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운동 안의 논쟁 - 몸에 좋은 약은 쓰다

전쟁반대평화실현공동실천은 해산해야 하는가?

 

부시의 전쟁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지금 미군에 맞선 이라크인들의 저항이 승리하기 바란다. 9월 27일 국제반전공동행동의 날은 이들의 열망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리고 이 운동을 건설하는 데 반전 공동행동기구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최근 9·27 집회 준비를 위해 소집된 전쟁반대평화실현공동실천(이하 공실) 실행위 회의(7월 11일)에서 참여연대측 간사는 “공실의 활동 중단”을 제안했다. 7월 24일에는 참여연대의 입장이 “공실 해체”로 정리됐다고 전달했다. 그 동안 공실 실행위 회의에 참가해 온 민주노총 대외협력국장과 환경운동연합 간사도 “공실 해체” 입장을 전달했다.

참여연대 간사는 “공실의 실행력 부족”을 해체의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해체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실행력 부족이 문제가 된다면 연대와 단결을 강화함으로써 실행력을 강화하자고 결론을 내리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진정 운동의 발전을 바란다면 말이다.

위의 단체들이 “실행력”을 문제 삼는 것은 의아스럽다. 이 단체들 가운데 일부는 반전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을 때 힘의 집중이 아니라 분산의 방식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실 해체”를 주장하는 단체들 가운데 일부는 3월 22일, 공실과 여중생범대위 주최의 이라크 전쟁 반전 집회가 미리 잡혀 있는 상황에서 다른 장소(시청)에서 반전 집회(‘틱낫한 방한기념 평화염원대회’)를 그것도 비슷한 시각에 열었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는 3월 22일 종묘에서 열릴 반전 집회를 준비하던 공실 활동가들이 두 집회를 통합해 치르는 문제에 대해 의논하려 하자 이를 거절했다.

적지 않은 활동가들은 “여느 공동전선 기구에 비해 공실이 특별히 실행력이 없었던 게 아니다.”고 말한다. “공실만큼 활동을 조직해 낸 기구도 그리 많지 않다”는 얘기다.

민중운동 단체 일각에서는 공실이 너무 느슨한 네트워크여서 반전연합기구로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공동전선은 제한된 구체적 쟁점을 놓고 이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이 뭉치는 것이다. 공동전선 자체가 강령은 다르지만 특정 쟁점에는 동의하는 사람들이 함께 행동하는 것이므로 “느슨할” 수밖에 없다. 타이트함을 강조하다 보면 되레 공동행동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한편, 사회진보연대는 최근 공실 존속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을 문서로 제출했다. 그 문서의 필자는 “공실의 반전운동이 결국 대중적 흐름을 만들어 내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하면서 “집회에 나서도록 대중을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참가단체 소속의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참여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공실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대중 운동을 건설하려 한 중요한 실험의 장이었다. 공실은 지난 2월 15일 수천 명 규모의 반전 집회를 성공적으로 조직했다.

그리고 공실은 적지 않은 지지를 모아냈다. 4만여 명의 반전 서명은 그 한 예이다.

문화방송 노동조합은 조합원 767명의 반전 서명을 조직해 공실에 보내 줬다. 경남 통영여고 1·2학년 학생회도 696명의 서명을 조직해 소포로 보내 줬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고등학생이 팩스로 30명 분의 서명 용지를 보내 주기도 했다.

지역의 노동조합 활동가와 학생,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역 반전 모임을 결성한 시도도 있었다. 서울 남동 반전 모임, 관악동작 반전 모임, 강원도 영동지역 반전 모임 등은 그 사례의 일부다.  

새롭게 공실에 가입한 단체들도 많았다. 환경정의시민연대, 녹색평화당, 전국공무원노조, 민족문화작가회의,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전쟁반대 사이버 촛불시위, 대전대덕연구단지 과학기술인 반전평화선언 등 여러 단체들이 새로 공실에 가입했다.

〈한겨레〉에 공실의 계좌 번호가 공개되자 바로 다음 날 “공동실천 파이팅”, “나도 반전” 등의 이름으로 많은 개인들이 지지금을 보내 왔다. 약 7백만 원의 지지금이 모아졌다. 공실은 단지 소수 활동가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여러 시민·사회 단체들이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 운동에 뒤늦게 참가하거나 참가한 뒤에도 열의가 크지 않았던 상황에 비춰보면, 이 성과들은 오히려 반전 운동의 잠재력을 보여 주는 것이다.

사회진보연대측 필자의 주장은 혼란스럽다. 그는 “집회에 나서도록 대중을 독려하지 못했다”고 했다가 “대중집회에 대중을 동원하는 방식의 실천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집회에 대중을 동원하는 방식의 실천”이 부족했던 게 되레 문제였다. 영국의 전쟁저지연합 홈페이지에는 주요 반전 집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는지에 관한 보고로 가득하다. 집회에 몇 명이 참가하느냐에 따라 지배자들을 압박하는 시위 효과가 달라짐은 불문가지다.

사회진보연대측 필자는 “집회에 대중을 동원하는 방식의 실천”을 비교적 하찮은 활동으로 취급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반전 집회에 대중을 동원하기 위한 실천이야말로 어려운 과제다. 공실 가입 단체인 다함께의 회원들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부터 꾸준히 반전 운동을 건설해 왔다. 이라크 전쟁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부시의 다음 표적이 이라크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에 즈음해서는 거의 두 달 내내 거리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반전 토론회를 개최하고 홍보전을 하고 배지와 티셔츠를 팔고 반전 서명을 받으며 반전 집회에 사람들을 참가시키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집중했다. 따라서 “일상적·지속적 실천[이] 없”었다는 지적은 온당치 않다.

 

“실행력”

 

공동행동기구나 대중단체의 “실행력”은 대중 동원을 위해 어떤 주장을 펴고 어떤 전술을 채택하는가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그러나 “실행력” 문제가 이런 측면에서 논의되지 않는 점은 참으로 아쉽다.

얼마 전 해소한 공실과 여중생범대위 합동운영위에서 반전 동맹 휴업과 반전 파업은 주요 전술로 논의되지 못했다. 그런 전술 제안은 전혀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파병 반대 집회 때 간부들을 동원한 것으로 만족했다. 대중 동원 문제가 거론될 때면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은 거의 매번 “노동자들이 반전에는 별로 적극적이지 않다”며 “동력 부재”를 주장했다.

그러나 영국·프랑스·이탈리아·그리스에서 반전 파업이 있었던 데에는 노조 지도자들과 활동가들의 파업 호소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운동에서 순수한 자생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중 속에서, 그러나 대중 추수가 아니라 대중 의식 고취’라는 목표 의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일부 단체의 지도적 간부들은 반전 집회 내내 정치 단체들의 발언을 제한하려 애썼다. 청중이 지루해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대중은 단순히 공연 보러 집회에 오는 게 아니다. 수많은 궁금증들과 물음들에 대한 적절한 주장과 논쟁은 사람들의 사기를 북돋워 운동을 강화하는 구실을 한다.

대중 동원보다는 (대 국회) 로비 활동이나 기자회견의 효과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단체들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참여연대의 한 활동가는 3월 25일 파병안 통과 저지 집회에서 그 날 방청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국회 로비에 들어왔다가 연행되는 바람에 방청권을 얻은 사람들까지 끌려 나왔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회를 소란스럽게 만들고 국회 밖에서 파병 저지를 외친 시위 대열의 힘을 국회 로비 활동에 딸린 액세서리쯤으로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살 만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실의 활동을 평가하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공실이 좀더 기층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라크 점령에 반대하는 지역 모임이나 노동조합, 각종 풀뿌리 단체들을 적극적으로 공실에 참여시키는 활동이 필요하다. 영국 전쟁저지연합의 경우 지역마다 지역 전쟁저지연합이 구성돼 있고 청년·학생·노조·문화 단체·종교·평화 단체·정치 단체 등이 가입해 있다.

특히 노동자들이 반전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사회적 부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전쟁에 반대한다면 그것은 부시와 전쟁광들한테 큰 압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 전쟁저지연합의 경우에는 각 단위 또는 지역의 노동자들이 가입했다. 우리 나라로 치면 주요 도시뿐 아니라 아주 조그만 읍·면에서도 지역 모임이 생겨났다. 예를 들면 런던의 공무원 노동자들뿐 아니라 브링튼 지역의 철도 노동자들도 지역 전쟁저지연합을 결성했다.

한국에서도 공무원노동조합이나 기아차 화성 공장 노동자들이 반전 모임을 결성해 여러 다양한 반전 활동을 벌여 왔다. 현장 활동가들이 참여한 반전노동자연대라는 모임도 활동중이다.

요컨대, “실행력” 문제는 반전 운동을 대중적으로 건설하기 위한 정치적·조직적 노력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

만약 다른 기구가 반전연합기구로 더 효과적이라면 굳이 공실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당장 그런 대안이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을 꾸준히 펼쳐 온 연합기구가 존재하는데도 굳이 다른 기구를 만들려는 시도는 운동의 역량 낭비일 수 있다.

공실이 9. 27 집회를 주최하는 문제를 결정할 수 없다며 각 단체들이 연명하는 방식으로 9·27 집회를 준비하라는 주장은 최선책을 놔두고 굳이 그보다 못한 대안을 선택하라는 것이어서 별로 설득력이 없다. 구체적 쟁점에 공감하는 단체들이 힘을 모으면 집중의 효과가 훨씬 크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부시의 전쟁에 반대하는 공동 활동과 연대는 각 부문 운동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다. 예컨대 보건의료단체연합의 한 활동가는 이제 군사비를 복지비로 돌리라는 주장을 공공연히 펼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미 736개의 단체가 부시의 전쟁에 반대하는 공동행동기구인 공실에 가입해 있고, 적지 않은 단체들과 활동가들이 이라크 점령 반대 운동에 연대하기를 원한다.

9월 27일 새 인티파다 3주년을 맞아 미국의 이라크 점령과 이스라엘의 팔레스인 점령에 반대하는 국제 반전 행동이 예정돼 있다. 한국의 반전 운동은 여기에 한반도 전쟁 위협 반대 등을 결합시키는 게 좋을 것이다.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을 조직해 왔던 공실의 활발한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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