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보호감호소’를 다시 만들고, 그 안에 “사형 집행을 염두에 두”고 사형 집행 시설을 설치하려 한다.

사형 부활 카드를 꺼내 대중의 불만을 단속하려는 것이다. 사형 집행 재개 시도는 대중의 원성을 사는 정권이 상황 모면을 위해 여론을 분산시키고, 범죄에 대한 공포심을 부추겨 사회 통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다. 

2월 25일 헌법재판소의 사형제 합헌 판결에 항의하는 시민·사회단체들

사형 폐지 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형태 변호사는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세종시 때문에 [한나라당이] 두쪽이 나게 생겼는데 김길태로 완전히 덮어 버렸”다며 사형집행 부활 운운하는 정권의 검은 의도를 꼬집었다. 

사실, 사형제도의 역사가 바로 정권의 위기 덮기에 이용돼 온 역사였다. 

독재 시절에는 주로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양심수들을 악마화해 처형하곤 했지만, 이제는 그 논리가 예전만큼 먹히지 않자 가엾은 살인 피해자에 대한 대중의 연민과 슬픔을 이용해 사형 집행을 정당화한다. 

우파는 ‘지난 10년 간 사형을 하지 않아서 흉악범죄가 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형 집행이 범죄 억지력이 있다는 주장은 현실의 뒷받침을 받지 못한다. 1988년과 2002년 두 차례 사형제와 살인율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유엔은 사형제가 살인 억제력이 있다는 가설이 근거 없다고 결론 내렸다. 

사형이 범죄를 줄인다?

한국의 범죄 통계를 바탕으로 사형 집행의 효과를 조사한 서강대 이호중 교수에 따르면,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던 10년간(1998~2007년) 살인범죄는 약 16.3퍼센트 증가했다. 반면, 사형을 집행했던 1988년부터 1997년까지 10년 동안 살인범죄 건수는 31퍼센트 증가했다. 권위주의 통치기였던 그 전 10년간(1978~1987년)에는 34.6퍼센트 증가했다. 

우파의 주장과는 달리, 사형 집행이 중단된 지난 10년이 사형을 집행했던 때보다 오히려 살인범죄 증가율이 더 낮았다.

사형제가 흉악범죄를 막지 못하는 이유는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배제하는 체제가 뒤틀린 인간을 낳기 때문이다.    

부산 여중생 살해 사건 피의자 김길태도 범행을 저지르기 전부터 일생의 반을 이미 감옥에서 지냈지만, 그 시간은 교정의 시간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복수심을 키우는 시간일 뿐이었다. 

교정제도나 사회복지의 획기적 개선 없는 형벌 강화가 범죄를 줄이지 못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살해된 부산 여중생의 짧은 생이 너무나 가엾지만, 그럼에도 정부의 사형 집행 시도에 대해서는 반대해야 한다. 

사형제가 범죄 억지력이 없고, 오판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하며, 정치적 악용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형제 폐지는 이미 세계적 ‘대세’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유럽평의회에 형사사법 관련 협약 가입을 요청하면서 사형 집행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했다. 

그런데 유럽에서 잡힌 사람은 사형하지 않고, 한국에서 잡힌 사람은 사형한다는 것은 엄연한 이중잣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