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이명박 정부가 이란 추가(독자) 제재안을 발표했다.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1백여 단체와 개인 20명을 여행금지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또, 에너지 분야에서 이란에 대한 가스·정유사업 투자를 제한하기로 했다.

가장 논란이 컸던 멜라트 은행 문제는 외환거래법을 어긴 것을 근거로 들어 두 달 영업 정지를 발표하고 앞으로 이 은행을 통한 거래는 모두 사전에 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앞으로 이란과 무역 관계가 영향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주도의 제재로 크게 준 이라크 아동 생존률 똑같은 일이 이란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이란 제재에 반대해야 한다.

정부는 제재안을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핵무기 비확산 노력에 호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했지만 이것은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이다. 진정한 핵 확산의 주범은 미국과 그 동맹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동에서 핵무기 1백여 기를 보유한 이스라엘은 가만 놔두면서 아직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이란만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2005년부터 인도의 핵개발을 지원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 미국은 역시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남중국해 섬 통제 문제를 놓고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베트남의 핵개발을 지원하는 안을 진지하게 고려 중이기도 하다.

한국 진보진영은 미국 정부가 이명박 정부에게 추가 제재를 요구한 순간부터 이란 제재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반대 논평을 발표했다. 이는 크게 환영할 일이다. 예컨대, 8월 31일 ‘이란제재 중단 촉구 기자회견문’을 보면 “이란 제재는 새로운 패권전쟁을 부르는 폭거”라 비판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올바른 지적이다. 우리는 이란 민중에게 우리가 미국의 이란 압박과 한국 정부가 이 압박에 동참하는 데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문이 독자 제재 반대의 또 다른 주요 근거로 “기업들의 피해”를 든 것들은 우려스럽다.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도 “이란 제재는 한국의 경제적 이익보다는 한미동맹의 덫에 빠져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경제 위기 시대 이명박 정부가 일자리 창출도 못하면서 오히려 기존 경제 활동에도 피해를 준다고 말하면 좀더 대중의 지지를 얻을 것이라 생각했을 수 있다. 또, 기업과 이명박 정부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이 정부에 타격을 입히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기야 어쨌든 ‘기업=피해자’ 공식을 만드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이란 독자 제재를 선택한 진정한 이유를 감추는 효과를 낳는다.

물론, 이란 진출 한국 기업이 피해를 당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독자 제재안은 한국 자본가들의 이익을 지키려고 ‘차선’을 선택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독자 제재가 차선책인 것은 2000년대 중반처럼 겉으로는 제재를 추진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이란과 경제 관계를 확대해 온 행보에 비해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멜라트 은행 지점을 유치하면서 이란을 교두보로 중동에 진출한다는 한국 자본의 야심이 후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난 후 한국 정부가 뒷구멍을 성공적으로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이 천안함 국면에서 두 나라 사이의 돈독한 공조를 지렛대로 활용해 한국 정부에 강력한 제재를 요구하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닫은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대이란 관계와 대미 관계 중 어느 것이 한국 자본가에 더 이익이 되는지 따질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 연간 무역 규모가 1백억 달러인 이란과 9백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 사이에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는 명백하다. 사실, 중국을 경유해 미국에 수출되는 상품들을 고려하면 미국과 실제 교역 규모는 1천억 달러를 훌쩍 넘는다.

그러나 정부가 이란보다 미국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 단지 경제 교역의 규모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지정학적 이익의 고려다. 한미 군사훈련이 중국과 긴장을 후끈 고조시킨 7월 중순 동아시아 문제 전문가 피터 리는 〈아시아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중국 압박 움직임에 올라타 이 지역에서 자신의 위치를 제고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지정학적 고려

사실, 이번 대규모 군사훈련이 아니더라도 ‘테러와의 전쟁’ 이후 한국 정부는 미국의 대외 모험 정책에 전투병을 파병하면서 대외적 위신을 높이려 노력해 왔다. 미국의 모험이 번번이 실패하고 한국 내 반전 여론과 운동의 압력이 존재한 덕분에 역대 한국 정부의 기대만큼 목표가 관철됐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말이다.

자본의 입장에서 자신이 지정학적 강국에 속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가 미국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미국 정부는 일부 동맹(일본과 독일 등)에게 미국에 일방으로 유리한 통상 정책(슈퍼 301조 등)을 강요했는데, 이것은 부분적으로 이들 나라가 미국에 안보를 의존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19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를 거쳐 WTO가 출범할 때 미국이 주도적 구실을 할 수 있었던 것도 1991년 걸프전 이후 미국이 동맹들의 머리에 각인시킨 압도적 군사력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물론, 미국이 큰 이빨을 가진 호랑이라면 한국 정부나 자본은 여우에 불과하다. 그러나 호랑이의 중요한 동맹이라는 지위와 상당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그 중 일부를 해외에 파병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은 다른 나라들과 온갖 문제로 협상할 때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이번 제재로 사업 확장 기회를 잃은 일부 한국 기업체들은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이란 시장에 목숨을 건 일부 중소기업들은 특히 그럴 것이다. 실제로, 〈연합뉴스〉 등을 보면 익명으로 불만을 토하는 일부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란 제재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기업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불거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대기업주들은 이란 시장을 놓치고 싶지 않겠지만 이란과 미국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 관계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미국이라 답할 것이다.

그들은 독자 제재를 현실로 인정하고 이명박 정부가 이란에서 계속 돈을 벌 수 있는 뒷구멍을 찾아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들은 이명박 정부 외교정책의 우선순위가 잘못됐다고 말하며 대들지 않을 것이다. 그들 자신이 역대 한국 정부의 미국 우선순위 외교 정책에서 가장 많은 수혜를 입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진보진영은 한국 지배자들이 이란 제재에 동참한 진정한 이유를 가리는 실수를 범하지 말고 좀더 원칙적인 입장에서 이란 제재 반대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