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7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은 노동조합 인정과 운항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을 예고하는 것만으로도 회사측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냈다.

지난 해에 아시아나항공은 민주노조를 건설했지만 조종사들은 '청원 경찰'이라는 이유 때문에 노조에 가입할 수 없었다. 사측은 조종사들을 '청원 경찰'로 묶어 둠으로써 조종사들의 노동기본권을 제약해 왔다. 이것은 지난 10월 대한항공 조종사들의 파업 배경이기도 했다.

기존 노동조합으로 가입하는 게 어려워지자 조종사들은 독자적으로 노동조합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지난 6월에 아시아나항공은 조종사들의 청원경찰 신분을 해지했다. 이것은 조종사들의 노조 결성을 가로 막으려는 속셈이었다. 기존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이 있는 상황에서 조종사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되면 복수노조가 된다. 그런데 현행 노동법은 2001년 12월까지 복수노조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조종사 노동조합은 법외단체가 될 수밖에 없다. 사측은 이를 통해 노노갈등을 부추기려 한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조종사들의 노조 설립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사측은 조종사들이 사무실에서 조종사 노조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것을 막았다. 또, 지난 10월 4일에는 안전운항을 위해 조종사들의 근무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기내 방송을 하고 리본 달기를 했다는 이유로 조종사 노동조합 집행부 11명을 검찰에 고소·고발하기도 했다.  

 

파업전야

 

노동자들은 12월 5일 쟁의행위 찬반투표에 95.4퍼센트(495명)가 참여해 그 중 96.6퍼센트(478명)가 파업에 찬성했다.

김대중 정부는 노동자들의 단호한 행동에 놀랐다. 김대중은 12월 8일 노벨 평화상 수상을 위해 노르웨이로 떠나는 특별 전세기를 아시아나항공에서 대한항공으로 옮겨야 했다.

파업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에 남아 있던 조종사 2백10여 명은 12월 6일 충주로 집결했다. 한 조종사는 파업전야 당시를 이렇게 묘사했다.

"운항을 마치고 동료들에게 전화를 했다. 동료들이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배낭을 메고 충주로 향하는데 MT를 떠나는 기분이었다. 저녁에 합류했는데 즐거웠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파업을 위해 210여 명의 노동자들이 결집했고 조종사들이 단호한 파업 의지를 보여줘 파업 돌입 전에 대부분의 요구를 성취할 수 있게 했다.

결국 아시아나항공은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은 법외노조임에도 불구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안전 운항을 위해 필요한 조종사들의 월간 휴무를 기존 4일에서 8일로 늘렸고, 비행시간 단축안을 조종사 노조와 협의하기로 했다. 정년 55세 이후 6개월에서 1년씩 재계약을 하는 촉탁 제도도 1회 계약 후 60세까지 자동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은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이 지난 10월 파업을 통해 쟁취한 성과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투쟁에 참여한 한 조종사는 이렇게 말했다. "여태껏 조종사들의 힘이 어떤 것인지 몰랐는데 일단 확인을 하는 기회가 됐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2∼3번은 더 있을 것 같다. 그 때는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조종사는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단체협약이 타결되어 파업에 실제로 들어가지 못한 점이다. 파업을 했으면 우리 힘이 어떤지도 알 수 있고 단결의 의미도 더 분명히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말했다.  

조종사들은 투쟁을 통해 의식의 변화를 경험했다.

"이번 투쟁을 통해 조종사들은 하나가 됐다. 혼자서 하면 안 되지만 여럿이 하면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다. 투쟁을 하면서 운항 외에는 관심이 없던 내가 다른 부분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됐다."

아시아나항공이 생긴 이래 12년만의 첫 투쟁 경험은 조종사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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