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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의 노예 혁명을 다룬 최상의 역사서

《블랙 자코뱅》시 엘 아르 제임스, 필맥 588쪽, 1만 6천 원

《블랙 자코뱅》은 1700년대 프랑스의 아이티(당시에는 산도밍고라고 불렸다) 식민 지배에 항거한 노예 혁명을 다룬 훌륭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시 엘 아르 제임스는 1930년대 가장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중 한 명이자 트로츠키주의자였다(그는 1989년 6월에 삶을 마쳤다).

《블랙 자코뱅》의 첫 세 장은 혁명적 위기를 초래한 산도밍고의 “객관적인 상황”, 곧 산도밍고의 경제, 사회 계급, 통치 방식을 분석한다. 제임스는 노예제를 세계 자본주의의 축적이라는 맥락 속에 자림매김한다.

“노예매매와 노예제도는 18세기의 경제 상황에 맞물려 있다. 그러면서 세 세력들, 즉 산도밍고의 독점 식민지 지배자들, 프랑스의 부르주아 계급, 영국의 부르주아 계급들은 모두 한 대륙을 황폐화시키고 수백만 명을 짐승같이 착취하면서 번영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54쪽) 이런 분석 방법론은 러시아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그것과 무척 유사하다.

18세기 말에 산도밍고는 “전 세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장 훌륭한 식민지”(85쪽)였다. 이곳에서 노예들은 유럽이 소비하는 커피·설탕·인디고의 절반을 생산했고, 그런 무역 덕택에 프랑스의 일자리·도시·항구가 활기를 띠었다.

부는 노예 소유주들에게 거대한 정치 권력을 가져다 줬지만, 노예들의 삶을 지배한 것은 가학적인 지배, 높은 사망률, 억압이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이상이었던 자유·평등·우애는 산도밍고까지 확산되지 못했다. 혁명의 이상들과 부르주아지의 경제적 필요가 충돌했기 때문이다.

한편, “북평원을 뒤덮은 거대한 설탕 공장에서 수백 명씩 무리를 이루어 함께 일하고 함께 생활하다 보니 그들[노예들]은 당시의 어느 노동자 집단보다도 근대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한층 더 근접해 있었다.”(126쪽) 트로츠키가 불균등결합발전이라고 불렀던 것의 흥미로운 사례라 할 수 있다.

노예 소유주들은 프랑스 혁명이 고무한 평등 사상이 자신들의 지배를 뒤엎을까 봐 두려워 프랑스 식민 지배의 권위에 도전하는 물라토 —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로 흑인 노예보다 조건이 약간 나았다 — 를 공격했다.

한편, 프랑스는 농장주들이 영국에 붙어 독자적으로 거래할까 봐 소규모의 위장 노예 반란을 조직했다. 반란은 통제를 벗어났고, 노예제의 취약성을 보여 줬다. 이때부터 노예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위해 투쟁했고, 자신들의 잠재력을 깨달았다.

“노예들은 지칠 줄 모르고 계속 파괴했다. 자크리[1358년 농민 반란이 일어났던 프랑스 북동부의 도시]의 소작농이나 러다이트[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섬유기계들을 파괴하는 폭동을 일으켰던 19세기 영국의 수공업자]처럼 가장 분명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구원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고통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것들의 파괴였다.”(129∼130쪽) 그러나 자유를 요구할 자신감은 여전히 부족했다.

조종

《블랙 자코뱅》은 투생 루베르튀르의 이야기를 다룬다. 투생은 45세까지 노예 마부였다. 그는 반란자들을 규합하고 그들을 규율 있는 군대로 조직하면서 지도자로 부상했다. 그는 제국의 경쟁을 이용하고자 섬의 동쪽에서 스페인을 편들어 스페인한테서 군대를 지원받았다.

한편, 파리에서는 상퀼로트(프랑스 혁명 때 혁명적 민중 세력)의 영향력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들은 “흑인을 형제로 인식했으며, 예전의 노예 소유주들이 반(反)혁명 지지 세력이라는 것을 알고는 마치 프랑스 사람들이 채찍의 고통을 당했던 듯이 노예 소유주를 증오했다.”(194쪽) 1794년 프랑스 국민공회는 산도밍고에서 온 대표자 3인(흑인 노예, 물라토, 백인)을 뜨겁게 환영했고, “모든 식민지에서의 노예제 폐지”를 선언했다.

그러자 투생은 프랑스로 말을 갈아탔다. 그는 전에 스페인 사람들을 위해 점령했던 주둔지 방어선을 공략해 재탈환했다. 그러자 기회를 엿보던 영국군 6만 명이 침공했다. 4년 동안 극적인 게릴라 전쟁이 벌어졌고, 마침내 투생은 영국군을 물리쳤다.

1801년 영국·스페인·네덜란드는 화친을 맺었고 프랑스에 전함을 지원해 투생과 흑인 해방의 이상을 분쇄하려 했다. 투생은 위험을 느꼈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르클레르가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상륙해 항구들을 장악하자, 그는 동요했고 대중에게 과제를 밝히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제임스는 역사에서 개인이 하는 구실을 탁월하고 흥미롭게 분석한다.

투생은 처음엔 대책이 없었다가 곧이어 가장 뛰어난 마지막 전쟁을 이끌어 프랑스를 물리쳤지만, 결국 납치돼 알프스로 끌려가 최후를 마감했다.

그러나 제임스가 분석한 사건들은 노예제의 조종(弔鐘)처럼 들렸고, 나트 터너와 덴마크 베시 같은 미국 노예 지도자들이 이 혁명에 고무돼 반란을 일으켰다.

《블랙 자코뱅》은 흑인의 긍지와 계급 연대감을 일깨워 주는 정치적 깊이가 있다. 세계 역사를 바꾸고 억압자들을 물리칠 수 있는 대중의 잠재력이 이 책의 핵심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