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호중 교수가 ‘맑시즘2010 ― 끝나지 않은 위기, 저항의 사상’에서 ‘성범죄·싸이코패스 ― 범죄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본인의 동의를 얻어 축약한 것이다. 진보진영이 감시와 처벌 위주의 범죄정책에 왜 반대해야 하는지 풍부한 근거를 들어 설명하는 이 글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 싣는다.]


국가 형벌권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그걸 어떤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지 같이 논의해 봤으면 합니다.

아동 성폭력 범죄를 중심으로 징역형 플러스 알파 정책으로 발전된 것들이 네 가지입니다. 전자발찌, 신상공개, 치료감호, 화학적 거세.

아동 성폭력을 명분으로 도입돼 갈수록 다른 범위로 확대되고 있는 전자발찌는 대표적인 감시 ·통제 정책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2008년이 기점이 된 것 같습니다. 아동 성폭력 범죄에 2008년부터 전자발찌가 본격 시행되기 시작했고, 신상공개제도가 확대됐습니다. 또, 2008년에 치료감호제도라고 해서 소아 성기호증, 성도착증 환자를 공주에 있는 치료감호소에 수용해 15년 동안 치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도입됐습니다. 2010년에는 화학적 거세가 새롭게 도입됐어요.

전자발찌를 도입한 대표적인 나라로 미국을 듭니다. 그런데 전자발찌를 우리 나라같은 방식으로 실시하는 곳은 미국의 대여섯 개 주 정도밖에 안 돼요.

보통 외국에서는 가석방이나 집행유예 선고할 때 여러 가지 준수 사항들을 부과하는데 가석방 기간이나 집행유예 기간에 그 준수 사항을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전자발찌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징역형 플러스 알파 정책

전자발찌는 원래 징역형을 회피하려는 전략으로 개발된 거예요. 가능한 빨리 징역형에서 가석방을 시킨다든지 필요하면 징역형을 선고하지 않고 집행유예같은 것을 선고하기 위해서였죠.

우리 나라에서는 징역형을 다 마치고 나온 다음에, ‘당신은 위험하니까 전자발찌를 30년까지 더 채우겠다’ 이런 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전자발찌를 활용하는 나라는 미국에서도 몇 개 주밖에 되지 않습니다.

신상공개제도도 보면, 우리 나라에서는 인터넷으로 신상 정보를 다 볼 수가 있는데요. 지도 검색을 연상하면 돼요. 동네 지도가 나오고 아동 성폭력 범죄자들이 살고 있는 지점들이 표시가 됩니다. 클릭하면 세부 정보를 볼 수가 있어요. 그런 식의 제도들은 미국에서도 몇 개 주에서만 실시되고 있습니다.

화학적 거세도 미국의 몇 개 주에서만 실시하고 있어요.

우리 나라처럼 전자발찌 채우고, 치료감호 정책 쓰고, 신상공개도 하고, 화학적 거세까지 하는, 이 모든 제도들을 징역형에 더해서 가진 나라는 미국의 플로리다 주 정도밖에 없어요.

이 모든 제도들을 다 가진 유럽 국가는 하나도 없어요. 이 제도들을 하나도 안 가진 나라가 대부분입니다.

왜 이렇게 가고 있는가? 우리 나라가 너무 앞서 나가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에서도 우리 나라와 비슷한 강성 정책들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높아지고 있어요. 유럽같은 데서 이런 제도들이 아직 현실화되지 않는 것은 이에 비판적인 담론들이 아직까지 굉장히 세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언론은 아동 성폭력 범죄에 관해,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성인 남자가 나타나서 아이를 납치·유괴해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다’는 식으로 이미지를 만듭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잘 놀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된다는 게 부모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위험한 것이죠. 그런데 그 위험은 사실 언론과 정부에 의해 과장되는 측면이 큽니다.

실제로 아동 성폭력 범죄의 70~80퍼센트는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가족, 친척, 동네의 또래 친구나 선배, 주민, 학교 선생님, 학교 선배 등.

지금의 형벌 정책은 범죄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전제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시민들이 가진 막연한 불안감, 공포를 배경으로 범죄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들을 만들어 냅니다.

아동 성폭력은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인 성 문화,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산업 구조들 속에서 성적인 욕망이나 쾌락이 산업화되고 그것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대상을 왜곡된 형태로 찾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왜곡된 방식들은 주로 아는 사람 사이에서 잘 나타납니다. 낯선 사람, 전혀 모르는 사람을 폭력적으로 제압하는 방식보다는 아는 사람을 유혹해 성폭력을 저지르는 식입니다.

신자유주의

살인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연쇄 살인 사건 같은 극단적인 사건들도 있지만, 살인 사건의 대부분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합니다. 살인 사건은 갈등 해결 과정에서, 서로 갈등이 비정상적으로 증폭되면서 나타나는 범죄 중 하나거든요. 그래서 대부분 살인은 갈등 관계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극단적 대응입니다.

그러나 언론은 멀쩡하게 길거리를 지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강도를 당하고, 살해를 당하고, 성폭력을 당하는 것처럼 보도합니다.

범죄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에 기반한 강성정책에 숨겨진 코드가 ‘위험’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있는 위험 요인들을 통제하고 싶어합니다. 위험 코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신자유주의 문화와 연결돼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자유주의는 경제 정책이지만, 문화적인 담론이기도 합니다. 개인들의 모든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에게 지우는 식의 담론 구조들을 만들어 냅니다.

물론 근대법이 개인의 이성, 개인의 자율성을 근거로 구축된 법 담론이기는 하지만, 신자유주의 하에서 개인 책임은 초창기 근대법에서 나타났던 개인의 이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태도보다는 ‘당신의 주변에서 당신의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모든 문제와 그 결과는 당신이 개인적으로 감수해야 한다’는 사고방식과 더 관계 있어요.

범죄 문제에서도 모든 범죄의 원인과 책임을 범죄자 개인에게 뒤집어 씌우는 식의 정책들로 나타납니다.

요즘 괴물, 짐승 같은 표현들을 많이 하잖아요. 짐승론이나 괴물론은 범죄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범죄자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범죄자는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고, 그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들이 제대로 적응해서 살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사고가 강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누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했을 때 오로지 그 사람, 그 개인의 잘못이고 그 개인이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할 문제가 돼 버립니다.

오늘날 범죄 문제 담론들은 범죄를 낳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측면들을 은폐하고 감추면서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우는 식입니다. 이것은 물론 근대법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기도 하지만, 복지국가 담론들이 많이 해체되면서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담론들이 많이 와해돼 나가는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강성 범죄 정책을 유도하는 한 배경으로 자리 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범죄자들을 짐승으로 바라보는 것과 함께 개인의 안전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증가하게 됩니다. 이것이 한편으로는 범죄자에 대한 강성 정책을 요구하는 여론으로 나타납니다.

다른 한편으로 개인이 범죄로부터 안전을 지키려고 여러 가지 대책, 방책들이 범죄산업 형태로 나타나요. 호신용품이라든지 CCTV라든지 가정용 방범이라든지. 이것이 범죄 예방이 산업화되는 맥락이거든요.

범죄 통제를 국가에게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나 지역사회 단위에서 대처하고자 하는 수요가 증가하게 되고 거기에 상응해 범죄 예방 산업들이 등장하게 되죠.

이것들이 범죄의 위험을 차별화시키는 문제를 동반하게 됩니다. 쉽게 얘기해 돈 있는 사람은 경비가 잘 돼 있는 좋은 아파트에 살 수 있고, 아이를 좋은 차로 학교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는 등 자기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여력조차 없고 지역사회 자체도 범죄로부터 위험을 예방하거나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범죄는 대부분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하거든요. 보통 계층적 지위, 계급적 지위가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상호작용이 훨씬 더 활발합니다.

내가 공장에서 일할 때,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일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지, 사장님 만날 시간은 적잖아요. 그 사람이 사회적인 소통과 교류를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이미 제한돼 있지요.

범죄는 바로 그 안에서 일어나거든요. 그래서 대부분의 범죄는 사실 범죄자도 하층민이고, 피해자도 하층민입니다.

절도 사건 같은 경우 부잣집에 들어가 절취하는 사건이 가끔 언론에 나오지만, 그건 매우 예외적인 사건이죠. 일반적으로 하층민과 하층민 사이에 주로 발생합니다.

통제

요컨대, 범죄 피해를 예방하는 산업들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범죄 피해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 결국 자본의 힘과 연결되다 보니까 그런 위험들이 더 구조화되고 더 차별화됩니다.

마지막으로는 위험 감시 정책을 말씀드릴게요. 이것은 범죄를 저지른 후에 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전자발찌는 가장 전형적인 감시 정책입니다. 감시하면서 축적된 정보들을 가지고 그 사람이 뭔가 하려고 할 때 차단하겠다고 하는 것이지요.

전자발찌는 아동 성폭력으로 시작이 됐습니다. 그런데 금방 유괴 범죄로 확대되고 살인 범죄로까지 확대했죠. 신상공개는 성폭력에 특수하게 적용하고 있지만, 이것도 감시 정책입니다.

감시 정책이 등장하고 있다는 얘기는 수많은 정보들이 축적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정보들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분류한다는 것입니다. 그 분류에 의해 통제를 점점 더 강화하는 것이 위험 감시 정책입니다.

아동 성폭력 범죄를 계기로 지금의 형벌권은 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는 차원이 아니라 전반적인 위험 통제 정책, 위험 감시 정책, 그리고 분류에 의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 정책을 제도화하기 위한 기반이 정보등록제도죠. 신상 정보 등록, DNA 정보 등록.

이런 감시와 통제 정책들로 인해 위험성에 따른 분류와 차별적 통제전략이 구사됩니다. 이는 사회공동체의 민주주의적 기반이 잠식될 위험성이 굉장히 커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입니다.

녹취 오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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