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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노동자들은 말한다

대기업 노동자들은 말한다

“우리가 특권층이라고요? 우리 조립1반 40명 중 20명이 허리가 맛이 갔어요. 하루에 차 3백80대를 만드는데 차체 밑에서 7백60번이나 허리를 돌려야 합니다. 이렇게 뭐 빠지게 일해야 겨우 연봉 3천만 원인데 그거면 전세 값, 교육비도 빠듯하죠. 오죽하면 1998년에 송인도 조합원이 분신하면서 ‘아들 운동화도 못 사주고 … ‘라고 했겠어요.

우리는 임투할 때 ‘우리만의 임금이 아니다’ 하고 생각하고 싸웁니다. 왜냐면 하청업체들이 기아 임금 수준을 보고 인상률을 거기에 맞추거든요. 하청은 본청과 연결돼 있어요.

작년에 하청업체인 세원테크에서 1백65일간 싸울 때 기아 선봉대가 항상 함께 했습니다. 경찰력이 투입됐을 때 화성 공장에 텐트 쳐 주고 기숙사에 재워 주기도 했죠. 또, 세원 노동자들의 요청으로 우리가 세원 쪽 물량을 ‘불량’이라 핑계대고 끊어버리기도 했어요. 오죽하면 우리가 연대집회 가면 세원 사측에서 ‘기아차 놈들 제발 그만 좀 와라’고 방송까지 했겠어요.

지난 8월 25일 기아차 내에서 비정규직 집회가 있었어요. 검사라인과 방청라인의 두 업체를 하나로 합치면서 고용과 근로조건이 나빠질까 걱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근로환경개선위원회’를 만들고 새벽 1시에 집회를 했는데도 정규직 60여 명이 와서 비정규직 30명과 연대했습니다.

지금 기아 화성에는 각 현장조직과 민주노동당 분회가 함께 ‘비정규직 투쟁 위원회’를 만들어서 노조 직가입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아자동차 노조원 이우상

“1987년 이전에 제 임금이 겨우 시급 6백25원이었죠. 1987년 이후에 노조 건설하고 구속, 수배, 해고당하면서 계속 싸워 왔어요. 지금의 임금은 특권이 아니라 이런 투쟁의 성과인 겁니다.

비정규직이 많아진 건 1997년 IMF 때였죠. 그 때 ‘회사를 살리자’며 1만 명을 내보냈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웠어요. 정규직 노동자들 때문이 아닙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이 되면 차별이 없어진다는 노무현의 말은 정말 얼토당토 않습니다.

지금 울산에서는 ‘원하청 노동자 공동투쟁위원회’와 ‘비정규직 노조’가 있고 임금과 고용을 내걸고 수시로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조는 3개월 만에 조합원 수가 3백 명에서 8백 명으로 늘었죠.”

울산 현대자동차 노조원 정동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