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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노조 경제자유구역법 반대 투쟁

기아차 노조 경제자유구역법 반대 투쟁

지난 6월 25일 기아자동차 노조 화성지부는 “경제자유구역법 박살”을 외치며 6시간 부분파업을 했다. 노동해방선봉대, 대의원, 조합원, 상집간부 등 약 6백여 명의 동지가 공장에서 사전 집회를 마치고 손학규가 있는 경기도 도청으로 이동했다. 경기도 도청에 도착한 순간 나도 모르게 ‘와’라는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199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또다시 수원에 약 5천여 명의 동지가 모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집회가 끝나고 기아선봉대와 쌍용차 동지들은 도청을 향해 계란을 던지며 항의 표시와 함께 진격 투쟁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심한 몸싸움이 있었고, 도청 앞은 순간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폭력경찰은 우리의 동지들을 폭력으로 진압했으며 쌍용차, 만도, 학생 등이 주로 부상을 당했고, 기아 동지 6명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기아차 동지 한 명이 경찰의 집단구타로 인해 긴급호송 되기도 했다.

폭력경찰보다 우리를 더욱더 분노하게 만든 것은 그 집회를 이끈 지도부의 행동이었다. 선봉대를 포함한 노동자, 학생 동지들은 집회 장소를 뜨지 않고 경찰과 끈질긴 도청 진격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지도부는 집회 대오를 행진으로 돌려 버렸다. 경찰은 그 틈을 타 폭력적 태도로 돌변해 우리에게 돌진했다. 싸움은 불리해졌다. 부상자가 속출되는 상황에서 진격 투쟁은 무리였다. 결국 행진 대오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도청 진격 투쟁 후 기아자동차 선봉대는 끝까지 집회 대오를 사수하기 위해 행진대오 맨 끝 먼 곳에서 대오 앞까지 구보로 이동하는 투쟁의 열의를 보였다. 행진은 경찰과 별 마찰 없이 끝이 났고, 27일 평택에서 다시 모이자는 결의로 마무리 집회도 경찰의 침탈 없이 예정대로 끝이 났다.

그러나 경찰의 폭력 행위는 6월 25일 도청 앞에서 끝나지 않았다. 7월 3일 03임투 승리를 위한 힘찬 출정식을 갖던 날(기아자동차노동조합), 6월 25일 경제자유구역법 집회와 관련해 3명의 선봉대 동지들에게 소환장이 날아왔다. 이들은 화성공장에서 활발한 선봉대 활동을 하고 있는 조립 3부 선봉대 동지이다. 그 뒤 또다시 6명의 동지들에게 소환장이 날아왔다. 그러나 우리의 선봉대 동지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즉각 선봉대 B조 전체가 탄압에 맞서 투쟁으로 정면돌파하자며 다시금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 곧바로 선봉대 대원들은 스스로 조퇴를 하자고 했으며, 현장 순회를 통해 현재의 긴박한 상황을 조합원 동지들에게 알리는 실천 투쟁을 전개했다. 조합원 동지들은 선봉대 동지들에게 박수로써 우리의 정당한 행동에 지지를 보냈다. 7월 7일 선봉대의 요구로 조립 3부 전체 공청회가 진행됐고, 대의원·선봉대·조합원이 하나되는 시간을 가지며 점심 시간에 인력 관리 항의 집회를 하자는 투쟁 결의를 모아냈다.

동지들의 분노는 대단했다. 점심 시간인데도 4백명이 넘는 조합원 동지들이 모였다. 이 날 인력 관리 항의 집회는 노동조합이 반대했던 집회였다. 하지만 선봉대 운영위는 집회를 강행했다. 노조집행부가 아닌 선봉대가 직접 집회 대오를 조직했다.

이번 경찰 탄압은 경기도 내에서 제일 큰 영향력을 자기고 있는 대단위 사업장 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만도기계 등의 노동자들을 단속하지 않고서는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을 강행하기엔 무리수라고 생각해, 이들 대공장 노동자들의 발목을 묶어두려는 수작이다. 그리고 이에 편승한 사측은 현장내 활동가들을 위축시켜 조합원들의 원천적 힘을 격하시켜 임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작태이다. .

그러나 놀랍게도 선봉대 동지들과 조합원들이 위축되기는커녕 정면돌파를 외치며 더욱 강도 높은 투쟁을 조직하라고 노동조합에 요구하고 있다. 7월 9일도 선봉대는 이윤에 타격을 주기 위해 조합원들의 자발적 잔업 거부를 조직했고, 조립 3부는 17:30분 이후로 약 2시간 동안 라인을 중단하는 투쟁에 돌입했다.

이우상(기아자동차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