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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은 지방정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6·2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진보정당 후보들이 대거 당선하자 진보적 지방정부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공동지방정부’ 구성을 둘러싼 논의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물론 인천 남동구, 동구, 울산 북구에서 당선한 민주노동당은 울산에서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잘 살려 중요한 구실을 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출신의 울산 구청장들이 주류 정당 출신의 구청장과 다르다는 것을 가장 분명히 보여 준 것은 중앙정부에 맞서 싸울 때였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공무원노조 탄압에 맞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려 싸웠을 때 그 활약은 눈부셨다.

반면 주민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 했던 ‘음식물 자원화 사업’의 경우 주민들과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런 실망 등이 쌓여 결국 다음 선거에서 한나라당에 자리를 내주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10년 전 세상을 떠난 영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토니 클리프는 1920년대 영국에서 벌어진 포플러 운동을 사례로 들며, 진보정당이 지방정부를 활용해 운동의 구심점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마르크스주의에서 본 영국노동당의 역사》, 책갈피)

“지방정부는 [의회와 달리] 단순한 연단 이상이 될 수 있다. ‘무장 집단’을 동원해 지배계급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능인 중앙정부와 서비스 기능을 가진 지방정부 사이에는 잠재적 모순이 존재한다.”

1919년 영국 노동당은 런던 노동계급 거주지인 포플러 구의회에서 처음으로 다수파가 됐다. 이 지역에서 오래 활동해 온 조지 랜즈버리는 노동당이 장악한 구청의 목표를 이렇게 요약했다.

“노동당 지방정부가 자본가 정당의 지방정부와 다르다는 것을 노동자들에게 분명히 보여 줘야 한다. 한마디로, 부자들에게서 거둔 세금으로 빈민을 구제해야 한다.”

그러나 런던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가운데 하나였던 포플러 구에서 실업 급여와 임금 인상 비용을 노동자들이 부담할 수는 없었다. 포플러 구청은 런던 전체의 지방세를 ‘평준화’해 부유한 구들이 가난한 구들을 도와야 한다고 요구했다.

로이드조지 정부가 이 요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자 포플러 구청은 상급 기관인 런던 시와 경찰, 구호시설, 구청에 지급해야 하는 교부금을 빈민 구제 사업에 써버렸다. 법을 어겨서라도 싸우자는 제안이 지역 노동조합 지부 대표자 회의에서 논의 끝에 채택됐다. “포플러 구의원들은 투쟁을 대리한 것이 아니라 투쟁을 지도했다.”

1921년 9월 이 ‘불법’ 투쟁을 주도한 구의원 30명이 구속됐지만 포플러 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여성 구의원 여섯 명이 감옥으로 이송될 때 1만 명이 그 뒤를 따라 행진했고 세입자방어연맹에 수천 명이 가입해서 집세와 지방세 파업을 준비했다. 좌파가 다수파인 다른 구의회 두 곳도 포플러의 선례를 따라 불법 투쟁을 결의했다. 실업자들의 행진, 빈민구제위원회 점거 농성, 경찰과의 충돌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6주 동안의 구명 운동 끝에 그들은 석방됐고 마침내 정부가 양보해야 했다. 포플러의 유아 사망률은 1918년 1백6명에서 1923년에 60명으로 줄었다.

임명직과 공동지방정부 문제

그러나 강병기 민주노동당 전 최고위원이나 김미희 전 성남시의원처럼 참여정부 인사나 민주당이 당선한 지방정부에 임명직으로 ‘참여’하는 것은 진보정당의 위상을 높이기는커녕 그 반대로 끝날 공산이 크다.

선거에서 지지를 받아 당선한 경우에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연단을 활용해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선전·선동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그에 대한 지지를 이용해 중앙정부, 지방의회, 지역의 기득권 세력들에 맞서 싸울 수 있다. 지방정부가 그 지역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복지를 제공하려면 이 과정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임명직으로 지방정부에 참여해서는 그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먼저 민주당의 복지 공약이 노동자들과 주민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지적한 지방정부의 특성 때문에 일시적으로나마 민주당 출신 지자체장도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도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이 중앙정부를 장악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그런 개혁조차 일관되고 진지하게 밀어붙일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현재의 행정체계와 법 질서를 뛰어넘는 운동을 지도할 수 없다. 진보정당들과 달리 민주당은 지배계급에 주된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정당 출신의 부도지사가 제공하는 개혁은 대중을 만족시키지도 못하는데다 설령 그것이 이뤄진다 해도 개혁의 성과는 모두 도지사인 김두관이 차지할 것이다.

예컨대 강병기 전 최고위원은 공무원의 정치 참여를 금지하는 현행법 때문에 형식적으로나마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복지가 민주노동당 ‘덕분’이라는 평가를 받을 여지가 거의 없다.

최악의 경우 진보정당은 ‘공동지방정부’의 무능에 대한 책임을 민주당과 함께 져야 할 것이고, 반기를 들면 정책에 대한 최종결정권과 임면권을 가진 민주당에게 쫓겨날 것이다.

형식적 민주주의 수준을 넘어 계급적 문제가 부각될수록, 예컨대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거나 급진적인 복지 정책을 요구할수록, 정부의 탄압이 극심해질수록 이런 모순은 더욱 커질 것이다.

진보정당이 운동의 구심점 구실을 하고 대안적 정치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려면 민주당과 공동지방정부에 참여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