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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통신업계 최초의 장기 파업

데이콤 노동자들은 지난 11월 8일부터 파업을 벌이고 있다. 데이콤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단체협약을 개악하려는 LG 그룹에 맞서 파업을 벌여 왔다.

LG는 지난해 5월에 데이콤을 인수했다. LG 그룹은 데이콤과 다른 자사 통신 회사를 묶어 정보통신 전문 기업으로 발돋움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부당내부거래라는 의혹을 사면서까지 데이콤 자금을 끌어다 부실덩어리인 채널 아이에 지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동안 계열사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 왔던 LG로서는 데이콤 노동조합이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LG는 데이콤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현행 단협안에는 "구조조정시 조합원 신분 변동에 대해 노사 합의, 인사제도 제정·개정시 노사 합의"라는 조항이 있다. 회사측은 이 '합의'를 '협의'로 바꿀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회사가 요구하는 단협 개악안이 통과되면 회사측은 곧이어 해고, 연봉제 도입 등을 시도할 것이다.

데이콤 노동자들은 LG 그룹에 대해 커다란 반감을 갖고 있다.

"LG는 미성년자들이 가장 많은 자산을 갖고 있는 회사입니다. 이제 20살 갓 넘은 구본무의 딸이 2백80억 원의 자산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그룹이 이 땅에 존재할 가치가 있습니까?"

LG로 인수된 뒤 데이콤의 수익률은 되레 크게 하락했다. 1998년에는 1백55억, 1999년에는 1백69억 원의 당기 순이익을 기록했던 데이콤은 올해에는 2백여 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이 적자 규모는 1982년 데이콤 창사 이래 최대 규모다.

사정이 이런데도 LG는 무리하게 부실기업 지원을 데이콤에 요구했다. 데이콤은 LG가 채널아이 인수를 위해 설립한 DMI사에 6백억 원이나 투자했다. 이것은 데이콤의 재무구조를 더욱 악화시켰다.

노동자들은 노조에 대한 LG의 강경 정책에도 크게 반감을 갖고 있다.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LG가 지속적으로 노동조합들을 공격한 나머지 대부분의 회사들이 단협이나 후생 복지가 엉망이다. 데이콤은 LG 계열사 중에서 단협과 후생 복지가 가장 잘 돼 있는 편이다. LG는 이를 다른 회사 수준으로 후퇴시키려 한다."

회사측이 협상에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자 노동조합은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은 조합원들의 엄청나게 높은 참여 열기로 가득 메워졌다. 파업 첫 날부터 지금까지 참여율이 95%에 달하고 있다(아쉽게도 노동조합 지도부는 핵심 전산 요원 60명 가량을 파업에 참여시키지 않았다). 현장 노동자들의 투지에 힘입어 이승원 위원장도 "회사측이 단협안을 철회할 때까지 파업을 계속하자"며 높은 결의를 밝히고 있다.

회사측은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해 보복을 가하기 시작했다. 사측은 12월 1일 이승원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 16명을 고소·고발하고 통신업계 최초로 직장 폐쇄 조치를 내렸다. 게다가 11월부터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하는 바람에 조합원들은 월급도 못 받고 있다. LG는 "프로 선수 홍현우, 조성원 등을 스카우트하는 데에는 20∼30억 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에게는 악착같이 돈을 아끼려 한다(30억이면 데이콤 노조원들이 1백50만 원씩 받아가고도 남는 돈이다).

노동자들은 직장 폐쇄와 무노동 무임금에도 굴하지 않고 높은 자신감을 유지하고 있다. 통신 업계에서 30일 넘게 파업한 것도 처음이다.

한 노동자들은 직장 폐쇄 이후의 분위기를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배수진 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 전에는 직장 폐쇄까지는 안 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측이 악수를 둔 것 같아요. 직장 폐쇄 이후 오히려 더 결속력이 강화됐습니다. 사회 복지 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은 나라에서 잘릴 수 있다는 게 더 위기 의식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통해 크게 각성됐다. 데이콤 노동조합 홈페이지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글이 올라온다. 거기에는 파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에게 하는 격려의 글,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다음에는 같이 조합 활동 하자'고 말하는 글 등 서로를 격려하는 아름다운 글들이 있다.

12월 15일은 파업 38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날은 LG가 IMT-2000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한 날이었다. LG 그룹에 커다란 반감을 갖고 있는 데이콤 노동자들은 그 소식을 듣고 엄청난 환호성을 질렀다. 집회 사회자는 이렇게 말했다. "LG가 IMT-2000에서 떨어진 것은 LG가 정보 통신 분야를 책임질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PCS에서도 LG는 꼴찌입니다. LG는 기가 팍 죽었을 것입니다."

데이콤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움직임도 활력을 띠고 있다. LG노협에서는 12월 18일 〈한겨레〉에 데이콤 파업을 지지하는 하단 통광고를 내겠다고 발표했다.

데이콤의 자회사격인 DST 노동조합은 데이콤 노조의 파업을 지지했다. 한 DST 노동자는 이렇게 연대를 표했다. "파업에 함께 하지 못해 너무나도 안타깝다. 그러나 우리가 여러분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 여러분들의 파업 첫 날부터 우리는 모두 '데이콤 파업을 지지한다'는 팻말을 자기 책상에 붙여놓고 근무중이다. 그리고 매일 조합원들에게 여러분의 파업 소식을 보고하고 있다." DST 지부 조합원들은 12월 월급의 15%를 파업 기금으로 모아 전달하겠다고 결의하기까지 했다.

또다른 데이콤의 자회사인 KIDC(한국인터넷데이터센터)에도 14일 새로 노동조합이 설립돼 데이콤 노조에 가입했다. KIDC지부는 창립 발기문에서 "생존권 수호를 위한 데이콤 노조원들의 행동에 대해 직장폐쇄라는 데이콤 역사상 초유의 만행으로 대응하는 무책임한 행동"를 규탄하면서 "범데이콤 연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데이콤 노동자들은 이러한 연대에 사기가 고무돼 있다. 15일에 열렸던 임시 대의원 대회에서 대의원들은 파업을 계속할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