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차밤바 세계민중회의에 직접 참가해 한국에서 유일하게 그 회의를 현장보도한 본지 장호종 기자가 회의의 생생한 분위기와 기후정의 운동의 과제를 말한다.


지난 4월 20~22일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기후변화와 대지의 권리에 대한 세계민중회의’(이하 세계민중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지난해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기후회의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자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더는 선진국들에 이 문제를 맡겨 둘 수 없다’며 전 세계 시민·사회단체들과 정부들에 대안 회의를 열자고 호소했다.

ⓒ사진 최미선

불과 넉 달 만에 1백여 개 나라의 환경단체, 노동조합, 좌파 정당, 농민단체 등 다양한 세력들이 이 호소에 지지를 보냈다.

공식 등록자만 2만 명을 넘었고 폐막식이 열린 코차밤바 축구 경기장에는 1백여 나라에서 온 참가자들과 그 갑절이 넘는 볼리비아 노동자·청년·원주민 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연설에서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차베스가 ‘혁명’, ‘사회주의’ 같은 단어를 외칠 때마다 라틴아메리카 청년 수만 명이 우레 같은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세계민중회의에서 토론을 통해 민주적으로 결정한 사항들이 ‘코차밤바 합의’라는 제목으로 발표됐다. 이 문서는 매우 급진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제시, 시장 대안 반대, 심지어 자본주의를 끝장내야 한다는 선언까지.

세계민중회의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바로 이런 기후정의 운동의 급진화였다.

넉 달 전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기후회의의 실패를 보며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은 좌절감을 느꼈다. 그러나 같은 날 코펜하겐 시내를 휩쓴 거대한 시위를 보며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희망을 발견했다. 코차밤바 세계민중회의는 그 운동이 더 큰 규모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줬다.

코펜하겐 시위에 참가한 많은 이들이 코차밤바에도 있었다.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만 아니었어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회의에 참가했을 것이다.

코펜하겐 시위에서 큰 인기를 끈 구호 — “기후가 아니라 체제를 바꾸자” — 에 거의 모든 참가자들이 지지를 보냈다. 코차밤바 합의문에도 자본주의가 문제고 이를 극복해야 기후변화를 멈출 수 있다는 지적이 담겨 있다.

“기후가 아니라 체제를 바꾸자”

이제 더는 선진국 정부에 기대할 것이 없다면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성장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가 모든 토론의 핵심 의제였다.

이것이 세계민중회의의 둘째 의의다. 기후변화 운동 내 일부가 기존 환경운동의 로비(막후 교섭) 중심 활동에서 벗어나 대중 운동과 대중 동원을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사진 최미선

기후정의네트워크나 기후정의행동 같은 새로운 연합체들이 코차밤바 세계민중회의를 성사시키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 연합체들이 올해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이들은 3년 전 발리에서 열린 유엔기후회의를 기점으로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연합체의 회원 단체들 — 비아캄페시나, 남반구초점, 지구의벗 인터내셔널 등 — 은 전에 기후행동네트워크라는 환경운동 단체들의 연합체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린피스, 세계자연보호기금(WWF) 같은 국제 환경단체들이 사회운동과 동맹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게토화’됐다고 비판했다. 기후변화의 피해를 겪는 당사자들인 가난한 남반구 나라의 농민, 노동자의 정당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운동이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 매우 분명했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가 기후변화를 멈추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이 때문에 기층의 불만이 폭증하는 상황에서 환경단체들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로비 중심의 기존 활동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대중의 광범한 불만을 행동으로 조직해 그 힘으로 정부들을 움직이게 할 것인가.

기후정의네트워크 등은 후자를 “선택”했고 그 결과 유엔기후회의의 실패에 따른 사기저하와 비관주의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이제 이들은 칸쿤에서 벌어질 다음 전투를 준비하고 있고 세계 곳곳에서 이 행동에 동참할 동맹자들을 규합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에 수많은 동맹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코차밤바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민중회의의 셋째 특징은 그동안 국제 정치에서는 물론이고 환경운동이나 기후변화 운동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운동의 주역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참가한 가난한 나라의 농민, 노동자, 원주민 들은 회의 기간 내내 활발하게 주장을 펼쳤을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주장에도 매우 정치적으로 반응했다.

‘라틴아메리카도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해야 한다’는 유엔대표부의 발언은 보고 있기 딱할 정도로 야유를 받았고, 선진국의 무책임과 무능에 맞서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은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이들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제국주의 국가들의 수탈에 시달렸고, 최근 수십 년 동안은 IMF와 세계은행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시달렸다.

그래서 이들은 시장을 활용하겠다는 선진국 정부들과 기업들의 정책이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기후정의 운동은 반신자유주의·반자본주의 운동과 결합되고 있었다.

원주민들은 모랄레스 정부에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면서도 그 정부가 국내에서 추진하는 각종 개발 계획이 환경을 파괴하고 가난한 이들의 삶을 파괴할 것이라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코차밤바는 10년 전 물 사유화 저지 투쟁이 다국적 기업에 맞서 승리를 거둔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강력한 대중 운동을 발판 삼아 볼리비아 역사상 최초로 원주민 출신의 에보 모랄레스가 대통령으로 당선한 것이다.

에보 모랄레스는 이런 정서를 아주 잘 대변했다. “여러분, 죽음을 향한 자본주의를 따라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기후정의 운동은 코차밤바 회의에서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물론 기후변화를 멈추기 위해 이 운동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그러나 개막식에서 인도의 기후정의 활동가 말한 것처럼 “볼리비아 세계민중회의가 새로운 에너지를 전 세계로 확산시킬 것이다.”

기후정의 운동의 과제

기후변화에 맞서는 운동은 한 걸음 전진과 동시에 새로운 — 그러나 익숙한 —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

코펜하겐에서 등장해 코차밤바 회의까지 기후정의 운동의 성장을 이끈 핵심 세력은 급진 NGO들과 자율주의자들이다. 남반구초점 등이 주도하는 기후정의네트워크와 영국의 기후캠프 활동가들이 주도하는 기후정의행동이 각각을 대표한다.

이들은 기후정의 운동을 반자본주의 운동의 새로운 초점으로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 이들이 운동에 기여한 바는 분명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들은 10년 전 반자본주의 운동이 맞닥뜨린 정치적 문제들에 여전히 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하나는 전략 문제다. 코펜하겐 회의는 전 세계 주요 정부들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고 더는 기대할 수 없음을 보여 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래된 관성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대안 부재 때문에 이런 전환이 쉽지 않은 듯하다. 기후가 아니라 ‘체제를 바꾸자’고 했지만 어떻게 바꿀 것인가, 또 어떤 체제가 필요한가.

물론 사회주의 사회가 올 때까지는 그 어떤 변화도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 대다수가 아직 사회의 근본적 변혁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이런 주장은 기후변화를 멈출 수 없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자본주의가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을 바꿔야 한다.

세계 지배자들의 화석연료 의존을 중단시키려면 거대한 운동을 통해 압력이 가해져야 한다. 그러러면 운동 내에서 대안과 전략을 둘러싼 토론이 진지하게 벌어져야 한다. 또 민주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반자본주의 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방향을 잃은 운동은 다시 온건 개혁주의 정치 — 환경운동에서는 로비 중심의 활동들 — 에 그 자리를 내줄 수 있다.

이 문제와 연결된 다른 문제는 변화를 이룰 수단 문제다.

여전히 많은 기후 활동가들은 조직된 노동계급을 운동에 참여시키는 것이 왜, 얼마나 중요한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래서 대중 운동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직된 노동자들이야말로 자본주의 체제에 가장 효과적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세력이다. 자본주의의 근본인 이윤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각국 지배자들과 기업주들에 맞서 자신들의 삶을 지키는 투쟁이 지구와 인류 전체를 구하는 투쟁과 연결된다면 기후정의 운동은 강력한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려면 세계 곳곳에서 ‘기후일자리’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기후변화와 노동계급

라틴아메리카 민중이 전 세계적 기후정의 운동에 본격적으로 가담하면서 그동안 기후변화 해결책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구도에도 다소 변화가 생길 듯하다.

그동안 주요 환경단체들은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각국 정부의 이데올로기 공격에 사실상 순응해 왔다. 기후변화를 멈추려면 평범한 노동자들도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12월 12일 코펜하겐 기후정의 운동에는 독일 공공노조(Ver.di),프랑스 연대단결민주노조(SUD), 프랑스노총(CGT), 덴마크노총(LO), 벨기에 사회주의노동조합(ABVV) 등 많은 노동조합이 참가했다 ⓒ사진 제공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노동자들이 에너지 요금 인상이나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저항하는 것은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과 지구 전체의 미래를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라틴아메리카의 평범한 노동자와 농민, 원주민 들의 분노만 자아냈다. 그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이는 정당한 소망이고 그들의 삶을 개선시키면서 기후변화도 멈출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영국의 기후정의 활동가 조너선 닐의 지적처럼 “세계 지배자들이 지구를 은행이라고 생각했다면 진작에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해서 지구를 구했을 것이다.”

각국 지배자들이 경제위기의 책임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상황에서 ‘고통분담론’은 선진국 노동자들에게도 외면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후정의 운동은 전 세계 인류를 구하기 위한 운동의 핵심 동력을 잃게 될 것이다.

세계민중회의의 여러 토론에서 ‘책임이 대기업들과 선진국 정부들에 있고 우리가 그들에게 지원과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반대로 우리 자신이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 자리가 없었다.

기후정의 운동이 진정한 대중 운동으로 성장하려면 평범한 노동자들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노동조합과 녹색일자리’ 토론에 참가한 각국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정부의 대규모 투자를 통한 녹색일자리 만들기를 제안했다(각국 지배자들이 ‘녹색일자리’라는 말을 왜곡하고 있으므로 ‘기후일자리’라고 하는 게 좋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기후부채’ 토론에서 연사들은 선진국 정부들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이 핵심 과제지만 가난한 나라 민중의 피해를 완화해 줄 재정적 지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재원은 평범한 노동자들의 호주머니가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로 어마어마한 이윤을 벌어들인 기업들에서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