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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민족주의, 상업주의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거리 응원 이명박은 월드컵의 ‘대~한민국’ 함성으로 불만과 갈등을 가리고 싶어 한다.

바야흐로 월드컵의 계절이다. 전 세계 수십억 축구팬들은 모두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축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그리고 월드컵은 전 세계에서 열리는 모든 축구 경기의 꽃이라 할 수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연인원 4백억 명이 TV로 월드컵을 시청했다 한다.

노동자들이 단조로운 일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없는 이변이 속출하고, 강대국 팀이 약소국 팀에게 패배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점 등이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일 테다.

평범한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기 때문에 축구는 흔히 지배자들의 유용한 지배 수단으로 이용됐다.

신화

월드컵은 국가 대항전이다. 제1회 월드컵 대회 당시 우루과이 대표팀 감독은 아르헨티나와 벌인 결승전이 ‘단순한 팀 대결이 아니라 국가 간의 대결’이었다고 회고했다.

각국 지배자들도 월드컵을 이용해 국민적 단결의 신화를 만들어 내고 이를 민중의 저항을 잠재우는 데 이용했다.

한국 지배계급도 일찌감치 국가적 차원에서 축구를 집중 육성했다. 1970년 박정희의 친인척인 대한축구협회장 장덕진은 “축구를 통해 민족의 단결”을 이끌어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북한의 1966년 월드컵 8강 돌풍에 자극받아 중앙정보부가 국가대표팀 상비군을 직접 운영했고, 박스컵 대회를 신설했다. 1980년대부터는 국가 주도의 축구에 기업이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의 공식 슬로건은 ‘승리의 함성, 하나 된 한국!’이다. 이명박 정권은 한국의 극심한 사회적·정치적 양극화를 ‘대∼한민국’ 함성으로 덮어 버리고 싶을 것이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월드컵에서 한국 팀이 이기기를 바랄 것이다.

만약 미국이나 일본 같은 제국주의 국가 팀과 경기한다면 그런 심정을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 예선에서 한국 팀은 나이지리아·그리스·아르헨티나와 경기한다.

이 경기들에서 한국 팀을 응원하는 것은 배타적 민족주의다. 이 나라들이 한국인을 억압한 적도 없고 그 역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과의 경기에서 한국 팀을 응원하는 것은 진보가 아니다. (관련기사 : “민족주의의 기원”, “마르크스 이론은 국민적 단결 신화를 어떻게 보는가?”)

월드컵은 또한 상업주의의 전당이기도 하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TV 중계가 본격화하면서 월드컵의 상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FIFA는 다국적 기업들과 공식 후원사 계약을 맺어 막대한 수익을 얻고, 다국적 기업은 월드컵 경기장을 광고의 장으로 적극 활용한다.

수익을 극대화하려고 때로는 축구 규칙도 바꿨다. 애초 16개국이었던 본선 진출국 숫자를 24개국으로, 그리고 지금의 32개국으로 늘린 것도 TV 중계 시간을 늘려 그만큼 광고 수입을 올리려는 FIFA의 상업화 구상과 맞닿아 있다.

민족주의와 상업주의가 교차하는 월드컵을 우리는 지난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때 서울광장에서 목도한 바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맞아 SK텔레콤은 응원 티셔츠 12만 장을 뿌리고 응원곡을 제작·유포하는 등의 마케팅으로 적어도 5백억 원 이상의 홍보 효과를 누렸다고 한다.

부패

이렇게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하고 상업주의가 활개를 치는 월드컵을 관장하는 FIFA는 올림픽을 책임지는 IOC와 더불어 비리의 온상이기도 하다.

특히 월드컵, 청소년 대회 등을 유치하려는 국가들은 결정 권한이 있는 FIFA 집행위원 24명을 상대로 노골적이든 은밀하게든 뇌물 공세라도 해야 경쟁국을 이길 수 있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독일의 미디어 재벌 레오 키르히는 친선경기의 대전료를 명분으로 태국·몰타 등의 FIFA 집행위원들에게 ‘합법적으로’ 30만 달러씩 지급했다. 독일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전차 미사일 1천2백 기를 보내 주겠다는 약속으로 유치 지지를 끌어냈다.

월드컵 중계권을 획득해 중계권 협상을 대행해 온 ISL이 파산하는 과정에서 20여 년간 ISL이 FIFA 대의원들에게 뇌물을 줬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나 FIFA는 지금까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고, 여전히 ISL과 맺은 계약과 유사한 방식으로 중계권 협상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지만,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등장한 축구는 언제나 ‘스포츠 그 이상’이었다. 태극기든 삼성 로고든 국가와 기업의 상징물이 박힌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이 뛰는 한, 축구 경기장에서 스포츠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을 보기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월드컵을 즐기되, 월드컵의 추악한 이면도 함께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