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의 김용욱 기자가 지난해 12월 18일부터 24일까지 중국의 선전과 광둥을 방문해 중국 현지 상황을 취재했다. 2회에 걸쳐 현지 취재 기사를 싣는다. 첫 현장 보고에서는 중국 노동자 투쟁을 다뤘다.


이번에 중국 남부와 홍콩을 다니던 중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나는 ‘차이나 레이버 불리틴’ 활동가와 인터뷰를 끝내고 홍콩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청년 수십 명이 ‘삼보일배’ 시위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정확히 말해서 ‘이십육보 일배’를 하고 있었다). 

삼보일배는 2005년 WTO 반대 시위 당시 한국인 참가자 1천여 명이 집단으로 선보인 뒤, 홍콩에서 급진화한 청년 활동가들의 저항 방식이 됐다. 이것은 국제적 투쟁이 서로 영감을 줄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홍콩 활동가들이 ‘삼보’를 ‘이십육보’로 바꾼 것은 다리가 아파서가 아니었다. 바로 자신들이 반대하는 중국 선전·홍콩 연결 고속철도 노선의 길이(26킬로미터)를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들 중 한 명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저는 고속철도뿐 아니라 온갖 문제에서 정부에 화가 났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이 정부는 부자만 위하고 빈민을 무시합니다. 홍콩에는 빈민이 1백20만 명이나 있습니다. 홍콩은 전 세계 대도시 중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곳입니다. 심지어 인도보다 심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정부는 공공주택을 짓거나 노인 복지를 해결할 돈이 없다고 말하다가 갑자기 값비싸고 필요 없는 고속철도를 짓겠다고 말합니다. 시민들의 세금을 가지고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을 내쫓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속철도 건설에 반대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논리 정연했다. 이 고속철도는 세계에서 킬로미터당 건설비가 가장 비싼 노선이 될 것이다. 지금도 버스를 타고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철로를 놓기 위해 말이다. 그의 얘기인즉슨, 홍콩 정부는 대형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이익을 위해 이 계획을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경제적 불평등과 민주주의

알고 보니 이 운동은 1960년대 말 반영 항쟁 이후 홍콩 역사상 가장 잘 조직되고 지속적인 운동 중 하나였다. 이들은 2009년 말 대규모 시위를 두 번 조직해 입법원을 이중삼중으로 겹겹이 포위하고 고속철도 예산 통과를 두 번이나 막았다. 

입법원 의원들 ― 대다수가 대중 투표로 선출되지 않은 기업체 임원들이다 ― 은 1월 16일 여론의 반발을 무시하고 고속철도 건설을 승인했다. 성난 시위대는 관련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입법원 진입을 시도했고, 경찰은 2005년 WTO 반대 시위 이후 처음으로 최루탄을 난사해 가까스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충격에 빠진 현지 언론은 이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이 수년간 작은 운동에 지속적으로 헌신한 ‘전문 시위꾼들’ ― 그중 한 명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홍콩을 경유할 때 티베트인들의 권리를 요구하며 성화 봉송을 저지하려 했다 ― 이고, 이들의 사상이 다른 나라의 ‘반세계화’ 활동가들과 다를 바 없는 사실을 발견하고 더 큰 충격에 빠졌다. 

더구나, 이들은 부자들이 입법원 의원으로 ‘간택’되는 홍콩의 비민주적 정치 체제와 고속철도 계획 같은 친부자 정책이 밀접히 연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홍콩 정부는 경제적 불평등의 시정을 요구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보통선거 같은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움직임과 결합될 가능성에 경악했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올해 1월 1일 보통선거 요구 시위는 예년보다 전투적이었다. 요구사항도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복지 지출 확대,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 석방 등 다양했다. 의미심장한 것은 시위대가 중국 정부의 홍콩 연락사무소를 향해 행진한 것이다. 일부 시위대는 연락사무소 진입을 시도하면서 경찰 1천 명과 충돌했다. 유례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자치정부라지만 자기 영토에서 그런 움직임이 나타난 것에 중국 정부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콩의 친중국 정당 지도자 중 한 명은 “시위대 전부가 그런 급진파였다면 중앙정부에서 진즉에 탱크를 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긴장한 것은 당연하다. 고속철도 건설 계획이 상징하는 중국 남부와 홍콩 간 통합이 가속화하면서 한 곳의 움직임이 다른 곳의 움직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남부 수출공업단지를 중심으로 계급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홍콩의 움직임은  상당한 파장을 낳을 수 있다. 

나와 대화를 나눈 홍콩의 청년 활동가는 자신의 활동이 중국 민중의 투쟁과 결합될 가능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중국 민중과 함께 우리는 정부가 원하는 중국·홍콩 통합에 도전해야 합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통합이란 말입니까? 민중들의 통합입니까, 아니면 부자들의 통합입니까? 사람들은 정부가 원하는 것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중국 민중과 우리가 힘을 합쳐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순간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