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해 쟁탈전》, 크리스토프 자이들러, 더숲, 1만 4천9백 원, 356쪽


장엄하고 신비로운 북극의 빙하들이 ‘눈물’을 흘리며 녹아내리는 것을 보고 평범한 사람들은 가슴이 철렁하는 것을 느낀다. 북극의 진정한 주인(북극곰이나 바다표범들)들이 영토를 잃고 점점 바다 밑으로 가라앉거나 배고픔을 참지 못해 자기 동족을 잡아먹는 기이한 일들을 보면, ‘그들이 왜 고통받아야 하는가?’ 하고 묻게 된다.

최근 지구온난화가 가속화하고 환경 재앙을 다룬 각종 다큐멘터리와 보고서들이 쏟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편 ‘지구를 구할 마지막 기회’라고 불린 코펜하겐 회의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식’ 논의만 무성한 채 실질적 합의 없이 끝나 버리자 성난 기후정의 시위대 10만 명이 행진을 하며 강대국들의 무책임을 성토하기도 했다.

이 책은 최근 온난화로 북극해의 항로가 열리면서 북극해 연안국들뿐 아니라 유럽, 심지어 중국에서도 탐사선을 보내는 것 등 북극의 천연자원을 강탈하려는 강대국들의 움직임을 상세히 보여 준다.

북극해는 지도상에서도 존재감이 미미했던 그저 얼어 있는 ‘죽음의 땅’이었다. 그러나 최근 온난화로 영구동토층이 녹고 그린란드의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엄청난 석유와 천연자원이 매장된 노다지로 각광받고 있다. 그린란드에만 석유가 최고 5백억 배럴(세계 7위 규모) 매장돼 있다. 그리고 빙하들이 녹으면서 새로운 항로들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묶여 있던 북동항로를 이용하면 항해 거리가 40퍼센트 단축된다. 화물운송 선박이 하절기에는 20일가량 걸리지만 북동항로를 이용하면 13일이 걸린다. 연료비만 하루 10만 달러라 엄청난 비용이 절감되지만 소비자 가격이 자동으로 낮아지지는 않는다.

굴지의 기업들이 비용 절감으로 쾌재를 부르는 동안 북극의 주인들은 터전을 잃어 가고 있다,

귀청을 찢을 듯한 굉음을 내며 쉴 새 없이 얼음 속을 파고드는 시추선과 이곳저곳을 들쑤셔 대는 탐사장비들이 다양한 생명체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다.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북극해 연안 주민들도 텅빈 바다에서 삶의 터전을 잃어 간다.

깃발

2007년 여름 러시아 잠수정이 북극해저를 탐사하면서 러시아 국기를 꽂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북극해의 막대한 천연자원을 둘러싸고 북극해 연안 강대국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전 국회의원이자 현재 ‘역사적 관점’이라는 재단에서 정치학자로 활동하는 나로취니즈카야는 이번 북극 해저탐사에서 러시아는 옛 소련 시대 이후 처음으로 적대적 대국이 아니라 세계적 강대국의 면모를 보여 줬다고 칭찬했다.

한편 미국 군부 소속 맥기는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지리학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는 현재 북극의 상황이 1백 년 전의 중동의 정세와 비슷하다고 본다. 그 당시에도 서방 국가들이 중동지역에 우위를 차지하려고 서로 다투었던 것처럼 현재 북극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동 문제를 훌륭하게 수행하지 못한 서방 국가들이 북극에서 같은 실수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군사적 경쟁

북극해의 천연자원을 확보하려는 이러한 움직임은 강대국들의 군사적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음도 보여 준다. 러시아군은 2007년 폭격기를 이용해 북극지역을 정찰했다. 20년 만에 북극 상공을 비행한 것이었다. 그리고 원자력 잠수함이 북극점 아래에서 잠수작전을 벌였다. 이 잠수함은 4.5미터의 두꺼운 얼음을 부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살상무기다. 러시아 해군은 군사력을 과시하려고 공군의 지원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러시아 해군은 2012년 항공모함 대여섯 편대를 구성할 계획이다.

미국도 북극해 주변 해양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태평양 해군부대, 북방부대, 운송부대 대장 등 고위 군장성들은 쇄빙선을 마련하려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부으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 북극해를 새로운 군 수송로로 이용할 수 있다고 발빠르게 계산한 것이다.

이 책은 북극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지상에서 벌어질 마지막 식민지 쟁탈전’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쟁탈전은 북극해의 천연자원을 둘러싼 군사적 경쟁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도 보여 준다. 그리고 북극해는 깃발을 꽂기 전에는 누구의 것도 아닌 인류의 공동재산이었음을 상기시킨다.

당장 이산화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감축할 수 있는 풍력·태양열 발전 개발을 뒤로 한 채 북극해 자원을 강탈하는 데 혈안이 된 강대국들의 탐욕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