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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 온 편지 - 네덜란드는 본받을 만한 나라인가?

네덜란드에서 온 편지 - 네덜란드는 본받을 만한 나라인가?

장광열(네덜란드 독자)

요즘 와서 네덜란드 모델을 본받자는 말이 많다. 노사가 한 발씩 양보해서, 노조는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사용자측도 노조를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면 파업 손실이 줄어 대외신인도가 올라간다. 그리 되면 해외 자본도 한국에 안심하고 투자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가 바로 그렇게 해서 유럽에서 가장 견실한 경제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다음과 같은 얘기는 하지 않는다. 네덜란드 노동자들은 보통 여름 한 달 동안 휴가를 얻고, 주 5일 근무제는 1960년대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대부분이 의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어서, 중병에 걸려도 수술비는 건강보험에서 나오고,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 되어 있으며, 대학 등록금은 한국의 4분의 1 수준밖에 안 되고 대학생들한테는 국가가 생활보조비까지 준다. 한국의 집 없는 서민들과는 달리 40퍼센트에 이르는 국민들이 영구임대주택에서 살고 있다.

네덜란드 노동자들이 정부의 임금억제 정책을 받아들인 것은 그나마 위와 같은 사회 복지 혜택이있었기 때문이다.

왜 노무현은 하필이면 네덜란드 모델을 들고 나온 것일까? 히딩크 신화로 함께 주가가 오른 네덜란드가 모델로 안성맞춤이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물류 중심지니 금융 중심지니 하는 얘기도 네덜란드와 잘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네덜란드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도 전국적인 노동조합으로 조직해 단체행동에 나서고, 교사들이나 공무원도 파업권을 얻고, 군대나 경찰조차 노조를 만들 수 있는 권리를 얻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그런 것을 허용할까?

집값 상승

네덜란드 모델에 대한 찬사는 사실 과장된 것이다. 네덜란드의 공식 실업률은 2003년 초 3.6퍼센트이지만 전체 인구 중 약 6∼7퍼센트에 이르는 1백만 명이 노동 부적격자로 분리되어 실업률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들까지 실업자로 친다면 실업률은 10퍼센트를 훨씬 넘는다.

네덜란드가 1990년대 다른 유럽 나라들보다 경제가 잘 돌아간 이유는 정작 집값 상승 때문이었다. 은행들은 안정된 직장만 있으면 몫돈 없어도 주택 구입자금을 융자해 주는데, 정부가 융자금에 세금을 면제해 줘서 주택을 사려는 수요가 급증하고 그 여파로 집값이 두 배로 뛰면서 주택 경기가 아주 좋았다. 그에 따라 자기 집을 가진 중산층은 앉아서 번 돈으로 소비에 나서 전반적으로 경기가 좋았다. 또한 미국처럼 정보통신사업과 제약회사를 중심으로 증시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러나 거품이 꺼지면서 네덜란드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성장률은 이제 0퍼센트에서 마이너스로 가고 있다. 세계화 붐을 타고 세계 곳곳으로 진출했던 네덜란드 통신(KPN), 슈퍼마켓 체인(Ahold)은 무리한 사업확장 때문에 빚더미에 올라 사업을 헐값에 매각하느라 바쁘고, 필립스 같은 다국적 기업들도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기업들은 대량 해고 계획을 잡고 있다.

정치 역시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9·11 이후 네덜란드에서 불었던 이슬람에 대한 불신과 공포에 더해서, 노동당이나 자유당이나 정책에 별 차이가 없어지고, 지난 해에는 핌 포르타운이라는 한 우익 논객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기존 정치권과 관료제에 찌든 정부를 속 시원하게 비판하면서, 이슬람과 외국인들의 문화를 후진적이라고 욕하면서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단번에 제2당 자리를 차지했다.

우파 정당들의 선전에 고무된 사장들은 이제 더는 노사화합을 위해 구차하게 노조에게 협상을 구걸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향후 2~3년간 임금을 동결하고,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에 들어갈 예산을 대폭 자르는 데 ‘대승적으로’ 무조건 합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네덜란드의 전철을 밟아야 하나? 아니면 네덜란드 노동자와 프랑스 노동자와 함께 어깨 걸고, 이윤 때문이라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는 공동의 적에 맞서 싸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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