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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뀔까 묻는 사람들에게 ②:
국익은 도대체 누구의 이익인가?

다섯 호에 걸쳐 실릴 이 연재는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흔한 물음에 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박건희 기자가 국익 개념의 신화를 들춰낸다.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이 말하는 국익은 대다수 노동자·민중의 이익이 아니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 하나가 ‘국익’이다. 천안함 사고의 증거들을 은폐하는 것도, 아프가니스탄에 재파병하는 것도, 심지어 김연아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도 모두 국익이라는 논리로 설명한다.

정부와 언론은 국익이 바로 국민 전체의 이익이기 때문에, 딴소리 하지 말고 정부를 따르라고 한다. 하지만 정부가 이토록 국익을 위해 애쓰는데, 왜 평범한 사람들은 이익을 얻지 못하고 삶이 더욱 힘들어지는 것일까? 도대체 국익이란 무엇일까?

지난 몇 해 동안 한국은 ‘국익’을 위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했다. 파병을 통해 ‘국위를 선양’하고, 중동의 석유 자원 등 실리도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파병한 결과는 무엇인가? ‘국위 선양’은커녕 한국은 미국의 명분 없는 전쟁에 동참한 전범국으로 전락했다. 이라크에서 일하던 한국인 노동자와 김선일 씨가 비극적으로 죽었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윤장호 하사가 목숨을 잃었고 한국인 23명이 납치돼 두 명이 살해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이 제국주의 전쟁에 동참해서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어떠한 ‘실리’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복지와 교육에 써야 할 돈이 파병과 전쟁 지원에 쓰였고, 한국인은 중동 지역에서 테러의 표적이 됐다.

한미FTA를 추진할 때도 지배자들은 국익 타령을 했다. 무역 자유화를 통해 수출을 늘리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면 자연히 국민들의 삶도 나아진다는 것이 지배자들 설명이다.

하지만 한미FTA 조항을 따르면 의약품 값이 오르고, 노동자의 권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각종 공공 서비스는 사라지고, 환경 파괴는 가속화할 것이다.

한미FTA로 수출이 늘고 경제가 성장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나아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 파병과 한미FTA로 얻은 국익은 누구에게 가는가?

기업주들은 각종 규제 철폐, 노동자 권리 축소, 공공 서비스 파괴 등 한미FTA를 통해 더 많은 이윤을 기대한다.

한국 정부는 이런 기업주들의 뒤를 봐주며 국제적 경쟁에서 유리하도록 돕는다. 그래서 정부는 파병을 통한 군사력 과시로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서 더 우위를 점해 한국 기업들의 시장 개척과 원료 확보, 이윤 창출에 도움을 주려 한다.

계급 분단

그렇다면 왜 국가의 이익은 다수 국민의 이익이 될 수 없는가?

그것은 사회가 “적대적인 두 진영” 즉, 다수의 노동자계급·피억압 민중과 그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소수의 지배계급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느 한 쪽의 이익은 반대 쪽에 손해가 된다.

그래서 노동자의 이익은 기업주의 손해고, 기업주의 이익은 노동자의 손해다. 얼마 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을 얻어 숨진 박지연 씨와 그를 착취한 이건희의 이해관계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것이다. 사상 최대 수익으로 돈 잔치를 벌인 정몽구와 그에게 해고당한 현대차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는 이런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착취할 수 있게 도와 준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때면 경찰력 투입, 구속·수배 같은 방식으로 탄압한다.

결국 이른바 ‘국익’의 실체는 바로 소수의 기업주들을 비롯한 이 사회 지배계급의 이익이지 결코 다수 노동자·민중의 이익이 아니다.

국익론은 이런 현실을 은폐하기 위한 고약한 논리다. 마치 계급 분단이 존재하지 않는 양, 자본가와 노동자의 공통 이익이 있는 양 속이는 것이다. 지배계급은 국익이란 거짓말로 노동자 대량해고, 파병 같은 온갖 악행을 밀어붙인다.

촛불시위나 노동자 파업 같은 대규모 저항이 벌어지면, ‘사회 갈등이 너무 심해 국가 발전에 저해된다’며 ‘국민 화합’이 필요하다고 난리다.

지배계급이 이런 가증스런 논리를 쓰는 것은 경찰, 군대 같은 물리력만으로 노동자 계급을 지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익론은 노동자들이 국가에 소속감을 느끼게 하고, 그들을 착취하는 자본가들과 ‘운명 공동체’라는 착각을 하게 해 지배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국익론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더욱 기승을 부린다. IMF 당시에도 정부는 ‘국난 극복’을 해야 한다며 노동자 투쟁을 비난하고, 금 모으기에 나섰다. 온 나라를 태극기로 도배하고 애국심 좀 가지라고 했다.

IMF 이후 한국 자본주의는 극심한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노동자들은 대량해고로 직장을 잃고 빈곤층은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반대로, 부자들은 더욱 부유해져 빈부격차는 사상 최대로 벌어졌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 위기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며 노동자들을 쥐어짜 부자들만 배 불리고 있다.

계급적 관점

국익을 들먹이는 정부의 공격 시도에 제대로 맞서려면 국익이라는 이데올로기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 전체 국민의 공통된 이익이 있다는 관점을 일부라도 수용한다면 지배자들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파병을 통해 해외 자원을 많이 얻으면 이는 국익인가? 한미FTA를 통해 한국 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한다면 진보진영은 이를 환영해야 하는가?

경제 위기 상황에서 국익은 우선 경제를 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히 노동자는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

국익 논리를 수용하면 지배계급의 고통 전가에 일관되게 맞서기 어렵게 되고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혼란만 가져다 줄 뿐이다.

세계의 분단선이 가로로 그어져 있다는 간단한 사실 때문에, 국익론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관점이 필요하다. 계급적 관점으로 세상을 볼 때만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답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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