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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살인 여권을 쥐어 준 서방 정부들

하마스 지도자를 살해한 이스라엘의 암살단원들이 영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뉴스를 접하며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만약 이란 정부 요원들이 해외에 거주하는 반대파 지도자를 암살하려고 영국 여권을 사용했다면 영국 정부의 반응은 어땠을까?

분명 길길이 뛰며 항의했을 것이고, 어쩌면 미사일 공격까지 감행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영국 정부는 고작 런던 주재 이스라엘 대사 론 프로소르에게 사건과 관련한 “정보 공유”를 요청하는 데 그쳤다. 프로소르 대사가 암살과 관련한 질의에 “노 코멘트”로 일관해도 아무런 추궁이 없었다.

이스라엘 첩보 기관인 모사드가 문서를 위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3년에 모사드 요원 실비아 라파엘은 노르웨이에서 암살 임무를 수행하던 중 모로코인 웨이터 한 명을 살해한 뒤 체포됐다. 그는 캐나다인 사진 작가로 신분을 위장하고 있었다.

라파엘의 동료 암살단원들도 위조된 영국인·프랑스인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1987년에는 이스라엘 군수업체의 배달원이 독일의 어느 공중전화 박스에 모사드 요원들이 사용할 영국 여권 다발을 놓고 간 사건이 있었다. 영국 정부는 재발 방지 조처가 취해졌다는 확인을 받아 냈다고만 발표했다.

1997년에는 모사드 암살단이 하마스의 현 최고 지도자인 할레드 마샬 암살을 기도하면서 변조된 캐나다 여권을 사용했다. 마샬의 귀에 독극물 을 분사하려 한 요원 두 명이 요르단에서 체포됐다.

해독제

지금과 마찬가지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끌었던 당시의 이스라엘 정부는 할레드 마샬의 생명을 구한 해독제를 넘겨줘야만 했다. 이스라엘은 또한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도 석방했다.

2005년에는 이스라엘 요원 두 명이 뉴질랜드 여권을 불법 취득한 죄로 뉴질랜드에서 징역 6개월에 처해졌다.

그런데 최근 두바이에서 자행된 암살 사건에 대해서는 해결되지 않은 의문들이 많다.

이른바 “가짜 여권”들이 실제로 얼마나 가짜였는가? 이와 관련해서 영국 정부 등이 이스라엘에 속았기는커녕 이스라엘과 공모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짙다.

따지고 보면 이들은 가자 침공 같은 흉악 범죄에도 이스라엘과 협력해 왔다. 요인 암살 같은 상대적으로 경미한 범죄에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유명 저널리스트인 로버트 피스크의 두바이 취재원 한 명은 문제의 여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권에는] 홀로그램 사진과 생체인식 정보가 찍혀 있었다. 이건 위조 여권이 아니다. 실제로 등록된 명의를 사용했다.

“홀로그램이나 생체 정보를 누군가 위조할 수 있었다면, 그건 무엇을 뜻하는가?”

암살 용의자들 가운데 다섯 명이 미국에서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영국 〈데일리 메일〉은 지난주에 모사드 요원의 제보 내용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영국 정부는 [암살] 작전이 개시되기 전에 그 작전에 대해 아주, 아주 간략하게 보고를 받았다.

“영국은 이 작전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암살 대상이 누군지도 몰랐다. 그러나 [암살단원들이] 영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았다.”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암살 그 자체의 문제가 있다. 이스라엘이 무슨 권리로 마흐무드 알 마부흐를 살해했는가?

이에 대한 답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찾아야 한다.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세계 어디서든 자기들 마음대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부여했다.

지난해 파키스탄 내 서부 접경 지역에서는 미군 무인정찰기가 동원된 공습 44건으로 “탈레반 지도자” 다섯 명과 더불어 민간인 7백여 명이 아무런 재판도 없이 살해당했다.

미국 CIA는, 콩고 지도자 파트리스 루뭄바 살해를 모의하고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암살을 거듭 시도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오랜 암살 전력을 갖고 있다. 중남미와 중동,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온갖 학살을 조직한 것도 CIA다.

2001년에 조지 부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암살 전문 부대를 창설하라는 비밀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번에 터져 나온 영국 여권 스캔들의 배후에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에 동참해 온 제국주의의 추악한 역사가 있다. 영국 정부가 이 문제를 놓고 제기되는 의혹들을 덮어 버리려 애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번역 천경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