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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프의 폭탄 공격 - 미국의 점령이 낳은 재앙

나자프의 폭탄 공격 - 미국의 점령이 낳은 재앙

지난 8월 29일 이라크 나자프 시에서 일어난 차량 폭탄 공격으로 82명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이번 공격의 주요 표적은 아야툴라[시아파 이슬람 최고 지도자의 호칭] 무함마드 바크르 알-하킴이었다. 그는 미국이 식민지 점령을 은폐하기 위해 내세운 꼭두각시 기구 과도통치위원회에 참가한 가장 유명한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였다.

이번 공격 바로 다음 날, 또 다른 시아파 성직자 무함마드 바르 알-울롬은 미군 점령 당국이 “치안 유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과토통치위원 사퇴를 선언했다.

사건 직후 나자프의 이라크 경찰은 알-카에다 조직원들로 의심되는 용의자 19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군 정보 요원들은 그들이 이번 공격을 감행했는지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하킴이 표적이 된 것은 그가 미군의 이라크 점령에 협조했기 때문임이 거의 확실하다.

이라크 이슬람혁명 최고평의회(SCIRI) 의장이었던 하킴은 과거 20년 넘게 이란의 이슬람 정권과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었다. 이란은 그가 창설한 SCIRI 민병대 ‘바드르 여단’을 지원하고 무장시켰다. 바드르 여단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 편에 붙어서 이라크군에 맞서 싸웠다.

미국 정부는 최근까지도 SCIRI를 테러 조직으로 분류했다. 지난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바드르 여단 대원들이 독자적으로 후세인 정권에 맞서 싸운다면 적 전투원들로 취급하겠다고 경고했다.

그 뒤 하킴과 미군 점령 당국은 화해했다. SCIRI는 무기를 내려놓았고 하킴은 점령 반대 입장을 철회했다. 그가 과도통치위원회에 참여하자 많은 이라크인들은 그를 “반역자”라고 비난했다. 그의 동생은 과도통치위원회의 순번 의장 9명 중 한 명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목숨을 노린 세력은 알-카에다나 후세인 잔당만이 아니었다. 이번 사건 1주일 전에 하킴의 삼촌이 폭탄 공격을 받았다가 간신히 살아난 적도 있었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 정책은 갈수록 꼬이고 있다. 이라크 침공 직후 미국은 시아파를 회유하기 위해 런던에 망명중이던 친미 성향의 시아파 성직자 압델-마지드 코헤이를 급히 이라크로 데려왔다. 그러나 그는 곧 나자프에서 성난 군중에게 살해당했다.

미국은 하킴이 과도통치위원회에 참여한 것을 미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성과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8월 30일 나자프에 운집한 추모객들은 이번 비극이 미국의 점령 탓이라고 비난했다. 그들은 사건 현장인 이맘 알리 사원으로 행진하면서 “미국을 타도하자” 하고 외쳤다. 그들이 든 배너에는 부시와 후세인을 똑같이 비난하는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꼭 열흘 전에 바그다드 유엔 건물에 대한 폭탄 공격으로 23명이 죽었다. 8월 7일에는 요르단 대사관이 폭탄 공격을 받아 19명이 사망했다. 이런 일련의 공격은 이라크가 점차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미국의 주장을 여지없이 무너뜨렸으며 14만 명에 달하는 미 점령군이 이라크의 치안을 확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줬다.

이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