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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당사자 운동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 20대 가슴속에 변화를 바라는 에너지만큼은 충만하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20대들은 그런 변화를 더욱더 갈망할 것이다.”

우석훈은 20대가 보수화됐다는 주장을 거부하고 20대에게 용기를 갖고 운동에 참여하라고 촉구한다.

2010년 5월 1일 세계노동정 집회에 참가한 대학생들 20대의 관심사는 자신들의 경제적 요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석훈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서 20대 운동이 ‘당사자 운동’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당사자 운동을 “‘자체 세력화’라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 운동을 일본에서 번역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당사자 운동이란 20대가 자신들의 문제를 풀기 위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때문에 20대의 고통이 커진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는 데 20대 자신이 운동을 벌이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20대의 각성을 촉구한다는 점만 본다면, 사회에 자신들이 목소리를 내고 진보적인 운동에 참가하라는 다양한 진보적 제안들과 큰 차이가 없다. 우석훈이 시민운동, 정치운동, 노동조합 건설 등 20대를 위해 제안하는 ‘진 짜기’도 사실 새로울 게 없는 방식들이다.

결국 당사자 운동론의 독특한 점이라면, 20대가 사회의 여러 문제점들보다 20대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한 가지 통찰과 한 가지 반감이 있는 듯하다.

우석훈은 20대를 “한국에서 경제적 측면에서 약한 고리”라고 규정하는데, 여기에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바뀐 대학생 지위에 대한 통찰이 들어 있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80퍼센트가 대학에 진학하는 요즘, 대학생은 더는 1970~80년대처럼 지식인으로 대접받지 못하며 등록금, 학자금 대출, 청년 실업 등에 찌들어 있다.

다른 한편, 당사자 운동론은 기존 운동 방식 혹은 학생운동에 대한 반감이기도 하다. 우석훈은 80년대식의 “수직적 리더십”이 현 20대에게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비판에 공감할 만한 측면은 있다. 사실 기존 학생운동도 등록금을 비롯해 학생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운동을 건설해 왔는데, 예를 들어 등록금 투쟁은 새 학년을 시작할 때마다 꾸준히 지속됐다.

그런데 대학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런 운동은 종종 기존 학생운동이 ‘진정으로’ 목표로 삼는 운동들, 예를 들어 통일운동이나 정권 퇴진 운동으로 나아가는 데 ‘이용’되고 작위적으로 연결되곤 했다.

20대의 열악해진 처지와 기존 학생운동이 보인 이런 약점이 낳은 반발 때문에 당사자 운동론이 강화되는 듯하다.

통찰과 비판

그런데 당사자 운동론은 20대의 처지가 어려워졌으므로 그들이 당면한 경제적 문제에 주로 관심이 있다는 부당한 전제를 깔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현실에서 들어맞지 않는다.

2002년, 2004년, 2008년의 거대한 촛불운동, 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 등에 많은 20대가 참가한 것을 떠올려 보라.

특히 대학생들은 아직 생산관계에 속해 있지 않고 대학에서 이론, 학문을 주로 배우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해관계뿐 아니라 지적·도덕적 불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운동에 참가할 수 있다.

최근의 총학생회 선거에서 ‘비운동권’ 학생회조차 ‘사회 참여’를 내세운다는 점도 20대가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에 주로 관심이 있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 준다.

게다가 학생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 사이에 만리장성이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은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해할 수 있고, 따라서 사회의 다른 운동들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우석훈도 시민운동, 정치운동, 노동조합 건설 등을 20대에게 제안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20대 당사자 운동이 기존 운동들과 관계 맺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연대나 정치 참여의 방점도 20대의 문제(예를 들어 “20대 권리선언문”)를 제기하는 것으로 한정하는 듯하다.

이런 태도는 20대의 요구와 거리가 먼 듯한 노동자들의 투쟁(예를 들어 일자리를 지키려는 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하는 것을 등한시할 위험이 있다. 게다가 《88만 원 세대》에서 주장한 ‘기성 세대가 20대를 착취한다’는 주장도 이런 위험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인 이윤에 타격을 줌으로써 지배자들의 양보를 이끌어내고 사회를 근본에서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노동자 운동과 연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른 한편, 우석훈이 20대의 경제적 문제에 집중하라고 촉구하는 것은 체제에 도전하는 것뿐 아니라 정권 퇴진을 내걸고 정치적 투쟁을 벌이는 것 역시 가능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석훈은 2008년 시청 광장에 대규모로 모인 촛불운동이 “효과적인 전략”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국민소환제가 있었다면 “68 때보다 더 크게 사회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당사자 운동론이 법 절차의 틀 안으로 대중의 요구를 제한하는 개혁주의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 우석훈은 생협, 사회적 기업 같은 사회적 경제를 확대하는 것을 대안으로 주장하는데, 여기에도 체제 안에서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만이 가능하다고 보는 개혁주의적 생각이 깔려 있다.

개혁주의

이 같은 개혁주의와 연결성 때문에 우석훈의 당사자 운동론은 기존 운동 진영의 일부에게 차용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조성주 등은 ‘당사자 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대학생의 처지가 바뀌었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쟁점을 제기하는 것이 더는 적절치 않고, 체제 변혁뿐 아니라 정권 퇴진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20대는 20대의 경제적 어려움에 집중해야 한다는 식으로 우석훈과 대동소이한 주장을 하고 있다.

학생운동이 20대의 변화된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려는 운동을 진지하게 건설해야 한다는 당사자 운동론에는 분명 합리적 핵심이 있다. 그렇지만 20대의 운동을 협소한 요구로 제한하려 하고, 기존 복지마저 삭감되는 경제 위기 시기에 체제의 틀 안에 한정된 운동으로 자본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20대의 경제적 처지를 개선하려는 운동을 진지하게 건설하는 것과 민주주의, 환경, 여성 차별, 반전 등 20대가 관심을 갖는 다양한 쟁점들을 제기하고 운동을 건설하는 것을 대립시켜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런 운동을 노동자 운동과 연결하려는 의식적 시도는 진보적인 사회 변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