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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앙에서 다시 등장한 반자본주의 운동

에비앙에서 다시 등장한 반자본주의 운동

폴 먹가(영국의 좌파 언론인)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여덟 개 국가에 전 세계는 응답한다―투쟁으로!” 프랑스에서 울려 퍼진 이 구호는 유럽의 수십 개 나라, 아프리카·아시아·라틴 아메리카 등지에서 온 사람들의 외침이기도 했다.

지난 6월 1일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에서 10만 명의 시위대가 G8(주요 8개국) 정상회담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조지 부시, 토니 블레어,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 그리고 다른 5대 강국 지도자들이 프랑스의 오지(奧地) 에비앙에서 회담을 가졌다. 그들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지도자들을 초청해 그럴싸하게 정상회담을 꾸몄지만, 진짜 의도를 숨길 수는 없었다.

부시와 블레어, 그 밖의 다른 지배자들은 사유화와 복지 축소라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강요함으로써 전 세계 민중의 삶을 계속 망가뜨릴 방안을 논의했다. 그들은 최빈국들에게 살인적인 외채 상환 의무를 강요함으로써 최빈국 민중의 삶을 망가뜨리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이라크 전쟁을 감행한 부시·블레어와, 전쟁에 반대했다가 지금은 미국과 영국의 점령을 은근슬쩍 승인해 버린 시라크 같은 자들 사이의 의견 차이를 봉합하려고도 했다.

G8의 지배자들은 그 동안 자신들이 밀어붙인 전쟁들과 경제 정책들이 불러일으킨 분노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외부 세계와 격리된 오지에서 만나 탱크와 미사일과 군대와 경찰의 엄호를 받으며 회담을 한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항의 물결이 정상회담장에 몰아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6월 1일 에비앙 인근 도시들인 스위스의 제네바와 프랑스의 안마스에서 두드러진 시위들이 벌어졌다. 더 작은 규모이긴 했지만 스위스 로잔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제네바 도심을 출발한 시위대 수만 명이 프랑스·스위스 국경 근처까지 행진했다. 안마스를 출발한 대규모 시위대도 국경을 향했다. 모두 합쳐 10만 명 넘는 사람들이 다채롭고 활기차며 분노에 찬, 결연한 항의 시위에 참가했다. 로잔에서도 수천 명이 행진했다.

분노는 제3세계 외채 같은 주요 쟁점들이나 G8의 즉각적인 정책들보다 훨씬 더 광범한 문제들을 겨냥했다. 시위대는 구호와 팻말을 통해 자신들이 자본주의 자체에 반대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시애틀에서 제노바, 피렌체에 이르기까지 지난 3년 동안 벌어진 다른 반자본주의 시위에서처럼 이번 시위대의 압도 다수는 그 지역 주민들이었다. 세계의 지배자들이 어디에서 만나든 그들이 나타나는 곳에는 그들과 그들이 운영하는 체제에 대한 분노가 집중되고 있다.

6월 1일의 제네바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스위스인들이었다. 젊은이들과 노인들,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 노동조합 활동가들, 연금 생활자들이 시위에 참가했다. 수백, 때때로 수천 명씩 참가한 유럽 각국의 대표단들도 큰 인상을 남겼다. 활기찬 시위를 벌인 5백여 명의 영국 대표단도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제네바의 학생 마리-프랑스 잘베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여기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런 행사를 벌이고 있다는 게 무척 자랑스럽다. 나와 내 친구들은 전쟁 반대 시위를 벌였었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그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그와 함께 제3세계 외채 문제를 수수방관하는 G8에도 반대한다.”

언론·정치인·경찰은 일부 무장 시위대가 제네바를 약탈할 것이라며 제네바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 공포심을 조장하려 했다. 그러나 현지 주민 다수의 실제 정서를 잘 보여 준 것은 도시 전역의 가게와 사무실, 가정과 공동주택에 무수히 내걸린 무지개빛 “평화” 배너였다.

안마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의 대다수도 프랑스 동부 각지에서 온 현지인들이었다. 물론 여기에도 국제 대표단이 함께해 인상적인 광경을 연출했다. 프랑스 시위대의 선두에서 행진한 그룹은 파업중인 교사 대표단이었다. 그들은 지금 연금과 교육 분야 복지 제도를 공격하는 우파 정부에 맞서 대규모 항쟁을 이끌고 있다.

교사 샤를 피루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우리가 연금과 교육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에 맞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총파업이 성사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또 있다. 우리가 아프리카의 외채나 에이즈 위기 같은 문제들을 다뤄야 하고 부시와 블레어에도 반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시위대가 국경에서 만나자, 행진 코스 위의 다리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손을 흔들거나 박수갈채를 보내 주었다. 많은 시위대가 노동자들의 노래 ‘인터내셔널’ 가를 부르는 광경은 감동의 순간이었다.

시위대는 버려진 국경 검문소 지붕 위로 올라가 춤을 추면서 쾌활하고 다채로운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전 세계의 반전·반자본주의 운동이 소멸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에비앙 시위는 정반대 증거를 보여 주었다.


증언 - 경찰 폭력

서방 언론은 G8 정상회담에서 경찰과 일부 시위대가 충돌한 사건들과 기물 파괴 행동을 집중 부각시켰다. 그들은 언제나 이런 사건을 터무니없이 부풀린다. 압도 다수의 시위대는 강력하지만 평화로운 시위를 벌였다. 현지 주민들도 시위대를 환대했다.

사소한 사건들이 있기는 했다. 대다수 시위대와는 아무 관계 없는 극소수 집단―일부 언론이 “블랙 블록”이라고 이름 붙인―이 복면을 쓴 채 의미 없는 파괴 행위를 일삼으며 의도적으로 경찰과의 충돌을 유도했다. 이를 빌미로 경찰은 시위대와 현지 청년들을 모두 공격했다.

[그러나] 단연 최악의 폭력 행위는 경찰이 저지른 짓이었다.

영국인 시위 참가자 마틴 쇼는 제네바와 로잔을 잇는 도로를 봉쇄하기 위한 시위에 참가했다. 그가 매달려 있던 줄을 경찰이 잘라 버리는 바람에 그는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경찰은 로잔의 야영지를 침탈해 4백여 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경찰은 안마스 인근에서 연좌 농성을 벌이던 시위대에 최루가스를 사용했다.

영국인 사진기자 가이 스몰먼은 경찰의 섬광 수류탄에 부상을 입고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10만 명 이상이 참가한 주요 시위는 이 세계의 지배자들이 저지른 훨씬 더 큰 폭력에 대한 분노를 분명히 보여 주었다.


증언 - 항의 시위에 처음 참가한 사람들

G8 정상회담 항의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영국에서 온 사람 중에는 반전 운동에 가세했다가 이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 운동의 일부가 되기로 결심한 젊은이들이 많았다.

버밍엄에 사는 19살 학생 한나 마스든은 이렇게 말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어떤 정치 활동에도 참여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전쟁이 터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G8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 나는 매혹됐다.”

16살의 킴벌리 해밀튼은 글래스고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27시간이나 달려왔다. “이런 일에 참가한 것은 처음이다.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일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이 사람들이 모두 전쟁에 반대하고, 부시와 블레어에 반대하고, G8에 반대한다. 전쟁은 중요한 쟁점이다. 그러나 이들이 모든 것을 사유화하고자 하며 도처에서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블레어가 지금 영국에서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