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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뀔까 묻는 사람들에게③:
인간 본성이 사회변화의 걸림돌인가?

다섯 호에 걸쳐 실리는 이 연재는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흔한 물음에 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정선영이 인간 본성은 불변적이라는 주장에 도전한다.

“인간 본성은 이기적이라 아무리 좋은 사회를 만들어도 타락하기 마련이야.”

이런 생각은 매일 경험으로 뒷받침된다. 이 사회에서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이 큰 부와 권력을 누린다. 8조 원이 넘는 재산을 가진 이건희가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죽어 가는 것을 은폐하듯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경쟁은 매일 겪는 현실이다. 입시·취업 경쟁에서 상처 입거나,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에 좌절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반대 사례들도 많다. 천안함 병사의 죽음을 보며 내 자식 일처럼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아이티 사람들을 도우려 성금을 보낸 사람들, 자신의 시간과 돈을 희생해 불우한 이웃을 돕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4·19, 5·18, 1987년 6월항쟁 등 한국 현대사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를 보면 더 많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얼마 전 방영된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 나오는 조에족은 사냥해 온 음식을 평등하게 나눠 먹고 경쟁도 싸움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10만 년이 넘는데 이 중 95퍼센트에 이르는 수렵·채취기에 인류는 조에족처럼 평등하게 살았다.

그러나 계급사회에 들어와서는 지배와 착취, 여성 억압, 끔찍한 전쟁이 계속됐다. 인간의 역사에서 본성이라 여겨 온 특징들은 바뀌어 왔다.

이 때문에 인간의 본성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인간을 다른 종들과 구분하는 특징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

예를 들어 꿀벌의 일은 고도로 분업돼 있다. 하지만 꿀벌의 작업은 수백만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창조적 노동을 통해 생산 방법을 변화시켜 왔다.

인간은 자유로운 손을 이용해 도구를 발전시켜 왔다. 의사소통을 위해 언어가 발달했다. 인간은 지능이 발달했기 때문에 생산 도구와 노동하는 방법 등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인간은 자연과 교류하며 집단적으로 노동하는 과정에서 자연과 인간 사회, 그 자신을 변화시켜 왔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는 ‘노동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여겼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역사·사회·문화를 창조했다.

이런 변화에 따라 인간의 관념·가족관계·문화도 바뀌었다. 고대인들에게 토지의 사적 소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원시 사회에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부를 개인적으로 세습하게 된 이후에는 여성의 정조가 중시됐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본성은 그 자체로 ‘선/악’을 가르거나 ‘이기적/이타적’ 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사회 필요에 따라 인간의 도덕관도 변해 온 것이다.

자본주의는 본성에 부합하는 체제인가?

자본주의는 인류의 기본적인 의식주를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부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잠재력은 좀체 발현되기 어렵다.

이 체제는 1백50억 명을 먹여 살릴 능력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의 절반은 굶주린다. 한국만 해도 누군가는 집을 1천83채나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고시원·쪽방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자본주의는 소수의 탐욕은 충족시키지만 다수의 기본적 필요는 억누른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단지 돈을 벌려고 육체와 영혼을 파는 고역으로 전락했다. 노동자들의 의사가 반영되지도 않고, 생산물도 소수에게 돌아가는 소외된 노동이 즐거울 리 없다.

노동이 소외된 현실에서 사람들의 인간성도 뒤틀린다. 가난하고 사기 저하된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억압을 보상받으려 종종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학대하고 괴롭힌다. 폭력성, 여성 억압, 인종차별 등은 자본주의가 낳는 오물이다.

그러나 소외를 극복하고 인간성을 우애롭게 발전시킬 가능성은 존재한다. 2008년 촛불 운동에서 다른 이들을 위해 물, 김밥을 나르며 자발성에 가득차 활력 있게 움직이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투쟁 속에서 의식이 발전하고 자신감을 얻은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에서 물든 온갖 편견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

나아가 자본주의를 변혁해서 노동자들이 민주적으로 계획하고 통제하는 사회가 도래하면 인간 본성을 협력적이고 풍부하게 발전시킬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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