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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학회 낙태 토론회:
낙태 금지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4월 3일에 한국여성학회가 주최한 ‘낙태 불법화와 여성’ 토론회가 열렸다. 대중적으로 홍보되지 않은 ‘학술’ 포럼이었지만,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많이 참가했다.

그동안 낙태 문제를 공공연하게 언급하는 여성학자들이 많지 않았는데, 이날 토론회는 여성학자들이 낙태를 토론쟁점으로 올려 놓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서울대학교 양현아 교수와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윤상 소장이 발제자로 나섰다.

두 발제자는 모두 낙태하는 여성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논리를 반박했고, 낙태반대론자들이 생명존중론자를 자처하는 것이 허구라고 주장했다. 낙태 규제법이 여성의 신체 통제권을 빼앗아 간다는 점, 낙태를 금지해도 어떠한 이유에서든 원치 않은 임신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 여성이 마음 놓고 출산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하지 않고 낙태를 금지하는 정부의 문제점 등도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이윤상 소장도 강조했듯이, 이런 주장들이 공론장에서 낙태 금지론자들과 맞서 싸우는 논리가 될 수 있도록 여성학자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낙태 선택권을 내세우는 것이 효과적이지 못한가

한편, 이날 토론에서는 낙태 선택권에 관한 논쟁이 불거졌다.

양현아 교수를 비롯해 토론자로 나선 여성학자들(배은경·이나영·하정옥 교수)은 대체로 “생명권과 선택권의 대립이 허구적”이므로 이런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그동안 ‘낙태권 옹호’를 선명하게 부각하는 데 주저해 온 대부분의 여성단체들이 내세운 논리이기도 했다.

물론, ‘낙태 반대=생명 존중, 낙태=살인’ 이라는 식의 논리는 허구적이다. 이윤상 소장의 말처럼 “낙태를 반대하는 것이 곧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등식을 무너뜨리지 않는 한 낙태에 관한 효과적인 토론을 진행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생명권 대 선택권’ 논리가 허구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생명권 논리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고, 선택권을 적극 주장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왔다는 것이다. ‘임신·출산 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에서도 낙태 선택권을 분명한 요구사항으로 정하지 못하고 있다.

양현아 교수는 ‘생명권 대 선택권’ 구도에서 선택권 옹호 진영은 “처음부터 지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일각에선 ‘질 싸움에는 끼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실용주의적 태도도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생명권론자들이 낙태를 공격하고 있는데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구도라고 해서 이 구도를 ‘넘어설’ 수는 없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회피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의 낙태권을 옹호하는 진영은 태아가 인간이나 다름없고, 여성의 삶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주장을 낱낱이 반박해야 한다.

생명권 논리가 언제나 선택권에 비해 득세할 것이라는 주장도 옳지 않다. 논쟁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 대응한다면 낙태 선택권은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공식 통계로만 여성들이 한 해 34만 건 낙태를 한다. 2003년 이인영 교수의 조사 결과를 보면, ‘원하지 않은 임신의 경우 낙태’에 대한 찬성이 77퍼센트나 된다. 이 여성들에게 ‘아이가 생기면 무조건 낳으라’고 강변하는 것이 훨씬 더 비현실적인 것이다.

그러나 여성운동이 낙태 선택권을 분명히 옹호하는 운동을 건설하지 않는다면 이 여성들의 목소리는 위축되고 드러날 수 없을 것이다.

이윤상 소장은 옳게도 (낙태 금지론자들이 생명 옹호를 자처하는 바람에 구도가 왜곡되긴 했지만) “낙태할 수 있는 권리는 결정권으로서 이해되고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청중 토론에서 “낙태 문제는 논쟁해서 득 될 게 없다”면서 “절대 가지 말아야 할 사례가 미국”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히려 초기 미국 낙태권 운동이 낙태 반대론자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의 삶을 지킬 수 있었다.

양현아 교수는 선택권으로 표현되지 않는 영역이 있기 때문에 선택권 옹호 주장에 함정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양 교수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회적 조건, 미혼모에게 가해지는 낙인 때문에 여성이 낙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강요받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낙태 강요가 아니라 낙태 금지다. 양육하기 힘든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이것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을 때 여성의 낙태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흐리는 논거가 돼선 안 된다.

한편, 배은경·이나영·하정옥 교수 등은 낙태 ‘권리’라는 용어를 문제 삼았다. ‘권리’ 보장 요구는 “자유주의적 한계가 있”고, ‘권리를 요구하면 의무와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출산을 통제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보다 낙태할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 여성에게는 명백한 진전이다. 이것이 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해 온 사회주의자들이 여성의 낙태권을 위해 앞장서서 비타협적으로 투쟁해 온 까닭이다.

다함께 회원은 청중 토론에서 낙태 선택권을 분명히 옹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계적 합법화가 대안인가?

이 토론회에서는 합법화의 수준도 토론됐다.

양현아 교수는 “임신 12주 이내의 낙태에 대해서는 임부의 의사를 존중하고, 자격 있는 의사의 의료상담과 시술에 의한다면 낙태를 합법화해야 한다. 24주 이내에는 법이 정한 사유에 의해 의사와 국가의 개입 속에서 낙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함께 회원이 플로어에서 “(전면) 합법화”를 주장하자 배은경 교수는 “합법화를 말할 계제가 아니”고, 기간과 사유를 적절히 정하는 방식이 좋겠다고 주장했다. 정춘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위원장도 임신 12주~14주, 24주를 나눠 사실상 단계적 합법화를 주장한 바 있다.

이런 부분적 합법화는 현 상황보다는 훨씬 나은 대안이지만 여성들의 낙태권을 온전히 옹호하기에는 부족하다.

여성이 요청하면 어떤 법적 제한 없이 낙태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의 출산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여성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이므로 의사도, 국가도 아닌 여성 자신이 오롯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24주 이후의 후기 낙태 경우에도, 낙태가 여성의 신체에 미치는 위험을 의사가 가감 없이 설명해 주되 최종 선택은 여성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