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55일 만에 치르는 장례. 1월 9일은 냉동고에 잠들어 있던 용산참사 희생자 5명을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여전히 꽁꽁 얼어붙은 날씨였지만 고인들도 이 마지막날 만큼은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영결식이 열린 서울역 광장에는 4천 명 이상이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차 고인들을 배웅했다.

많은 시민, 사회단체, 노동조합, 네티즌 모임이 깃발을 들고 참가했고 뉴스를 보고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참가한 시민들도 보였다. ‘용산참사 진상 규명’, ‘살인개발 중단하라’, ‘MB OUT’ 등을 적은 만장 수십 개가 세워졌고, 비슷한 구호를 적은 손팻말을 나눠 주는 모습도 보였다.

총 8천5백56명이 모인 장례위원회의 상임장례위원장인 이강실·조희주 용산범대위 대표는 개식사에서 “국민의 힘이 승리해 오늘 장례를 드리게 됐다”고 말했다. 두 위원장은 용산 참사는 “정부가 악법으로 국민의 입을 막고 부자들의 금고를 채운 지난 1년”을 예고한 “예언자적 사건”이었다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망루를 세우자”고 호소했다. 또, 책임자를 감옥으로 보내고 구속자를 석방할 것, 미공개 수사기록 3천 쪽을 공개하고 살인개발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고인들의 평온한 영면을 기원했다.

변연식 공동장례위원장이 낭독한 용산 참사 경과는 정부의 외면과 탄압 속에 사계절을 버텨 온 유족들의 용기와 각계에서 이어진 따뜻한 연대를 상기시켰다. 변 위원장이 말한 대로 “이런 투쟁으로 김석기를 사퇴시켰고 정부를 협상장으로 끌어냈다.”

영결식장에서 유가족들은 내내 침통한 표정으로 눈물을 쏟았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조사에서 “용산 학살에 책임이 있는 정권의 우두머리가 나와 무릎 꿇고 사죄하라 …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폭도, 테러리스트라고 했으면 그 누명을 벗겨야 하지 않겠나” 하고 목청을 높이자 참가자들도 옳다며 소리 높여 호응했다.

야 4당(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주당, 창조한국당) 대표들의 조사에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폭군의 정치, 양극화의 정치를 끝내고 서민의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도 ”철거민 없는 세상을 만들고 언젠가 저 뻔뻔한 대통령이 무덤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장(고 이한열 씨의 어머니)도 “용산 유가족들을 볼 때면 20년 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며 앞서간 열사들이 기다릴 테니 고인들이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분향하는 유가족들

유가족을 대표해 입을 연 전재숙 씨(고 이상림 씨의 부인)는 이미 너무 많은 눈물을 쏟아서인지 목이 잠겨 있었다. 전 씨는 ‘[용산 참사 때문에 구속된 아들] 충연이도 오늘 아버지를 묻고 나면 다시 감방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옥 같던 불구덩이에서 뛰어내리다 다친 허리와 다리가 낫지 않아서, 상중에도 계속 침을 맞고 진통제를 먹어야 했습니다. … 어릴 적 못 먹어서 가뜩이나 자그마한 막내가, 신혼 초에 생이별을 하고 다리를 절뚝이며, 언제 나올지 기약도 없이 차가운 감방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그걸 보는 이 못난 어미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하며 서러움을 토했고, 참가자들도 눈시울을 적셨다. 전 씨는 국민들께 감사한다며 거듭 인사하고는, 진실을 밝히고 잘못된 재개발을 막자고 호소했다. 

원래 마지막 순서로, 경찰의 수배를 피해 명동성당에서 농성중인 박래군·이종회 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과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 의장이 호상 인사를 할 계획이었으나, 경찰은 야멸차게도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명동에 경찰 병력을 배치하고는 수배자들이 나오면 즉시 검거하겠다고 경고했다. 

서울역에서 영결식을 지내고 용산참사 현장으로 이동중인 운구행렬과 시민들
서울역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노제 장소인 용산참사 현장으로 향하는 운구 행렬과 시민들
참사현장으로 돌아온 운구행렬 - 하늘도 울었다

모욕

영결식을 마치고 노제를 지내러 서울역을 출발할 때쯤 눈이 흩날리기 시작하더니, 곧 시야를 뿌옇게 가리는 강한 눈발로 바뀌었다. 궂은 날씨에도 수천 명의 시민들이 운구차 뒤를 따랐다. 많은 참가자들이 ‘살인 개발 중단하라’, ‘용산참사 진상 규명’이 적힌 손팻말을 들거나 구호를 외치며 행진에 함께했다. 

그러나 경찰은 고인들의 마지막 가는 길도 편히 보내 주지 않았다. 노제 장소인 용산역은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경찰이 영결식장에서 대형 그림이 나가는 것을 막아 출발이 지연됐고, 용산역에 거의 다 왔을 때 경찰이 행진을 한참 동안 가로막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쏟아지는 눈 속에 긴 시간 언 발을 굴러야 했다. 심지어 경찰은 장례 행렬을 향해 ‘도로를 점거하고 있다’며 모욕적인 경고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행렬은 2시간 30분 동안 가다서다를 반복한 끝에 날이 어둑어둑해진 다음에야 노제 장소에 도착했다. 노제는 참사 현장인 남일당이 보이는 도로에 무대를 세우고 열렸다. 사회를 맡아 무대에 오른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은 “드라마 촬영 하나 한다고 광화문 전체를 내 주면서 영구차에게는 전 차선을 내 주지 않았다. 인두껍을 쓰고 이럴 순 없다”며 “오늘은 단지 추모하는 자리가 아니라 고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확인하고 결의하는 자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들과 오랜 시간 고락을 같이 한 문정현 신부는 “철거민들의 하루하루는 정말 처절했다. 내가 바로 증인”이라며 “이런 식의 재개발, 뉴타운은 끝장[나야 한다]”고 외쳤다.

마지막으로 유가족들이 무대에 올라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고 이성수 씨의 부인 권명숙 씨는 긴 글을 낭독하며 흐느꼈다.

“남편의 시신이 한 서린 용산에 왔습니다. 화마에 불타서 남편의 다리는 젓가락 같았습니다. 수의를 입혀드리고 염습을 해도 그 모습은 너무나 왜소했습니다. 그래서 차마 화장은 하지 못했습니다. 불구덩이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다시 한 번 불길로 모시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 저희가 떠나기만 기다리는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을 보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이 이곳에 살았는지 기억도 못할 정도로 화려한 용산을 만들겠지요. … 이 나라 정부가 버린 저희를 따뜻이 보살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그 마음 믿고 끝까지 싸워 보답하겠습니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 참가자들도 눈물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사회자 김소연 분회장은 지금 이 시간에도 집에서 일터에서 쫓겨나 거리로 나앉은 사람들이 있다며, 이들을 위해 싸울 것을 열사들을 떠나보내며 약속하자고 했다. 그말처럼, 고인들을 떠나 보낸 비극의 주범들에 맞서 싸우는 것이 남은 사람들의 숙제일 것이다. 

노제가 끝나고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쉽게 떠나지 못하고 참사 현장 주변을 발길로 더듬었다. 이제 곧 사라질 남일당 분향소 앞에도 오랫동안 긴 줄이 이어졌다. 

남일당 앞을 지나는 만장

장례식에서 만난 사람들

영결식에 참가한 수천 명 중에는 수도권뿐 아니라 일부러 먼 지역에서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부산 희망 촛불’이라는 깃발을 들고 참석한 이광열(닉네임 민중철학놈) 씨는 부산에서도 용산 문제로 시민 홍보전을 해 왔다며 시간이 되는 한 모란공원 장지까지 함께할 생각이라 했다. 함께 있던 조활(닉네임 조연) 씨는 대구 촛불모임에서 왔다고 했고, 경남 촛불모임이나 충북에서도 영결식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이 있다고 전해 줬다.

대학교 2학년인 송대현 씨, 고등학교 2학년인 최윤영 씨 등 4명은 2년 전 촛불집회에서 처음 만나 함께 집회에 다니기 시작해 용산 참사 항의 집회에도 여러 번 갔고 오늘 장례에도 참가했다. 송 씨는 “이명박이 제발 임기 끝날 때까지 조용히만 있어 줬으면 좋겠다”며 답답한 마음을 토했다.

운구 행렬을 따라가며 눈물이 얼룩진 얼굴을 연신 닦아 내던,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여대생은 목 메인 소리로 “장례를 치르게 돼 정말 다행이지만, 사과 한 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고인들이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 보고 싶어서 뉴스를 보고 혼자 찾아왔다고 했다.

여든 살이 넘었다는 전 아무개 씨는 길을 지나다 장례 행렬을 마주하고는 “죽은 사람들만 안 됐다. 나도 세입자라 남 일 같지 않다”며 안쓰러운 마음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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