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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과 선전

선동은 당면 쟁점에 초점을 맞춰 그 쟁점을 중심으로 행동을 분발시키려 한다. 선전은 더 체계적으로 의견을 설명하는 것이다.

대략적으로 말해, 선전가는 아주 적은 사람에게 많은 의견을 내놓는다. 선동가는 아주 적은 수의 의견을 내놓지만, 그것을 대중에게 내놓는다. 물론 이따금 선전도 상황만 괜찮으면 수천 명, 아니 수만 명에게도 미칠 수 있다.(예컨대 1974년 포르투갈에서 파시스트 정부를 무너뜨리는 혁명이 일어나고부터 전개된 혁명 정국에서 베스트셀러는 놀랍게도 레닌의 《국가와 혁명》이었다.) 그리고 선동이 미치는 ‘대중’은 매우 가변적인 규모이다. 그럼에도 위의 진술의 대체적인 요점은 옳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이 요점을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설명한다. “선전가는, 예컨대 실업 문제를 다루면서 공황의 자본주의적 본질, 현대 사회에서 공황이 불가피한 이유, 이 사회의 변혁 필요성 등등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그는 ‘많은 의견들’, 실로 너무 많아서 (비교적)적은 사람들에 의해 완결적인 전체로서 이해될 수 있는 의견들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선동가는 같은 주제에 관해 말하면서, 해고된 노동자의 가족이 굶어 죽은 사건, 가난한 사람들이 점점 더 가난해지는 것 등등을 예로 들 것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사실들을 이용해 ‘단 하나의 의견’을 ‘대중’에게 내놓는 일에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따라서 선전가는 주로 인쇄된 글을 수단으로 활동하고, 선동가는 말을 통해 활동한다.”

레닌의 마지막 문장은 너무 일면적이기 때문에 틀렸다. 위의 말이 있기 전과 후에 그 자신이 주장한 것처럼, 신문이 더 효과적인 선동가일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선동이 ― 말로써든 글로써든 ―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노동자들의 저항을 분열시키기 위해 소위 ‘민혁당’을 마녀사냥하고 탄압하는 김대중 정부가 언론·출판·집회·결사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권을 유린해 온 전임 정부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에 관한 일반적인 주장은 별문제로 하고 말이다. 물론 우리는 이 주장도 편다. 하지만 우리는 될수록 많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김대중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자극해 흥분시키고 분발시키려’ 한다. 그리고 이 ‘될수록 많은 노동자들’ 가운데는 국가가 ― 그리고 김대중 정부도 ― 반드시 계급 지배의 도구라는 사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는 노동자들(대다수 노동자)도 포함된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레닌은 “잠자코 보고만 있을 수 없는 불의”에 대해 말한다. 마르크스에 대한 심오한 이해에 바탕을 둔 그는 계급 이해관계와 관계 없는 ‘정의’나 ‘불의’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본주의 사회를 이데올로기로 변호하는 자들이 조장하는 ‘정의’나 ‘공정’의 관념과, 계급투쟁 과정에서 폭로되는 현실 사이의 모순을 지적하고 부각시키고 있다. 이것은 선동의 관점에서 볼 때 전적으로 옳다.

물론 선전가는 더 깊이 조사해야 하며, 정의의 관념, 상이한 계급사회들을 거치는 동안에 일어난 그 관념의 발전과 변형, 그것의 불가피한 계급적 내용 등을 탐구해야 한다. 그러나 선동의 주된 취지는 이것이 아니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추상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의 태도가 실제로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경험 ― 예를 들면 파업 투쟁을 진압하는 데서 경찰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경험 ― 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선동과 선전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선동과 선전은 둘 다 필요하고 없어서는 안 되지만, 둘 다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선동에는 더 큰 세력이 필요하다. 물론 개인이 어떤 불만 사항, 예컨대 어떤 공장에 항상 비누가 없다거나 화장실 휴지가 부족하다거나 하는 등에 대해 때때로 효과적으로 선동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나 특정 집단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쟁점을 둘러싼 광범한 선동은 그것을 수행해 내기에 적합한 처지에 있는 상당수 사람들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그러면 선동과 선전을 구별하는 것은 어떤 중요성을 갖는가? 민주노동당 학생 그룹은 하반기에 활동은 선동 중심으로 해 온 반면에, 간행물은 계속 선전용으로(‘잡지’라는 책자 형태 자체가 선동용으로는 부적합하다) 발간해 왔다. 그러나 혼동이 생겨나는 곳은 바로 여기다. 왜냐하면 상이한 종류의 선전이 있기 때문이다. 행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선전, 즉 구체적·현실적 선전과 그럴 수 없는 추상적 선전 사이의 구별이 존재한다.

추상적 선전은, 형식적으로는 옳지만 청중의 의식 수준이나 투쟁과 부합하지 않는 의견들을 내놓는다. 예컨대, 사회주의 하에서 임금 체제가 폐지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지만, 임금 인상 투쟁을 하는 노동자들 앞에 그 같은 요구를 내놓는 것은 선동이 아니라 가장 추상적인 형태의 선전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서, 해당 상황에서의 현실적 가망과 관계 없이 항상 총파업을 요구하는 것은 선동이 아니라 당면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 투쟁으로부터의 기권이다.

반면에, 현실적 선전은 매우 적은 변혁운동가들이 현재 대부분의 상황에서 노동자 대중에게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변혁운동가들이 세력을 확대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특정 쟁점들을 둘러싸고 여러 주장들을 제기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공장에서 현실적 선전가는 임금 체제의 폐지를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싸워서 획득할 수 있는 일련의 요구들을 주장할 것이고, 이 요구들은 틀림없이 노동계 지도부의 이름뿐인 요구들을 넘어서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변혁운동가들은, 예컨대 구조조정·민영화 반대와 근로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 그리고 하루 파업이 아닌 무기한 파업 등등을 주장한다.

이것은 레닌이 말한 의미의 선동이 아니라,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에 관해 한두 사람의 변혁운동가가 일단의 의견들을 내놓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추상적 선전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실 투쟁과 부합하고, 그래서 노동자들 가운데 꽤 큰 소수와 연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실적 선전이 변혁운동가의 의견들을 다 받아들이는 사람들 ― 지금으로선 아주 소수 ― 을 넘어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음을 뜻한다. 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변혁운동가의 의견들을 다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예컨대 왜 노동계 지도자들을 신뢰해서는 안 되는가,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서 조직할 필요성 등등에 관해 변혁운동가들이 내놓는 선전 가운데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선동과 선전의 구별은 두 측면에서 중요하다. 자신들의 소규모 토론 그룹에서 선전하고 거리 집회에서 만나는 현장 노동자들에게 선동하는 변혁운동가들은 자칫 노동자 대중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기 쉽고, 그럼으로써 소수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기초를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다른 변혁운동가들과의 토론 속에서 그리고 자신들의 학교에서 그저 추상적 선전만 하려 하는 변혁운동가들은 실제로 투쟁이 일어날 때는 기권하는 태도를 취하기 쉽다.

선동을 통해 대중 투쟁이 일어나는 데 일조할 수는 있지만 대중 투쟁을 스스로 조직할 수는 없는 조건 하에서 변혁운동가들은 현실적 선전을 통해 이 두 가지 함정을 모두 피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우리는 선동을 강화해야 한다. 현실적 선전을 버리지 않으면서 말이다. 선동 강화는 지배 이데올로기와 현실 사이의 불일치를 폭로하고 그 아이러니를 조롱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나 선동 강화는 무엇보다 간단 명료하게 말하고 쓰는 것을 포함한다. 따라서 그것은 불가피하게 신문으로의 전환을 포함한다. 잡지는 선전용으로는 적합하지만 선동용으로는 부적합하다. 반면에, 리플릿은 선동용으로는 적합하지만 선전용으로는 부적합하다. 특히 리플릿으로는 일상적인 조직을 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개입용이다. 개입과 일상 모두에 필요하고 유용한 것은 신문이다.

토의 사항

1. 선동과 선전의 차이는 무엇인가?

2. 한총련 이적 규정 철회 요구는 선전인가 선동인가? 추상적 선전주의의 태도는 어떤 것일까?

3. 정부의 구조조정 강행에 반대해 변혁운동가들이 지금 총파업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한 선동인가?

4. 우리 간행물의 기사를 예로 ① 그냥 일반적인 선전, ② 현실적·구체적 선전, ③ 선동의 사례를 들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