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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창당 10주년 기념 학술대회 보고 ①:
진보정당의 미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민주노총이 주도하고 진보진영이 단결해 건설한 민주노동당이 창당 10년이 됐다.

민주노동당은 2002년 지방 선거에서 울산 동구·북구청장에 당선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열 명이 당선하면서 ‘진보진영의 정치적 대표체’를 자임해 왔다. 그러나 2007년 대선 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분열했다.

민주노동당 창당 10주년 기념 학술대회는 민주노동당 10년의 성과와 위기를 평가하며 이후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첫 주제는 ‘세계 진보정당운동의 현황과 전망 ― 유럽 사회민주주의와 남미 21세기 사회주의’였다.

1월 26일 열린 이 토론에선 유팔무 한림대 교수가 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안태환 부산외대 교수가 베네수엘라 모델을 다루며 각 모델의 성과와 한계, 시사점을 발표했다.

유팔무 교수는 사회민주주의가 사회주의 전통의 일부라는 주장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유 교수는 유럽 사회민주주의가 많은 개혁 성과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우경화”한 제3의 길 노선도 한국 현실에 비하면 “그 정도만 돼도 어디냐” 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1970년부터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블루칼라 노동자가 감소하고 노동자들의 개혁 의지가 쇠퇴했다고 지적했다. 바뀐 환경에서 유럽 사민당들은 누구의 이익을 대변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부딪혔고 경제성장을 중시하는 쪽으로 문제의식을 이동시킨 결과가 제3의 길이라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해야 일자리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유럽 사민당들이 이런 “우경화”로 1990년대 중반 집권 러시를 이룰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유럽 사민당들이 비난받는 이 시절에도 GDP 중 복지비 지출 비중이 줄지 않았다며 제3의 길을 단순한 신자유주의 추종으로 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들의 반응은 반으로 갈렸다. 전태일을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의 박승호 소장과 정성진 경상대 교수가 유팔무 교수를 강하게 비판했다.

박승호 소장은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목표와 방법, 철학에서 모두 다르다고 반박했다.

박 소장은 기존의 진보진영 대안 논의가 정책 대안 논의로 한정됐다고 언급하고 세계 대공황 시대에 진보진영에게는 이념과 비전에 입각한 근본적 사회 변혁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성진 교수도 자본주의와 시장을 인정하는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같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우경화 덕분에 집권?

정 교수는 유 교수가 설명한 사회민주주의 역사가 부정확하다며 하나하나 반박했다.

1970년대 사회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것은 산업구조 변화 때문이 아니라 전후 대호황이 끝났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1990년대 중반 사민당들의 재집권도 ‘우경화’ 덕분이 아니라 우파 정부들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컸기 때문이고, 그들이 다시 정부에서 밀려난 것은 그런 기대를 저버리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오히려 제3의 길에 대한 환멸 때문에 2000년대 이후 사민당 정부가 쇠퇴하고 급진좌파가 성장하는 것이 유럽 정치의 주요 양상인데, 유 교수가 이 점에 침묵한다고 비판했다. 최근 독일 총선이 보여 주듯이 사민당의 쇠퇴가 급진좌파 연합체인 좌파당의 성장으로 상쇄되고 있어 좌파 자체가 몰락한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개혁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도 혁명적 대중운동 건설이 필요하며, 반자본주의 급진좌파 정당 건설이 긴급하다고 결론내렸다.

김인춘 연세대 교수는 유럽 사회민주주의가 방식은 온건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며 한국에서 과소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유 교수를 옹호했다.

조원희 국민대 교수는 철지난 혁명론이 아니라 발 딛고 선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한국은 이제 어엿한 중심부 국가이므로 한국 자본주의의 성공을 인정하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혁을 위해 여전히 전투성이 필요하긴 하지만, 대안이 혁명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첨병

안태환 교수는 발제에서 베네수엘라 혁명의 주요 프로그램인 각종 ‘미션’들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그 성과들을 설명했다. 주민평의회 건설 등 민중이 주체적으로 혁명을 수행하는 급진적 참여민주주의의 실험을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안 교수는,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경제 체제가 여전히 자본주의이며 경제권력은 자본가 수중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비자본주의적 성격의 조합운동과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더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석유 판매 수익에 의존하는 취약성이 베네수엘라 21세기 사회주의 실험의 가장 큰 한계라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유럽에서 차베스 비난에 앞장선 스페인 사회당의 예를 들면서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신자유주의의 첨병이었다고 비판했다.

토론자들 중에선 박승호 소장이 가장 강한 어조로 베네수엘라 “혁명”을 지지했다. 베네수엘라 혁명은 “명확하게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정성진 교수도 베네수엘라의 21세기 사회주의 실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안 교수의 발제에 공감을 표했다. 다만, 안 교수가 브라질 룰라 정부를 반신자유주의라고 평가한 점, 주민평의회를 강조하면서 노동자 통제와 공장평의회는 주장하지 않는 점 등을 비판적으로 논평했다.

반면, 조원희 교수는 “[안 교수 등이 긍정적으로 언급한] 기본소득은 카니발 사회주의다. 거긴 놀고 소비하기 좋아한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며 라틴아메리카의 ‘21세기 사회주의’ 실험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2부: 민주노동당 10년 평가와 과제

이어서 열린 2부 토론은 ‘민주노동당 10년의 평가와 과제’라는 주제였다.

최규엽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 소장이 발제자로 나섰고, 정영태 인하대 교수,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조성대 한신대 교수, 김종배 시사평론가, 권미혁 여성민우회 공동대표, 장원섭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최규엽 소장은 우선 민주노동당 창당의 의의를 강조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과 전농 등 대중조직을 기반으로 창당했고, 분당 전 한창 때는 월 5억 원씩 꼬박꼬박 당비가 들어왔다며 이런 당이 쉽게 망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 소장은 2004년 국회의원이 생기면서 헌신성보다 출세주의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을 민주노동당이 위기에 빠진 원인으로 꼽았다. 출세주의가 퍼지자 정책노선은 대충 타협하면서, 자리 싸움만 치열하게 했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이 문제에선 양대 정파 모두 똑같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의정 활동에서는 의원들이 운동과 당 차원의 과제에 전략적 집중을 못하고 개인플레이만 하니, 당 지지율은 떨어지는데 개인 인기만 높아지는 기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분당 과정을 평가하면서 종북주의 문제는 탈당파들의 왜곡·과장이라고 주장했다. 북핵 실험을 긍정적으로 언급한 중앙위원회 성명을 최고위원회가 비판적으로 수정해 발표하고 북한 방문시 북핵 실험에 항의하는 등 평등파의 요구를 실제로 다 수용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통합 문제를 언급한 최 소장은 지방 선거 전에 통합 선언이라도 하자는 것은 적대적 경쟁은 하지 말자는 뜻이라고 밝히고, 단순한 선거연합만으로 안 된다며 울산 사례를 들었다. 조승수 의원이 울산 북구 단일후보로 당선했는데, 국회에서도, 울산에서도 협력이 전혀 증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프림 정당’

토론자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분당과 민주노동당 약화를 평가했다.

정영태 교수는 민주노동당의 위기와 분당을 정파 대결이 아니라 2004년 국회 진출 후 당직이 출세 가능한 자리가 되면서 생긴 자리 다툼에서 찾았다. 문제는 특정 정파가 매번 이기는 결과가 되면서 상대 정파가 좌절한 데 있다는 것이다. 재통합을 하려면 과거 책임 소재를 묻지 말고 특정 정파의 독식 우려를 씻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웅 교수는 민주노동당이 40대 운동권 이미지로는 젊은 세대에 호소력을 갖추기 힘들다며 민심에 스며드는 정치 역량을 갖추는 게 과제라고 평가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민주노동당이 민주당의 대체재가 못 되고 보완재로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커피(민주당)가 질리면 녹차를 찾는데 민주노동당이 녹차가 못 되고 커피에 들어가는 프림밖에 안 됐다는 것이다.

또, 한나라당도 사학법 투쟁 등을 보면 투쟁할 땐 확실히 하는데, 민주노동당은 운동과 정치를 구분해 전략적으로 집중하는 데 실패해 결과적으로 운동도 정치도 모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분당이 된 것은 이 간판으론 장사가 안 된다고 보니까 깨진 것이 본질 아니냐고 지적했다.

장원섭 민주노동당 중앙위원은 당직공직 겸직을 금지한 것이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지도력의 이원화가 발생하면서 헛바퀴가 돌고, 스타 의원이 탄생하면서도 당 지지율이 내려가는 기현상을 잉태한 구조적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의원직이 투쟁의 무기가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좁쌀 한 톨만한 것이 기득권화하고 당을 위한 희생과 봉사를 명예로 생각하는 풍토가 붕괴했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연립정부?

조성대 교수는 한국 정치가 승자 독식 구조이므로 연립정부를 추진해 기회를 늘리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정권의 58퍼센트가 연립정부였다는 것이다.

청중 질의 시간에 유팔무 교수는 민주노동당이 올 지방선거부터 민주당과 연립정부를 조건으로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연합은 절대 합의가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아예 정부 인적 구성에 포함돼야 하고, 유럽 사민당들도 모두 연정으로 집권 경험을 쌓았다는 것이다. 집권해야 개혁을 할 수 있으므로 집권이 선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민웅 교수가 진보의 가치란 문제를 빼놓고 곧바로 연정을 논의하는 건 무리라고 답변했고 정영태 교수는 유럽에서 연정이 많은 건 내각제 때문이라며 한국에선 연정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무직 정도는 나눌 수 있으므로 중요한 건 구체적으로 주고받기가 가능한지 따져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2부 토론에서 대체로 토론자들은 민주노동당이 대중과 더 가까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방향은 대체로 당을 더 온건화시켜서 대중에게 다가서자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점에서 급진 좌파의 관점으로 민주노동당 10년을 평가할 토론자가 없었던 것은 2부 토론의 아쉬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