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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을 이용하는 제국주의 열강

어떤 경우에는 사건의 진실보다 그것의 효용성이 더 중요하다. 천안함 사건이 딱 그런 경우다.

전모도 불확실한 이 사건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연관된 동북아 최대 이슈가 된 것은 동북아 국가 간 관계가 참으로 공교로운 때 발생했기 때문이다.

중미 전략 대화를 코앞에 두고 미국은 위안화 절상·정부 조달·이란 경제 제재 수위를 놓고, 중국은 타이완 무기 판매·남중국해 미군함 순시를 놓고 서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5월 30일 한중일 정상회담 동상이몽의 극치

일본 정부는 미군 기지 이전 문제에서 오바마 정부의 오만함과 오키나와 도민들의 정당한 반발에 부딪쳐 진퇴양난 상황에 빠져 있었다.

또, 일본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일본 해군의 배타적 영역이었던 오키나와 근해에서 중국 해군이 조금씩 활동량을 늘리는 것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심중이었다.

미국과 일본은 천안함 사건을 난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회로 활용했다.

오바마는 이 지역에서 미국이 여전히 최강의 무력 집단이자 가장 많은 동맹을 거느리고 있음을 증명하는 기회로 활용해 중국에 압력을 넣었다.

견제

하토야마는 오키나와 주민의 이익과 미일 군사 동맹의 이익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후자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천안함 사건을 활용했다. 하지만 미일 군사동맹을 선택한 진정한 이유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데 미국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감출 수는 없었다.

하토야마가 후텐마 고수 결정을 발표하기 직전 미국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는 일본의 중국 군함 감시 활동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야를 약간 넓혀 동남아를 포함시키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할 카드로 역외 열강을 활용하려는 나라들은 인근에 더 많이 있다. 미국은 이 점을 패권 유지에 이용하고 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미국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다음과 같이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옛 동맹(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새로운 친구들(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게도 자신이 이 지역에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할 것임을 확신시키려 한다.”

결국 천안함 사건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반응은 사건 자체보다는 지난 몇 년 간의 좀더 근본적 변화 —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몰두하느라 동아시아에서 ‘힘의 공백’이 생겨난 듯이 보인 것과 중국의 부상 — 에 대응한 것이라는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당장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냉전 구도가 부활하는 것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다.

첫째, 미국·중국 그리고 동북아와 동남아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에게 중국으로의 수출은 경제 위기의 심화를 막는 버팀목 중 하나다.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과 자유무역 협정을 맺었다.

둘째, 미국은 아직 중동과 서아시아에서 끝내야 할 전쟁이 있다. 그래서 미국은 이번 사건이 실제 군사적 충돌로 비화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한국 정부 관리가 미국 정부와 논의한 뒤 “안보리 조치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상징적, 도덕적 메시지가 될 것”이라 말한 것은 그 때문이다.

셋째,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미국 동맹 대 중국 동맹의 구도가 고착되면 자신이 불리함을 잘 알고 있다. 천안함 사건에서도 ‘애매한 태도’를 취한 것은 실질적 대북 압박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중국 대 한미일 연합’의 구도도 흐려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때 불장난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동아시아에 다시 ‘평화’가 찾아올까? 일단 북한책임론을 둘러싸고 중국과 한미 사이에 갈등은 여전하다. 중국은 곧 실시될 한미 간 대규모 군사 훈련이 자신도 노린 것을 알기에 심기가 불편할 것이다.

열강이 동아시아 긴장 구도로 불장난을 하는 것이 언젠가 남북 간 우발적·국지적 충돌을 낳을 수도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장기적으로 이렇게 잠재적 갈등이 쌓인 상태에서 앞서 말한 제약 요인이 약해지거나 사라졌을 때 지역 열강 관계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다.

과거 1930년대 대공황이 보여 줬듯이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열강 간 관계가 순식간에 변할 수 있다. 1920년대 독일과 일본은 미국 시장과 금융에 크게 의존해 성장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십수 년 뒤에는 미국과 역사상 최대의 전쟁을 치렀다.

그래서 나는 ‘지금은 괜찮다’는 주류 언론들의 논평에도 마음이 안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