그가 취임한 뒤 아프가니스탄에는 5만 명이 넘는 병사가 새로 배치됐다.

오바마는 노벨평화상을 받으며 이런 영광을 얻게 된 데 “송구스러움”을 표하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바로 그는 조지 부시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 제국주의 수장으로서 역겨운 오만함을 드러냈다.

“우리가 지금껏 저지른 실수가 무엇이든,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합니다. 미국은 지난 60년 넘는 기간 동안, 막대한 무기와 자국 시민들의 피를 아까워 하지 않고 전 세계 안보를 지키는 데 헌신했습니다. 독일에서 한국까지, 미국인들은 제복을 입고 평화와 번영을 증진하는 데 복무하고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전 세계 안보를 지켰다고? 미군이 결혼식장에 떨어뜨린 폭탄 때문에 온몸이 산산조각 난 아프가니스탄인의 친지들에게 그 얘기를 해 보시라. 평화와 번영을 증진했다고? 25년에 걸친 미국의 경제 제재와 인도네시아의 점령과 학살에 고통받다 폐허 위에서 국가를 재건해야 하는 동티모르인들에게 그 얘기를 해 보시라. 미국 시민의 피? 중동산 석유를 장악하려고 미국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목숨을 잃은 무고한 이라크인들에게 그 얘기를 해 보시라.

만약 오바마가 우익 공화당 정치인들 — 오바마가 “테러러스트와 어울린다”고 비난하고 그의 출생지가 케냐라며 광분하는 이들과 영합하는 자들 — 의 지지를 얻으려고 이런 연설을 했다면, 그는 확실히 성공했다. 지난 대선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사라 페일린은 “오바마의 연설이 마음에 든다”며 환호했고, 공화당 출신으로 전 연방하원 의장인 뉴트 깅리치는 “아주 역사적인 연설”이라며 칭송했다.

월터 러셀 미드 — 미국외교협회(CFR)에서 대외 정책을 담당하는 헨리 키신저의 선임 연구원인 그는 우리가 오바마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말해 준다 — 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썼다.

“오바마는 정말 흠잡을 데 없는 대통령이다. 그는 심지어 뱀에게도 신발을 팔 수 있을 것이다.

노벨평화상을 받는 자리에서 오바마는 전임자 부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자신의 외교 정책을 아주 주도면밀하게 옹호했다. 그는 이라크에서 병력을 축소하는 한편, 아프가니스탄에 두 번째 증파를 하고 있으며, 이란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는 미국이 자기 방어를 위해 일방적으로 군사 행동을 펼칠 수 있는 권리를 역설하면서도, 이 권리가 현실에서 행사될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희망을 전달하고 있다.

만약 부시가 이런 말을 했다면, 지금쯤 전 세계에서 맹렬한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가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격렬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이건 정말 좋은 일이다. … 나는 미국의 대외정책을 전 세계에 전달하는 오바마의 능력을 칭송해 왔다. 그는 돼지 얼굴에 립스틱을 바르는 것을 넘어, 돼지 얼굴을 화장하고 심지어 돼지를 미용 학교에 보냈다.”

반면, 진심으로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길 바랐던 사람들은 쓰디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작가 게리 윌스는 이렇게 썼다.

“비록 오바마가 대선 캠페인 때부터 아프가니스탄에 더 집중하겠다고 하긴 했지만, 이제 그는 자신이 비판했던 이라크 전쟁과 마찬가지로 문제투성이인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자신의 전쟁임을 공인했다. …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배신을 계기로 나는 오바마에게도 단 한 푼의 지지금도 내지 않을 것이고, 단 한마디의 칭찬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의 아프가니스탄 증파 결정은 2008년 대선 때 그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전환점이 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진보 인사들은 오바마에게 미련을 갖고 있다. 미국의 진보적 주간지 〈더 네이션〉 편집장 카트리나 반덴 호이벨은 미국의 국립공영라디오(NPR)와 한 인터뷰에서 오바마의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이 — 마치 사라 페일린의 평가처럼 — “[아프가니스탄 증파를 결정하고 노벨평화상을 받는] 역설적 상황에서도 겸손한 태도와 기품을 잃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오바마가 아프가니스탄 증파를 발표하기 일주일 전, 반전 단체 ‘무브온(MoveOn.org)’은 회원들에게 오바마를 옹호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의회가 “우리 병사들의 안전하고 신속한 귀환을 약속하는 확고부동한 출구 전략과 철군 기준”을 지지하도록 호소하라고 촉구했다.

심지어 이제는 일부 보수 인사들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재앙으로 여기는 판에, 주둔군 수를 갑절로 늘린 대통령의 결정에 ‘무브온’이 요청하는 것이 겨우 “철군 기준”인가? 이런 미온적인 반응은 오바마가 국방부의 증파 요청을 수락하면서도 반전 운동의 반격을 크게 염려하지 않은 이유를  보여 준다.

지난해 이맘때, 미국인 수백만 명은 버락 오바마의 역사적인 대통령 당선에서 온 승리감에 도취돼 있었다. 그러나 〈소셜리스트 워커〉를 비롯한 좌파 매체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오바마의 실제 정책은 그의 말보다 보수적이었다. 그럼에도 오바마의 대선 캠페인은 한 세대가 넘는 기간 동안 주류 정치가 결코 하지 못했던, 변화를 갈망하는 대중의 열정과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지난 수년 동안 보수파가 득세한 워싱턴 정가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였다.

그로부터 1년 뒤, 현실은 매우 달라졌다. 오바마에게서 희망을 발견한 사람들은 매달, 매주, 심지어 매일 더 큰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

지난여름, 〈디 오니언〉은 다른 언론에 비해 당시 상황을 제법 정확히 포착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대선 캠페인 때 내세웠던 공약에 약간 변화를 줘 정부의 핵심 메시지인 ‘변화’를 좀더 정제된 슬로건인 ‘몇몇 유리한 정책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미세한 조정’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미세한 조정”이라도 이뤄졌다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모든 이슈에서 오바마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 넘고 ‘공공의 적’이었던 전임자 부시와 다를 바 없이 행동했다.

월가(街)를 구제하는 문제에서 오바마 정부는 전임 부시 정부가 임기 말 짜 놓은 정책을 그대로 추진했다. 국유화와 관련한 조처도 없었고, 기업 임원의 임금을 제한하는 정책은 무용지물이었으며, 은행 규제책이 새로 마련되지도 않았다.

국민건강보험을 개혁하는 데서 “이해관계자들”, 즉 거대 의료·보험·제약 산업복합체와 협상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은 오바마는 결국 국민건강보험 미가입자들을 위한 “공공보험의 부분 도입” 같은 불충분한 개혁마저 포기해 버렸다.

심지어 시민적 자유 같은 문제, 예컨대 미국이 해외에 운영하는 수용소 수감 인원을 끊임없이 늘려 간다든지, [제네바 협약을 무시하고] 수감자들을 군사위원회가 여는 재판에 회부한다든지, 고문이 합법인 정부에 수감자들을 인도한다든지, 영장 없이 불법 도청을 한다든지, [불법 행위를 한] 고위 공무원에 대한 형사 집행을 막으려고 행정부 권력을 남용한다든지 등등 도저히 부시 정부만큼 후퇴할 것 같지 않은 쟁점에서도 오바마 정부는 전임 정부의 정책을 거스르기보다 계승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물론 오바마가 부시와 완전 판박이는 아니었다. 예컨대 그는 6월을 ‘동성애자 자부심의 달’로 정하며 “동성애자들을 상대로 너무 만연한” 천대와 괴롭힘을 통렬히 비판했다. 조지 부시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오바마의 선언이 있고 며칠 뒤, 법무부는 법원에서 ‘결혼수호법’[1996년 제정된 법으로, 이성 결혼만을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한다]과 군대의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 정책[미 국방부에서 1993년부터 추진해 온 정책으로, 군 당국이 신병을 채용할 때 지원자의 성적 지향을 물어서는 안 되고 군에 입대한 자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혀선 안 된다는 것]을 옹호했다. ‘결혼수호법’과 군대의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 정책은 대표적인 동성애자 차별 조처로 오바마는 후보 시절 이것들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했었다.

노동자자유선택법 도입 문제, 이주노동자 단속 문제, 지구온난화 방지법 제정 문제, 경찰의 피의자 조사·심문 시 유색인종 차별 관행 문제, 교육 ‘개혁’ 문제 등등 오바마가 자신의 열광적 지지자들을 실망시킨 쟁점들은 계속 늘어만 간다.

이것이 보여 주는 바는, 대선 캠페인 당시 그의 주장과 달리 오바마가 결코 변화의 담지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워싱턴 정가 양대 정당의 여느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기득권을 옹호하는 데 헌신하는, ‘낡은’ 정치인에 가깝다.

약 1백 년 전,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은 미국 양대 정당 체제의 현실을 여느 급진 인사들 못지 않게 잘 폭로했다.

“당신이 워싱턴의 정치인이고, 당신이 운영하는 정부의 진실에 대해 알려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경청하는 듯 보여도, 실제 그들이 경청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큰돈을 쥐고 있는 이들 — 거대 은행장들, 거대 제조업체 사장들, 거상들 — 의 말이라는 사실을 매일 깨닫게 될 것이다. 진정 미국 정부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하나로 뭉친 미국의 자본가·제조업자 들이다.”

2008년 버락 오바마의 대선 캠페인은, 그가 워싱턴의 기성 정치인들과 출신부터 다르고 따라서 미국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는, 교묘하게 조작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펼쳐졌다. 이런 캠페인은, 공화당의 경우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고, 힐러리 클린턴처럼 수년간 워싱턴 정치에 길들여진 민주당 정치인들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캠페인이다.

그러나 오바마의 이런 이미지는 현실에서 거대 은행장·거상 들의 말을 “경청하는” 오바마의 실제 모습과 충돌했다.

오바마 정부의 재무부 고위 관료들 — 월가 구제에 책정된 수조 달러를 감독하는 이들 — 의 이름이 나열된 전화번호부를 살펴봐라. 거기에 진보적 정책과 관련 있는 인사들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노동조합이나 진보적 싱크탱크 출신 인사들, 지역 공동체 활동가들, 진보적 블로거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골드만삭스 — 월가 거품의 진원지이면서 정부의 구제 방안에 의존하는 거대 은행 — 의 전 임원들이다.

재무부 장관 티모시 가이스너는 비록 골드만삭스 출신은 아니지만 오바마 정부를 구성하는 인사들을 완벽히 대변하는 인물이다. 즉, 금융·정치 엘리트들의 협소한 세계에서 형성된 정치적 관점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 온 인물들 말이다.

몇 달 전 〈AP통신〉은 정보공개법을 통해 티모시 가이스너의 재무부 장관 재임 기간 통화 내역과 일정들을 입수해 보도했다. 여기에는 골드만삭스, 시티그룹, JP모건체이스 등 “가이스너와 수년간 알고 지낸 월가 임원들”이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이 수조 달러 규모의 기업들은 가이스너의 도움 덕에 경제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가이스너와 직통 전화로 연결된 이 회사의 임원들은 필요할 경우에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그와 통화했고, 이를 통해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혜를 얻었다.”

미국 정치가 실제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 주는 이보다 더 생생한 예를 찾기도 힘들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2년 또는 4년마다 한 번씩 투표해 정부 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나 시티그룹 임원들은 2시간 또는 4시간마다 수화기를 들어 정부 정책에 훨씬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지난 대선 때 오바마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가이스너를 존경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가이스너에 대한 비판이 곧장 오바마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분적으로 이것은, 그들이 오바마가 가이스너 같은 이들의 잘못된 조언에 이끌려 대선 캠페인 당시 보여 준 올바른 본성에서 벗어났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오바마가 대선 캠페인 때 약속한 정책과 프로그램들을 거듭거듭 후퇴시키고 정계와 재계의 주류 인사들로 주변을 채운 것이 보여 주듯,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의 과거 행적들을 본다면, 오바마 또한 그가 대선 캠페인 당시 바꾸겠다고 공언했던, 기업의 돈이 좌지우지하는 체제의 일부라는 점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과 관련해, 2008년에 오바마와 민주당이 금융권 등 기업들로부터 공화당보다 더 많은 정치 후원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뉴욕대에서 금융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워싱턴 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월가를 다시 규제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헤지펀드들은 정치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오바마를 지지한 진짜 이유다. … 오바마와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들이 이익을 내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하면, 월가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관대한 구제책 — 금융권 임원의 연봉을 제한하길 꺼리고 은행에 대한 더 강력한 규제를 머뭇거리는 — 을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요컨대, 오바마는 결코 기업 권력에게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또한 워싱턴 정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업과 거래하는 정치인 중 하나다. 그는 개혁가가 아니다. 공화당과 함께 미국 정가를 지배하는 민주당의 지도자다.

선거에서 표를 얻으려고 하는 그들의 수사가 어떻든, 공화당과 민주당은 기업·정치 엘리트 들의 이익에 따라 체제를 운영해 온 긴 역사를 갖고 있다. 그들을 강제하는 아래로부터 압력이 있을 때를 제외하면, 그들은 매번 본능적으로 보수적 선택을 했다.

물론 선거에서 이기려면 평범한 사람들 다수가 자신에게 투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정치인들이 체제를 어떻게 운영하려 하고 또 누구의 말을 경청하려 하는지 솔직하게 말한다면, 아무도 그들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선거에 나온 모든 후보들은 — 심지어 거대 기업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골수 보수당 정치인조차 — “국민을 섬기고” 다수 국민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겠다고 말한다.

이런 사기는 자본주의에서 정부의 기본 속성이다. 정치인들은 지배계급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체제의 얼굴 마담이다. 그들은 늘 선거 때 표를 얻으려고 대중에게 이런 저런 약속을 하고는 막상 당선하면 엉뚱한 짓을 한다. 오바마는 여러 차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연설을 하곤 했지만, 그 또한 이 체제의 일부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1930년대에 대통령을 지낸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오바마와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언론은 그를 루스벨트와 비교하며 집중 조명했다. 즉, 둘 모두 혹독한 경제 위기 시기에 노동자들을 구출할 준비가 된 진보 인사라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지난 1년간 행적 때문에 이제는 이런 말도 쑥 들어가긴 했지만.

루스벨트가 이런 신뢰를 얻게 된 것은 대공황 시기 그가 추진한 ‘뉴딜 정책’에 사회보장제도와 실업보험 같은 개혁 조처들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 정치인 루스벨트는 취임 초기 노동권 신장 정책이나 공공 근로 확대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대공황 시기 미국 사회를 뒤흔든 대규모 시위와 저항에 부딪쳐 애초 매우 보수적이었던 자신의 경제 정책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뉴딜 정책’에 친노동자적 내용이 포함된 것은 바로 이런 아래로부터 직접 행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바마와 루스벨트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이것이다. 즉, 오바마는 1930년대 같은 강력한 투쟁에 부딪친 적이 없다. 오히려 그의 국정 과제가 만들어지는 데 주로 압력을 가한 것은 월가와 거대 기업들, 주류 정치권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봐야 할 것은, 월가의 탐욕과 자본주의가 부른 재앙에 대한 불만이 1년 전 대선 때보다 더 커졌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월가가 초래한 경제 위기의 고통스런 대가를 감내하고 있지만, 은행과 투기꾼 들은 이제 다시 좋은 시절이 왔다며 자축하고 있다.

관건은 이런 불만이 언제, 또 어떻게 투쟁과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지느냐다.

이런 불만 때문에 오바마의 대선 캠페인은 애초 민주당 지도자들이 의도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주목받으며 떠올랐다. 오바마의 대선 캠페인은 국민 수백만 명에게 처음으로 기성 체제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힐끗 보여 줬다. 그중에는 조직 활동을 처음 해 본 열성적 지지자들도 있었다. 이제 그들은 민주당이 표를 얻으려고 약속했던 미래와 정반대의 현실 앞에서 난관에 봉착해 있다.

현 체제에 대한 분노, 더 나아가 이 체제의 얼굴 마담인 버락 오바마에 대한 분노는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미래의 투쟁은 더 많은 사람들이 진보적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했던 다음 말을 인식하는 것에 달려 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누가 백악관에 앉아 있느냐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누가 거리에, 카페에, 정부청사 홀에, 공장에 ‘앉아 있느냐’다. 누가 투쟁하고, 누가 사무실을 점거하고, 누가 시위에 나서느냐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결정할 것이다.”

출처: 미국의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 번역: 조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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