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위기의 성격을 북한과 미국간만의 또는 한반도와 미국간만의 문제로 협소하게 봐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미국의 세계 전략의 일환이고, 부시가 영구적이라고 말한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테러리스트들과의 전쟁을 뜻하는 게 아니다. 부시 정권 내 신보수주의자들의 전략적 사고는 9·11과 관계 없이 그 보다 훨씬 전에 만들어졌 다.

심지어 그것은 1990년대 초 냉전이 종식될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소련에 대한 미국의 승리와 함께 미국이 새로운 종류의 위험으로 진입하게 됐다고 여겼다. 그들은 승리의 샴페인을 터뜨렸지만 동시에 일본·독일·중국·러시아 등 경쟁 강대국들의 부상에 대해 걱정해야 했다.

미국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신화와는 달리 냉전 해체 이후 세계 자본주의는 강대국간의 경쟁이라는 다극 체제로 나아가고 있다.

부시의 보좌관들은 미국의 경제적 지위가 매우 허약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막강한 군사력을 사용하려 한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우리의 군사력은, 미국의 패권을 제압하거나 동등해지려는 희망을 갖고 군비를 증강하는 잠재적 대국들을 저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하다.”

미국은 김정일이나 후세인 같은 지역의 골목대장이 제기하는 위험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군사력을 사용함으로써 미국의 지위를 경쟁 강대국들에게 재확인시키기 위해 후세인과 김정일 등을 악마로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한반도의 위기는 이처럼 냉전 해체 이후 한층 불안정해진 제국주의 세계 질서에서 비롯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한반도 위기가 단지 남북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맞서는 세계 노동자·민중의 이해관계와도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의 반전·반자본주의 운동은 이라크 전쟁이 이라크인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이해하고 있었다. 만약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의 다음 희생자를 공격한다면 그 대상이 (시리아나 이란 또는 이보다 가능성이 낮지만 북한) 어느 나라가 됐든 세계 반전 운동은 그것을 그 나라만의 문제로 취급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반전 운동도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 반전 운동의 일부로서 부시가 세계 어디에서 전쟁을 벌이든 그것에 반대해야 한다. 한반도만 괴롭히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협소한 관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실제로, 국내 여러 좌파들은 이라크 전쟁 직전까지도 한반도 위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에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런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민족 공조냐 국제 연대냐

제국주의는 미국 한 나라를 뜻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 체제를 뜻하는 말이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제국주의를 미국과 등치시키고 반제 투쟁을 민족 자주 투쟁으로 등치시키는 관점이 좌파 내에 널리 유포돼 있다.

이런 관점은 “자주가 세계 보편적 진리로, 시대적 기치로 되고 있다”며 세계 반전 운동을 “국가와 민족의 자주권에 대한 요구와 옹호”라고 규정한다.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에서 가장 강력한 운동을 건설했던 세력은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등 유럽 나라들의 노동자·민중이었다. 심지어 미국 본토에서도 1968년 이래 최대 규모의 대중 운동이 벌어졌다. 이것은 미국으로부터의 자주를 요구하는 운동이 아니었다.

강대국에서 벌어진 강력한 반전 운동은 선진국 노동자·민중이 자국 지배계급에 맞서 제3세계를 포함한 다른 나라 노동자·민중과 연대하고 있음을 보여 줬다. 선진국 민중이 제3세계 민중의 착취로부터 이득을 본다는 제3세계 민족주의의 낡은 관념은 국제 연대 앞에서 한층 무기력해지고 있다. 한편 국제 연대는 선진국 지배자들과 민중을 묶어 주는 인종 차별주의도 침식시키고 있다.

요컨대 세계 반전 운동은 자본주의가 낳는 온갖 악에 맞서려는 세계 노동자·민중의 연대라는 점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은 남한 같은 신흥공업국과 제3세계의 활동가들에게 특별히 중요하다. 왜냐면 반제 투쟁을 자주의 문제로만 본다면, 이 투쟁을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사회의 근본 변혁을 이루는 문제와 연결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좌파 민족주의는 강력한 반제 투쟁을 일으킬 수 있고 ‘민족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는 정권에 맞선 투쟁도 고취시킬 수 있다. 하지만 착취자와 피착취자를 묶는 공통의 민족적 이해가 있다는 신념 은 이를 이용하려고 달려드는 정치인들 앞에 무방비 상태에 놓이곤 한다.

사장들과 정부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유화 정책 등을 도입한 뒤 강대국과 다국적기업의 핑계를 댐으로써 공격의 화살을 피하려 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대중 운동의 지도자들이 “이 모든 것은 미국의 음모”라고 말해 주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제국주의는 우리의 적이다. 동시에 착취와 억압의 직접적 주체는 대개 현지 지배계급이고 민족 국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강대국들과 협력하고 세계 체제가 강요하는 끔찍한 희생을 현지 국민에게 지운다. 제국주의 동맹국의 이익뿐 아니라 현지 지배계급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좌파 민족주의는 개량주의적 해결책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국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그들은 무역 관계 같은 경제 문제든 정치·외교적 문제든 국가간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국가간 불평등 관계가 개선되면 착취·억압당하는 노동계급 삶의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반대로 향하지 못하게 만든다.

국내적 측면에서 보자면, 현존하는 자본주의 국가는 그대로 둔 채 더 민족주의적인 정책이 채택되기를 바란다. 좌파 민족주의는 현재의 국가가 북한과 민족 공조를 이뤄야 하며, 남북한 화해와 통일의 주체 세력이 돼야 한다고 요구한다(가령, 6·15 이행 촉구).

제국주의와 평화 공존?

개량주의적 해결책은 한반도 위기 해결이 제국주의와의 평화 공존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보는 데서도 드러난다.

좌파 민족주의는 현재의 위기가 북미간 협상을 통해 “평등과 호혜의 원칙에 기초한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해소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국주의 세력과의 평화 공존은 몽상이다. 왜냐면 위계적 질서로 짜여진 국제 자본주의 체제가 존속하는 한 국제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된 국가들의 참된 민족 자주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뒤에 좌파 민족주의 진영 일부가 ‘북미 관계가 정상화됐는데 반미를 계속 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혼란을 겪었던 것은 반제 투쟁을 자주권 획득으로 보는 협소한 관점에서 비롯한 문제였다.

이런 관점에서 나타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미국의 대북 적대에 반대하는 운동을 북한 외교의 응원 부대쯤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좌파 민족주의 일각에서는 북미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북한의 핵 억지력이고 이를 통해 미국을 협상의 장으로 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민족주의 좌파는 북미간 또는 남북간 불가침/평화 협정을 맺으라고 요구하는 운동을 폈는데, 협상이 진행되면 그것을 지지하며 지켜보고 협상이 깨지면 다시 협상을 촉구하는 방식을 거듭했다.

하지만 어떠한 협정도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 2000년 북미 공동성명이 발표됐을 때 민족주의 좌파는 북한이 “전쟁 없는 승리”를 거뒀다고 기뻐했지만, 화해의 기운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지난 10년 동안 맺어진 적지 않은 북미간 협정들이 모두 효과가 없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전쟁의 원인 자체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세계 어느 곳에서건 야만적인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반제 투쟁을 근본적 사회 변혁과 연결시켜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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