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0대 여성이다. 직장을 다니며 아들을 키우고 있다. 2006년 출산 후 나의 삶은 직장과 집뿐이었다.

내가 퇴근할 때 같은 처지의 동료들은 “출근 잘 해!” 하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기도 했다. 5년 동안 사람들과 교류는 거의 없었고 모든 삶은 아이에게 맞춰졌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행복함을 느끼면서도 나만을 위한 삶이 없어서 우울했다. 

남편과 대화하고 우울함을 해소할 창구를 찾아 봤지만 아이가 너무 어려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남편은 최선을 다해 육아와 가사노동을 하고자 했으나, 회사는 육아는 남성의 일이 아니라며 남성에게 육아할 기회도 제대로 보장해 주지 않았다. 

월급의 반 이상을 베이비시터에게 쓰던 것을 멈추고 어린이집을 구하는 과정은 또 얼마나 힘이 들었나. 집 바로 뒤에 구립 어린이집이 있다. 내가 사는 지역의 유일한 구립 어린이집. 처음엔 집 가까이에 구립 어린이집이 있는 것을 감사하며 당연히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입학원서를 쓰는 날 어린이집 앞 풍경이란 …. 새벽 7시부터 1월의 칼바람을 뚫고 엄마, 아빠 들이 서 있다. 나 역시 남편과 번갈아 2년을 그 짓을 했다. 그러나 결국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3명 충원에 50명 이상 모이는데 그것이 쉽겠는가! 결국 어린이집은 빈 자리가 없어 포기하고 좀더 비싼 유치원을 선택했다. 우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 놓고 출근하며 주문을 건다. ‘조금 있으면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울어도 어쩔 수 없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니.(선택은 직장을 다니느냐 퇴사하느냐 뿐이다.)

이런 어려움에 그럭저럭 적응할 때쯤 예상치 못한 임신을 하게 됐다. 나와 남편은 선택해야 했다. 남편은 아이를 원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 번 나를 포기할 수 없었다. 여성에게 지워지는 육아의 책임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남편은 내 생각을 존중해 줬고 나는 수술대에 올랐다. 나의 선택이지만 그 기분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런 나에게 산부인과 의사들의 낙태 반대 캠페인과 한나라당의 “셋째가 희망입니다” 캠페인은 역겹기 그지 없다. 특히 돈 때문에 낙태에 반대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생명존중을 얘기하는 것은 정말 역겹다. 낙태에 드는 비용은 20만 원 정도이지만 그러나 출산비용은 분만시 2박3일 입원비용까지 합해 50만 원이고 열 달 동안 병원에 지불해야 하는 돈은 적어도 1백만 원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상위 20퍼센트는 진정으로 워킹맘의 문제, 육아 문제, 낙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내 친구는 지난해 11월에 출산했다. 예쁜 딸아이를 얻은 기쁨도 잠시. 육아휴직을 원했던 친구는 육아휴직 불허 통보를 받았다. 남편은 지방 발령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 친구는 어쩔 수 없이 남편 없이 시댁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

법에 있는 육아휴직도 보장하지 않으면서 아이만 낳으라는 더러운 세상. 내 삶을 선택할 권리를 규제하려는 더러운 세상. 아이도 낳고 잘 키우고 일도 잘하라면서 제대로 된 보육시설, 제대로 된 일자리는 보장하지 않는 더러운 세상. 이 더러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삐딱이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해 본다. 나와 내 아이의 삶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